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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담는 사람 Sep 27. 2023

가을밤에 만나는 장면

어깨에 보조기를 차고 있는 엄마는 하루 종일 거의 집에 있다. 일단 몸이 불편해 크게 움직이지도 못하는 데다가 화장을 한다거나 옷을 제대로 차려입기도 힘들다 보니 동네를 산책하는 정도다. 엄마는 10분 화장을 하는 나에게 종종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한다. 화장을 조금 더 공들여해라,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너무 대충 다니지는 말라며. 그럼에도 요즘에는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뭐 어쩌라고의 식인 개딸에게 더 이상의 잔소리는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포기한 것 같다. 


엄마는 슬슬 밀려오는 고통과 불편함, 갑갑함 등으로 밤에 편하게 잠에 들지 못한다. 지난밤에는 피곤함에 자려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엄마가 쇼파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불편하고 아파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새벽에도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서 핸드폰을 만지거나 티비를 켰다가 다시 한 시간 정도 잠에 드는 방법으로 엄마는 매일매일을 지내고 있었다. 


요즘은 돌밥돌밥 돌청돌청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청소. 가족들이 먹을 끼니를 준비하고,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그리고 잠시 지나면 다음 끼니를 준비하고,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하루의 주방 업무가 끝이 난다. 물론 그 사이사이 빨래도, 청소도, 분리수거도 다 해야 한다. 살림은 이토록 성실함을 요구하는 엄청난 일이다. 해도 좀처럼 티는 안 나고, 안 하면 티가 엄청나게 난다. 이런 비효율적인! 우리의 어머니들은 얼마나 하신 건지 모른다. 또 절로 감사의 마음이 든다.


저녁 식사가 끝이 나고 설거지를 했다. 배도 부르고, 저녁 바람도 시원하니 저녁 산책을 하러 가기로 한다. 엄마와 함께 산책길에 오른다. 동네를 몇 바퀴 돌다가 시장을 구경하기도 하고, 이전에는 몰랐던 동네의 새로운 모습들도 촘촘히 우리에게 박힌다. 

내일을 위한 국을 끓이기 위해 바지락살을 샀다. 엄마가 아빠가 좋아하는 바지락살 넣은 미역국을 끓이자고 한다. 산책을 나와서도 장을 본다. 역시 엄마는 멀티 플레이어다. 다시 주방 문을 열어야겠다 아무래도.


바지락살을 한 손에 달랑달랑 들고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마주 보고 앉았다. 엄마의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뜯어서 한 손에 쥐어주고 나서 나도 같은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뜯어 입에 넣는다. 손에 힘이 아직 없어 과자 봉지를 뜯지 못해 엄마와 아빠에게 과자를 넘겨주던 아기 때가 생각이 난다. 요즘 자꾸 그렇다. 장면과 장면이 만난다.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마음과 마음이 겹친다. 

엄마와 나는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소소한 시간과 순간들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엄마가 아픈 것은 싫지만, 이런 시간과 순간들은 또 일상에서 멀어질 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빨리 회복했으면 좋겠고, 이런 시간은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이중적인 마음들이 드는 가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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