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1일차 - 권고사직

안도감, 고생했다는 마음

by 인상사

퇴근 30분전 회의실, 권고사직을 통보 받았다.

조직개편에 따라 1년간 매출 실적이 없었고 조직이 나로 인해 퇴행되는 느낌을 받았고 등등의 여러사유..


얘기를 듣자마자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제 주말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슬퍼야 하는게 맞을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안도감 부터 들길래 내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싶었다.



5년간 주말, 퇴근 후 집, 출근길 지하철, 퇴근길 지하철

어느 장소, 일상에서도 빠짐없이 계속 일만 해오던 나였다


누가 나를 채찍질 하기라도 하듯이

완벽하게 해야한다는 갇힌 생각과 다 해결해야한다는 책임감, 버거운 무게로 되돌아 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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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를 읽지 못해 쌓여있는 99+ 메일함 숫자와

집에오면 누군가에게 쫒기듯 PC를 켜고 엑셀을 열어

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할지 부터 머리를 굴리던 나


진척이 없고 내가 이렇게까지 언제 해야하나

아이디어도, 머리도 쉴만큼 쉬어서 지쳐버렸는데

어떻게 해야하는건가 하며 어거지로 끌려가듯 일했던 매일매일들..


내일이 당장 보고일인데 보고일은 맞춰야한다는 생각과

이왕해가는거 완벽하게 해가야한다는 게으른 완벽주의탓에

새벽 4~5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서 밤12시까지 미완성 엑셀파일을 열고 보완하고 적는일 ..


출근길에는 그 파일에 내용 수정할게 있는지 없는지

타인의 입장이 되서 보고서를 수정하고

회사가면 매일하는 루틴업무에만 쳐내기 바쁘고

생각이 필요한 기획, 보고서 업무는 정작 집에서 밖에 할수 없었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무조건 엑셀을 켜고 다음날, 다음주는 무얼 해야하는지에 대한 계획 세우고

친구들과 약속이 잡혔던 주말에 약속이 캔슬되기라도 하면

마음의 안도감을 갖고 일을 할수 있다는 시간이 확보되었다는 생각에 다시 PC를 켜고 일을 쳐내던 날들..


남자친구에게 거짓말 해가며 통화 못한다고 잔다고 했지만

막상 일했던 날이 많았던 날들..


4년차가 되니 번아웃이 찾아왔고 뇌의 가동이 멈춰

느리게느리게 흘러가는것 같았다.


일벌레처럼 일만 하고 사니까

뉴스의 이슈가 무엇인지, 트렌드가 무엇인지, 친구들의 사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엄마는 오늘 어떤 일이있었는지,

남자친구는 오늘 별일 없었는지,

주변을 돌아보고 챙기는 것이 어느새 사라지고

일 = 나 외에는 남는것이 없었다.


일이 곧 나는 아닌데 계속 채찍질 하며 지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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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퇴사의사를 밝힐 용기가 없었던것도 사실이다

2월 마지막 하루 남겨둔 월요일

여느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며 문득 생각했다

이번달을 마지막으로 그만다니고 싶다.

차라리 먼저 얘기를 꺼내줘서 권고사직이 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오래된 연인과 헤어짐의 끝이 온다는것을 직감하고

차라리 먼저 얘기해주길 바라던 찌질한 연인 처럼 말이다.


몇개월 전부터 나의 끝은 직감 했던것 같다.

서서히 업무배제와 업무의 주도권은 잃고 있었고

방향성을 찾지 못한나는 어디서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었다.


연인도 헤어지기 전에는 그동안 쌓여있던 불만에 연인에게 화를 내리도 하듯이, 회사에도 그동안 불만이고 답답했던 시스템에 화도 욱하게 내고싶었고, 참고 참다보니 결국 대화에서 불만부터 나가던 직원이 되버린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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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는길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38살 미혼 나이,


어디로 가야할지

쉬고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쉬어도 되는건지,

이 직급과 능력으로 어디가서 무얼 할수 있는건지

내가 무엇부터 할수 있고 없고, 무엇을 더 보완해야하는건지 부터 정리해야하는건지,,


퇴직금은 얼마가 나오는지, 실업급여는 몇개월 얼마를 탈수 있는건지, 한달에 나갈 비용을 대략 얼마인지 부터 계산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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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엄마, 친한친구등

가까운 사람들일 수록 나의 소식에 회사에 화를 내주며 내대신 욕해주고, 잘되었다고 고생했다고 말해주는것들이

오늘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냥 오늘은 괜찮아. 잘했어 이 두마디만 듣고 싶었을뿐..

시끄러운 속에 남의 조언과 맞장구가 담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고맙고 미안하다.

내가 일한답시고 잘 챙겨주지 못했기에

나를 끝까지 응원해줄 사람들이란걸 알고서도

더 잘해주지 못한 나를 용서해주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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