“소시지 1개”
“두부 1모”
“사태 만 원어치만 달라고 해”
“사태는 국거리용으로 달라 그래, 미역국 할 거야.”
아내가 부르는 반찬거리를 열심히 받아 적는다.
“딴 건 없어?”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듯 묻자
“그거면 돼.”
대충 오늘 저녁 메뉴가 접수된다. 소시지볶음과 두부조림, 고기 넣은 미역국, 그리고 밑반찬 몇 가지.
시장 주머니를 하나 챙겨 집을 나선다.
보통 주말 장보기는 내 몫이다. 운동 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오는 길에 들르는 마트 장보기가 코스가 돼버렸다. 사가야 할 물건들은 비교적 단순한 품목으로 정해진다.
아줌마의 오랜 경륜과 예리한 눈으로 골라야 하는 채소, 생선, 과일류는 제외다. 신선도가 생명인 품목이라 내가 선택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쉽게 찾아 그냥 손에 닿는 대로 주워 담을 수 있는 녀석들이 주로 선택된다. 진열대를 살펴보다 먹고 싶은 군것질거리가 있으면 덤으로 얹는다. 시장 주머니는 원래 사가야 할 수량보다 항상 넘친다.
가끔은 제대로 못 사 왔다고 아내의 송곳 검증에 걸려 타박을 받는다. 유통기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든지, 1+1 제품이 있는데 못 봤다느니 하는 이유로.
“아니 마트에서 설마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을 팔겠어?”
심부름 잘하고 욕먹는 게 서러워 한소리 대꾸한다.
“그러니까 남편들은 여자들이 집에서 얼마나 힘들고 정성스럽게 반찬을 해대는지 모른다니까. 그냥 목으로 넘길 줄 만 알지. 식구 건강을 생각해서 물건 하나를 고르더라도 얼마나 까다롭게 보는데...”
아내는 훈계범위를 나에게서 남편들 전체로 넓혀 기회는 요 때다 싶은 듯 쏘아붙인다.
“어떻게 남편들이 마누라만큼 눈썰미가 있겠어. 안 빼먹고 사 온 것만도 다행이지.”
나는 여전히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니까 이제부터라도 반찬 투정 하지말구 주는 대로 먹으라고.”
아내는 내 얼굴을 보더니 더 짜증스럽게 얘기했다.
“아니 거기서 반찬투정 얘기가 왜 나와? 누가 반찬 투정을 했다고 그래. 난 당신이 해 준 반찬 아무거나 대충해도 잘 먹잖아.”
“그럼 내가 반찬을 아무렇게나 했단 말이야?”
결국 피고이면서 원고인 장물(내가 사온 물건들)을 증인석에 앉혀 시작한 변호 측(나)과 검찰 측(아내)의 논리는 원재료로 완성된 반찬의 의미, 맛, 더 나아가 반찬 공급 주체(아내)의 항변과 소비 주체(나)의 방어변론으로 공방을 이어가다 공급주체 역할의 중요성만 확인하게 되는 판결로 끝이 난다.
만약 공급자가 사보타주라도 일으키면 정상적인 식생활이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았어. 다음부터는 잘 확인하고 사 올게”
다소 억울함이 있지만 나는 패자로서의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수긍한다.
“심부름하는 남편들이 대게 그래요. 잘 모르죠.”
아내가 사 오라는 사태가 쇠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정육코너 점원이 묻길래 나는 정확히 모르겠다며 그냥 미역국에 넣을 거라고 대답하자 쇠고기를 썰면서 한마디 한다.
“네?”
“집에서 사 오라고 시킬 때 자세한 건 안 알려주고, 막상 사가면 잘못 사왔다고 야단치고 그런다고요. 심부름도 제대로 못 한다면서. 남편들이 불쌍하죠”
“아... 네... 뭐... 그렇쵸”
도둑이 제발 저리듯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어 깜짝 놀라며 대꾸한다.
시장 주머니를 손에 쥐고 집으로 오면서 문득 떠오르는 우스갯소리가 있어 실없는 웃음을 흘린다.
허구한 날 남편을 구박하던 아내가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 아내는 흰 천이 씌워진 남편 앞에서 한없이 울었다. 구박한 남편이었지만 막상 죽고 나니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던 거다. 그때 남편이 얼굴을 빼꼼 내밀면서
“여보,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러자 부인이 남편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당신이 뭘 알아! 의사가 죽었다는데.”
남자 셋 중 한 명이 아내의 구박을 받고 산다는 기사를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다. 내가 그 한 사람에 낄 정도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내한테 구박받는 남편은 맞는 것 같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아내에겐 답답한 모양이다.
물건을 찾지 못했을 때 특히 아내의 타박이 심해진다. 갈수록 물건 하나 찾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벌써 인지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집중력이 부족할 나이도 아닐 텐데...(사실은 맞을지도 모르겠다)
냉장고에서 뭘 하나 찾는데도 한없이 더디다. 그렇게 좁은 공간인데도 왜 그렇게 안 보이는지.
삐~삐~ 냉장고 소리를 듣던 아내가 한 소리 한다.
“냉장고 문 닫아, 전기세 나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아내에게 묻자 정답만 돌아온다.
“거기 있어. 잘 찾아봐”
낮게 깔린 저음의 목소리가 더 무섭다. 아내의 심사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연속해서 들리는 냉장고 경고음 소리에 결국 연속극 삼매경에 빠져있던 아내는 투덜거리며 다가온다.
“으이그~. 여깄잖아. 이것도 못 찾아.”
찾는 물건은 바로 코앞에 있다. 이럴수가. 역시 아내가 관할하는 공간이라 다르다. 마치 냉장고 속에 대고 '야! 니네들 일렬로 서 봐'라고 명령해 놓고 불러서 앞으로 튀어나오게 만든것 같다. 존경스럽기까지하다. 그리고 내 가슴을 후비는 한소리가 가해진다.
“눈이 안 보이면 돋보기를 쓰던가.”
아내는 내 몸이 고전화되어 감을 안쓰럽게 탓한다. 더 서러워진다.
사소한 일이나 시킨 일이 마음에 안들 때 부부는 갑과 을의 관계 같아진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 기분 상하는 일은 없다. 아이들이 나가고 둘만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만큼 티격태격, 옥신각신하는 일이 잦아지는데, 오히려 이런 투정들은 오래된 부부의 무심함을 자극하는 동력이 된다. 삶에 얹힌 덧정이라고나 할까.
어느 설문조사에서 "부부가 함께 하루 6~10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답은 남편 56%지만 아내는 28%밖에 안 됐다고 한다. 밥 지을 줄도 모르는 남편일수록 나이 들면 아내 곁에 껌딱지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고 싶은 것도 한 가지 이유다. 남자들이 의지해야 할 구석이 어딘지 점점 확실해진다.
그렇게 한 두 점을 깔고 시작하는 아내의 구박에는 승자의 여유가 있다. 어차피 내가 변명할 일은 없을 테니..
부부가 살다가 나이가 들면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말이
이제 내가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요
- 박태훈 <늙으면 아내가 푸념을 한다> 부분 -
내 아내도 자기가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남편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나도 아내를 이기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근데..
그냥 져주면 아내가 더 허전해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