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팔 Jun 06. 2021

남자들이 주저 앉아 살아가야 될 때.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전화 오면  단단히 말씀드려, 그렇게 하셔야 한다고. 알았지.”

누나 음성은 다급했다. 아버지가 바로 전화하실 수 있어서 먼저 선수를 쳤다고 한다.

“알았어, 알았다구...” 

대답은 했으나 볼일 보고 안 닦은 뒤처럼 찝찝함에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망설인다.    


20여 년 전 부모님은 누나를 따라 미국으로 가셨다. 자연스럽게 당신들 뒷바라지는 누나 몫이었다. 따로 살다 보니 여러모로 돌봐드리기가 수월치 않아 얼마 전 누나네로 들어오시게 됐다. 아버지와 누나의 관계도 골이 깊어갔다. 전부터 아버지 고집과 누나 성질이 자주 부딪치곤 했다. 전화 때마다 어머니 하소연이 이어졌는데 이제는 매일 보게됐으니 더 심해진 모양이었다. 갈수록 노인네답게 완강하시고, 독불장군의 위엄만 늘어간다는 누나 불평도 단골 레퍼토리가 돼버렸다. 그럴 때마다 행여 누나가 난 지쳤으니 장남인 네가 모시든지 어쩌든지 하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을까 싶어,

“아버지는 원래 그러셨잖아. 노인네 성질 어디 가겠어? 누나가 참아야지. 

나는 누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고충을 이해한다는 인상을 안기며 슬쩍 뒤로 빠지는 것이다. 집안의 화목과 아직은 깨뜨릴 수 없는 내 신변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이기적 선택이었다.


이번엔 상황이 좀 달랐다. 여느 때처럼 누나의 사연(?)을 청취하고 위로하는 멘트를 날리려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과 함께 내 얼굴은 점점 구겨져 갔다. 맞장구 칠 일이 아니라 적극 반대 의사를 표시해야 할 일이었다. 아니 아버지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라고 침을 튀겨야 했다. 그래도 조건반사처럼 일어나는 동의를 마지못해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누나의 일방적인 보도내용은 이랬다.    


노인네들 기력이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면서 거동이 불편해지고 느려갔다. 아직은 생리현상을 해결하시는 데 문제는 없지만 혹시나 있을 일을 대비해 누나는 비데를 설치했다고 한다. 부녀의 충돌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아버지께 비데 설치와 사용설명을 하면서 청결하게 쓰기 위해 서서 소변을 보면 주변으로 튀고 불결해질 뿐 아니라 비데에도 안 좋으니 앉아서 소변을 보시라고 권했던 모양이다. 물론 아버지한테는 씨도 먹히지 않은 요구라는 걸 누나도 모르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제껏 일어난 아버지와의 언쟁에 하나 더 얹는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찔러 본 것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당신이 들은 귀를 의심하셨을 테고, 누구보다 강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테니 자식에게 그런 모욕에 가까운 말을 들었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시면서 한국에서도 그런지 나한테 직접 확인을 해야겠다고 노발대발하셨다는 게 이야기 전말이다.    

다행인지 아닌지 아버지 연락은 없었다.

“야~너 오줌 앉아서 누냐?” 

라고 아들에게 묻기도 멋쩍으셨으리라. 그렇다고 나도

“아버지~ 기죽지 말고 당당하세요.” 

이렇게 말하기도 참 애매한 노릇이었을 테니까.

바로 얼마 전 벌어진 상황으로 인해...    


“아니 조준 좀 잘해! 튀기지 좀 말란 말이야. 몇 번을 얘기해. 청소해 줄 거도 아니면 깨끗하게라도 써야지!” 

화장실 청소를 하던 아내 잔소리가 거실까지 울렸다. TV를 보던 나는 못 들은 척 한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생리현상의 해결 방식이 불만이었다. 화장실 냄새가 부쩍 난다면서 그 주범으로 나를 의심했다. 나는 극구 부인하지만 정황상 내가 불리하다. 아무래도 자세 차이로 인해 낙차 속도에 따른 반발력으로 튀는 반경이 내가 더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면 빼도 박도 못한다.  

이윽고 아내가 던지는 충격적인 한마디에 나자빠진다.

“잘 안되면 앉아서 누던지.”    

나는 화장실로 달려간다.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뭘 내가 잘못 눴다고 그래. 오줌 한두 번 눈 것도 아니고 평생을 그렇게 조준하며 살았는데. 눈감고 싸도 과녁에 알아서 잘 들어간다구.”  

적극적 항변에 나선다.

“그러구 만에 하나, 변기에 튀었다 그러면 깨끗이 씻어내고 나온단 말이야.“ 

결국, 없는 일은 아니었고 사태의 뒷수습까지 하고 나온다는 걸 자인한다.

변기를 청소하던 아내가 화장실 문 앞에선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나이 들면 남자들도 앉아서 소변 봐야 된데.“ 

목소리 톤이 수그러진 아내가 아이들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앉아서 소변을 보면 건강에도 좋다구 했어. 유럽이나 일본은 그렇게 볼일 보는 남자들이 많데.” 

아내가 근거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수긍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단호히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자리를 뜬다.  ‘앉아서 오줌 누라니, 남자의 자존심이 있지. 거 참...’

일단 방어는 했으나 이후로 소변을 볼 때마다 아내 잔소리가 생각나 변기를 앞에 두고 요리조리 궁리 한다.

‘한 발을 들어 변기 위에다 놓고 허리를 좀 구부리면 덜 튀지 않을까?’

갑자기 TV 동물농장 속 개떼가 생각났다.

‘무릎을 꿇고 볼일 보면 자세가 좀 안정적으로 나올까?’

변기에다 대고 기도할 수는 없다.

‘아~씨! 그렇다고 정말 앉을 수도 없고.’

작은 거 기다리다 큰 거라도 나오면 판이 커진다. 결국, 사격연습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도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아내가 보지 않을 때 인터넷을 뒤져 관련 기사를 찾아본다. ‘남자 앉아’만 입력했는데 ‘남자 앉아서 소변..’ 조합어가 굴비 엮듯 줄줄이 이어 나온다. 전혀 예상 밖 결과에 깜짝 놀란다.

‘아니 남자들이 앉아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오줌 누는 거 밖에 안 나와. 이거 실화여?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게 맞긴 맞나 보구만. 중년들은 한 번씩 다 검색하는 모양이네. 그러니까 이런 거지.’

불안하다. 관련 기사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린다. 나도 모르게 가벼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기사 하나하나를 클릭해 본다. 볼수록 심상치가 않다. 남자가 앉아서 오줌을 눠야 하는 정당성만 강조하는 내용이다. 아예 국제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한 기사도 보인다.   

  

대만 “남자도 앉아서 소변봐라”

스위스 소리 나면 벌금!

이슬람권 오줌 튀면 불경죄.

일본 남성 40% “앉아서”    


‘ 뭔... 이런 개떡 같은 나라들이 다 있어?' 불평도 해보고,

'이건 고정관념 탈피나 의식전환 문제가 아니라 신체구조 차이 때문이잖아.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너는 '서서 쏴', 너는 '앉아서 쏴'라는 절대불변의 원칙을 부여하신 후 본능적 행위로 수만 년 동안 그 질서가 유지됐는데 고작 오줌 몇 방울 흘린다는 이유로 순기능을 뒤집으려 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짓이냐구.' 라고 나름 논리적 거품을 물어도 별 위로가 되지 못한다.

나에게 호의적인 기사는 하나도 없다.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찾아본 것이 시대 흐름을 확인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지배할 수 없다면 순응하라>는 되먹지도 않은 말이 괜히 제 발 저리듯 가슴에 와 박힌다.

‘에이~씨! 정말 이대로 주저앉아야 하는거야?' 자조적인 독백이 흘러나온다.

딴 문제로도 스트레스받을 일이 부지기수인데 이제는 생리현상까지 아내 간섭을 받아 화장실 갈 때마다 조준 잘하라고 ‘서서 쏴‘ 하지 말고 ’앉아 쏴’ 하라는 마치 군대 시절 조교를 생각나게 하는, 이 현실에 그렇지 않아도 주눅이 들어있는 중년의 고개(?)를 더 숙이게 한다.   


누나 말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상실감에 식음이라도 전폐하시는 건 아닌지 문득 아버지가 걱정스러워진다. 어떻게든 남자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한 노력이 수포가 되었다. 해결책을 찾느라 오래 앉아있다가 보니 방광의 압박이 거세진다. 아내의 거룩한 가르침을 실천에 옮길 시간이 온 것이다. 아버지한테 연락이 오면 자신감이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나마저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아버지, 그게 대세랍니다. 그만 포기하시죠.' 

어쩌겠는가. 믿었던 아들마저 내놓을수 있는 답은 요것뿐인걸.

매거진의 이전글 회초리가 된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