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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담는 사람 Feb 06. 2021

나의 사람들, 나의 삶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날, 친구는 조금 슬퍼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드라마 속 어떤 배역이라도 맡은 듯 나는 늘 씩씩했고, 자신 있었고, 현실보다는 이상주의자였으며 꿈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어떤 것도 하지 못할 것만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고 친구는 그런 내가 늘어놓는 말들을 들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는 나를 보며 누구보다 응원해주었으며, 늘 하고 싶은 일이 뚜렷했던 나를 보며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좋은 기회가 닿아 새로운 결정을 하고 새로운 길을 걷기로 했다고 얘기를 꺼내자 떡볶이와 맥주를 마시다가 별안간 눈물을 쏟아냈던 그녀이기에, 나는 그녀의 슬퍼진 눈을 보자마자 더 슬퍼졌다. 담담하게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태세로 내색은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함께 내리는 눈을 맞으며 밤길을 걷던 날에 우리는 내리는 눈을 보며 행복해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돌아가면 진짜 현실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나의 손을 꽉 잡아주던 친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고마웠다.

사실은 내가 이런 생각을 했어.라고 얘기하는 나를 바라보며 자신이 힘들던 때를 보는 것 같다며 계속 울던 친구를 볼 때에도, 나는 여전히 너의 꿈을 응원한다고 말하던 친구를 볼 때에도, 언제나 너의 빅팬이라고 말해주는 친구에게도, 흔쾌히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말해주던 엄마에게도, 네가 필요하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얘기하라던 아빠에게도.


더 잘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던 순간들은 언제나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볼 때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나의 삶은 참 많은 응원을 받았다. 그래서 더 잘 살고 싶었고 책임감 같은 것들도 생겼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아무것도 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 ‘아무것’ 이 되고 싶은 서른한 살의 나. 씩씩하고 자신 있던 배역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져 지금은 멍하게 서있다. 실은 요즘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정말 어렵고 아프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무언가에 찔리는 순간에는 눈물을 쏟아내고, 다시 마음을 추스를 때도 많다.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안하고 고마워서 나는 잘 살아내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런 힘이 없다. 그들은 나를 기다려주고 있으며, 잠시 힘이 없는 나를 알고 묵묵하게 응원해주고 있음을 안다. 이 시간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완전한 분리는 없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또 누군가에게 연결되어 있는 삶들임을.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 응원해주듯, 나 또한 그런 당신에게 좋은 삶을 살아내는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다.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그렇게 될 것이라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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