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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품에 안은 순간

너의 온기, 너의 숨결

by 정유진

도담이의 황달은 모유 황달이 아닌 생리적 황달로,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광선 치료를 하며 이삼일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특별한 문제도 없고, 모유도 하루에 8번 중 한 번은 젖병으로 빨아먹을 정도로 빠는 힘이 생겼다고 했다. 나머지 7번은 반은 빨고, 반은 위에 연결된 관으로 넣어 준다고 했다.


나는 조리원에서 매일 저녁 40ml씩 10팩을 얼려서 도담이를 보러 갔다. 다행히도 도담이는 호흡기까지 떼고 편안한 자세로 광선 치료를 받고 있었다. 나와 남편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는 마치 엄마 아빠가 온 걸 아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며칠 간, 도담이를 보러 갈 때마다 혹시나 호흡기를 차고 있진 않을지 걱정스런 마음이 앞섰다. 다행히도 아이의 상태는 서서히 좋아지고 있었다.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깊이 잠이 들어 있던 날에는 깨워서 눈을 마주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러면 아이가 더 힘들 것 같아 얼굴만 연신 들여다보고 돌아서야 했다.


3월 26일.

도담이는 호흡기를 안 껴도 자가 호흡을 잘 하고 있었고, 황달은 많이 나아졌지만 내일 피검사를 한 뒤에 치료를 그만해도 될지 결정할 거라고 했다. 몸무게는 태어날 때 2.25kg에서 0.03kg 늘어 2.28kg이 되어 있었고, 먹는 양도 43cc에서 45cc로 늘었다고 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빠는 힘이 약해서 그 부분만 해결되면 곧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퇴원'이라는 말이 어찌나 반가웠는지! 내일 아침에는 담당 의사선생님 ㅕ면담이 있는 날이라고 해서 할머니도 함께 도담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아이가 나날이 좋아지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4월 1일에는 꼭 집으로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다음 날.

담당 의사 선생님 회진이 있는 날이었다. 도담이는 밤사이 체온이 좀 떨어졌는지 파란 털모자를 귀엽게 쓰고 있었다. 그간 몇 가지 검사를 했다는데 다행히도 뇌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백혈구 수치가 조금 높지만 염증 수치는 낮아서 항생제는 따로 안 맞아도 된다고 했다.


"이제 빠는 힘만 늘면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


퇴원! 퇴원이라니. 선생님 입에서 직접 "퇴원"이라는 말을 들으니 더 기뻤다. 도담이에게 이 기쁨을 전하고 싶었는데 많이 고단한지 계속 자고 있었다.


3월 28일.

저녁에 도담이를 보러 갔다. 도담이는 황달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위관만 달고 있었다. 다행히 호흡도 잘하고 있었고, 몸무게도 늘어 2.36kg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없는 사이 탯줄도 떼어져서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곤히 자고 있었다. 미숙아로 태어나 다른 아이들 다 하는 발 도장도 못 찍고, 탯줄 떼어지는 것도 엄마가 못 보고, 아이의 소중한 순간들을 함께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쉽고 미안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았는지 "도담아" 하고 부르자 눈을 뜨고는 예쁘게 웃기까지 했다. 입원한 이후 처음으로 아이의 모습이 편안해 보여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아직까지는 8번 중 2번만 모유를 다 빨아먹고 나머지 6번은 위관과 병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도담이가 하루빨리 기운을 내서 먹는 양도 늘고, 빠는 힘도 늘기를 기도했다. 작고 여린 도담이를 홀로 병원에 두고 오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매번 그랬듯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다.


3월 29일.

나는 조리원에서 내일 퇴소하기로 했었는데 남편이 내일 일정이 바빠 오늘 저녁을 먹고 퇴소를 해야 했다. 도담이 걱정에 여기 있어도 맘이 편치 않았는데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소를 하자마자 도담이에게 갔는데 어제까지는 밝던 아이가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엄마 왔다는 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긴 했는데 숨 쉬기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아무래도 모유를 급하게 먹어서 역류하는 것 같아 간호사 선생님에게 아기 좀 일으켜서 등 좀 두드려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워낙 NICU에는 돌봐야 할 아이가 많아서인지 간호사 선생님은 내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뒤, 도담이 코에서 모유가 왈칵 쏟아졌다. 진작 아이를 일으켜 등을 두드려 주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만일 내가 이 순간, 도담이 옆에 없었다면 아이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싶어서 속이 상했다.


내 기분을 알았는지 옆에 있던 다른 간호사 선생님이 도담이를 한번 안아보라고 했다. 도담이를 낳고 처음으로 제대로 안는 순간이었다.


브런치5.png


눈물이 났지만 아이 앞에서 울지 않기로 다짐했기에 꾹 참았다. 아기가 엄마 냄새를 안다는데, 그래서일까? 도담이는 내 품에 안기자 금세 평온해졌다. 15분여 동안 나는 도담이를 안고 어루만져주었다. 아기의 숨결이, 온기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어찌나 부드럽고 따뜻한지 이대로 안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면회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또 다시 이별을 해야 했다.


나는 도담이가 오늘 밤도 무사히 넘기길 바라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다음 날, 원래는 남편과 저녁에 면회를 가기로 했었는데 도담이가 잘 있는지 걱정이 돼 아침에 서둘러 혼자 병원으로 향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 회진도 있는 요일이었다. 다행히도 도담이는 0.05kg이 쪄 있었다. 자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는 눈도 살짝 떴다 감았다. NICU에 있을 때, 늘 친절하게 대해주는 간호사 선생님이 이틀 동안 보이지 않다가 오늘은 모습을 보였다. 선생님은 도담이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며, 도담이를 안아 등을 두드려 주며 트림 시키는 방법을 내게 알려주었다.


"엄마가 한번 안아 보세요."


어제에 이어 또 다시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도담이는 내가 안자 정말로 날 기억하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미소까지 지었다. 아이를 품에 안는 건, 엄마만 행복감에 젖게 해 주는 게 아닌 것 같다. 아이 역시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만 같았다.


1970년대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는 인큐베이터가 매우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숙아가 태어나도 적절한 치료를 하기가 어려웠다. 콜롬비아대학병원의 레이 교수와 마르티네즈 교수가 '인큐베이터 대신 어머니와 미숙아의 피부 접촉을 통해 체온을 유지시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캥거루 케어*'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시도되었다. 최근에는 나라 경제가 넉넉하여 인큐베이터 사용이 용이한 선진국에서도, 신생아의 체온 유지는 물론 모유수유를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주목받으면서, 캥거루 케어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철, <세상이 궁금해서 일찍 나왔니?>


NICU의 아이들 중 몇몇은 캥거루 케어를 받고 있었다. 도담이도 빠는 힘이 생기면 캥거루 케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캥거루 케어를 해 보고 싶었다. 아기와 엄마의 피부가 서로 밀착되면 감각세포가 자극되고, 이 자극이 뇌로 가서 옥시토신을 분비하게 한다고 한다. 옥시토신은 스트레스 상황에 있는 미숙아에게 안정적인고 평안한 상태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도담이는 아직은 빠는 힘이 부족해 캥거루 케어가 어려울 것 같았지만 가능한 시기가 되면 꼭 하고 싶었다.




*캥거루 케어가 미숙아에게 주는 가장 큰 장점은 집중치료실 입원 기간을 단축시킨다는 것이다. 미숙아의 하루하루 체중 증가를 도와서, 몸무게가 하루 20gm 이상 빠르게 증가하여 며칠이라도 빨리 엄마 품으로 돌아가는 행복을 가져다준다. 아기들도 캥거루 케어를 하다 보면 엄마의 체취와 따뜻한 살과의 접촉 그리고 엄마 뱃속에서 듣던 익숙한 엄마의 심장 소리가 자극이 되는 모양이다. 엄마와의 피부 접촉은 아기에게 빨리 집에 가서 엄마와 함께 보내고 싶은 욕망을 이끌어 내는 것 같다. -이철, <세상이 궁금해서 일찍 나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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