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을 담는 사람 Sep 26. 2023

그와 그녀의 짝사랑

얼마 전, 엄마는 어깨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을 입원해 있었다. 엄마의 어깨가 좋지 않았던 건 얼마 전 일만은 아니지만 수술까지 하게 된 건 최근 일이었다. 엄마가 입원을 하고부터 아침저녁으로 보호자로 있다 보니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사실 이건 이번만의 일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알게 모르게 병원에 대한 데이터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그리고 새로운 병원에서 알아야 할 것들, 보호자는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등. 입원 병동을 돌며 살펴보니 어깨 수술을 한 사람들은 대개 6-70대의 분들이었다. 인생을 그만큼 살아온 사람들. 그만큼의 시간만큼이나 그만큼의 노동을 쌓아왔을 사람들이다. 걸음이 느려지고, 이곳저곳 뼈와 관절이 욱신거리고, 시력이 떨어지는 그 모든 것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랬다. 사람은 기계가 아닌데, 오래 쓴 기계처럼 고장이 났다. 슬펐다. 나는 고장 나는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슬펐다. 입원 병동 사람들은 모두 같은 환자복을 입고, 모두 같은 보조기를 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뒤섞였다.     


오른쪽 어깨 수술을 한 엄마는 왼쪽 팔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일단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약을 먹으려면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했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을 수는 있지만 나물이나 김치 같은 반찬을 숟가락으로 먹기는 힘들었다. 엄마의 턱 아래에 휴지를 받치고, 젓가락으로 나물이나 반찬을 집어 엄마 숟가락에 얹어줬다. 엄마가 밥을 잘 먹는 날에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입맛이 없다고 하는 날에는 어떤 반찬이 그나마 입맛에 맞을지 고민했다. 아직 출산의 경험은 없지만 아마도 자식이 밥을 먹지 않으면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걸까 생각했다.

    

이틀에 한 번 엄마의 머리를 감겨주고, 매일 엄마를 씻겼다. 귀찮을 법한 이 일을 엄마는 나와 오빠를 키우며 스스로의 몸을 잘 씻을 수 있을 나이까지 씻겼을 테지. 또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는 고작 며칠뿐인데 말이다.(와중에도 짜증이나 몹쓸 감정이 튀어나올까 걱정을 많이 한 개딸이자 효년인 나다. 언제쯤이면 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지.)


엄마는 자유의 몸짓을 잃고 난 뒤에 병실 안에 있는 약간의 우울감과 무기력함 그리고 보호자가 없으면 할 수 있는 활동 범위가 정해져서인지 혼자서는 그리 많은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계절에 바깥에서 계절을 누릴 수도 없고 엄마의 심심함이 이해가 되었다. 링거를 뽑은 뒤에는 그나마 몸이 자유로워져 매일 저녁밥을 먹고 병원 옥상에 올라가 산책을 했다. 그래봤자 몇 바퀴 도는 일이지만. 넓지 않은 옥상 한 바퀴를 열 번 돌면서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엄마는 그때 웃었다. 우리는 일상을 잃고서야 일상을 그리워한다. 매일 바람이 얼굴과 몸을 스치고 햇볕을 쬐고, 하늘을 올려다 보는 일 자체가 사람을 다르게 한다.      


어느 날에는 점심거리를 챙겨서 옥상으로 올라가 우리만의 피크닉을 했다. 엄마가 아침을 먹어야 할 7:20분 전에는 병원에 도착하고, 점심시간인 12시까지 있다가 12시에 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는 내 일들을 했다. 그때쯤 첫 책을 내고 난 직후라 처리할 일들이 많았다. 보호자 침대는 납작한 나의 작업실이 되었다. 그곳에서 택배 예약을 하고, 서점들에 입고 문의 메일을 작성해서 보내고, 메일을 매일 확인했다. 그러다 침대에서 하는 것도 허리가 아파 카페에 가서 1-2시간 집중적으로 일을 하고 서둘러 돌아왔다. 병원의 끼니는 빠르게도 돌아오니까. 5시 20분이면 병원의 마지막 끼니인 저녁 시간이 된다. 엄마의 저녁을 챙기고는 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아빠의 저녁을 위함이다. 엄마의 일주일 입원 기간 동안 아빠는 얼굴이 핼쑥해졌다. 아무래도 혼자 끼니를 챙기다 보니 입맛이 없었을 거다. 엄마가 입원 전에 아빠가 먹을 반찬과 국을 잔뜩 해놓고 가도 아빠는 좀처럼 본인을 위해 챙겨 먹지 않았다. 원래도 먹는 것에 큰 흥미가 없는 아빠는 같이 먹을 사람들이 없으니 안 그래도 없는 입맛이 더욱 없어졌던 것이다. 핼쑥해진 아빠 얼굴을 본 어느 날에는 안되겠다 싶어 일부러 엄마의 저녁을 먹이고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함께 마주 앉아 저녁을 먹으니 아빠가 제법 잘 드신다. 같이 먹어야 맛이지 그렇지 아빠?


부모님을 챙기는 이 잠깐의 시간 동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생색이라도 내고 효녀 코스프레라도 할 수 있는데- 우리 부모님은 자식을 씻기고 밥을 먹였다고 코스프레는커녕 혹여라도 아프면 당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자책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부모와 자식은 어떤 관계일까. 조건 없이, 아낌없이 내어주는 부모와 당연하게 그것을 받는 것이 자식인 것일까. 그 사랑 앞에서 나는 또 작아진다. 이렇게 삼십 년이 넘도록 사랑을 받아도 이제야 조금은 느낀다. 그 사랑을.


언젠가 들었던 말이 너무 가슴에 닿아 마음에 오래 남는 말이 있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받아, 그 큰 사랑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또 다른 사랑을 흘려보내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낳는 것이라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던 사춘기 시절의 우리, 등을 돌리고 앉아 엄마 아빠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벽을 세우던 어떤 시절, 그럼에도 우리의 엄마 아빠는 우리의 등을 바라보고 기다리셨다. 언제나 그들은 짝사랑을 자처했다. 우리가 다시 등을 돌려주기를, 눈을 바라봐 주기를 기다려 주었다. 나의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는 아마 평생동안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부모만 아는 것이니까. 그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있는 자식은 없으니까. 사랑은 정말 흐르고 있다. 

이전 09화 애틋한 아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