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시간, 할머니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무래도 우리 집 이사 소식을 들으신 것 같았다. 어쩌면 조금 갑작스러운 이사에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어려움이 있지는 않을까 싶으셨던 것 같다. 그런 할머니에게 아빠는 평소보다 조금 더 밝은 목소리로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우리 아빠도 할머니에게는 그저 아기 같이 걱정되는 애틋한 아들인 것이다.
할머니의 애틋한 아들인 나의 아빠는, 아빠의 애틋한 딸인 나에게 이사 가면 침대를 사주겠다고 말했다. 마음에 드는 침대를 봐 두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내가 먼저 아빠에게 돌침대를 사드려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받기만 하는 자식이다. 이렇게 자주 별로다 내가. 그럼에도 나를 품어주는 사랑 덕에 괜찮은 사람처럼 살아간다. 엄마는 오빠와 나를 보며 안쓰럽기도 하고 애틋하다고 곧잘 얘기했다. 훌쩍 커버리다 못해 삼십 대가 되어버린 자식인데도 말이다.
여든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 한분이 치킨을 먹고 싶어 하는 딸을 위해 직접 길을 나서 치킨을 사러 가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육십이 넘은 딸을 우리 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자식은 평생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겠지. 그것이 슬픈 일이라기보다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평생 우리 엄마 아빠의 애틋한 아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