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고 있나요?

by 마음을 담는 사람

어릴 적 나는 방학이 되면 EBS 탐구 생활을 보고 나서 늘 요리 프로그램을 봤다.

마룻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세상 편하고 행복하게,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리고는 곧장 부엌으로 가서 아까 보았던 메뉴를 떠올리며 무엇이라도 창조해냈다.

(모방이라고 하기에는 그런 재료도 없었고 그만한 실력도 없었다.)

하루는 두부 샐러드를 만들어 주겠다고 호기롭게 친구를 불렀는데, 샐러드 채소 위에 금방 삶은 두부를 얹어서 채소는 숨이 다 죽고 아주 뜨끈한 두부 샐러드를 먹었다.

(친구가 아직도 그때 얘기를 하며 놀린다. 제발, 그 흑역사를 멈추어라. )

엄마는 집에서 호떡을 종종 만들어주었는데 먹던 맛을 떠올리며 만들어 본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도 호떡 반죽에 이스트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엄마가 만드는 호떡은 쫄깃하고 부드럽고 맛있었다. 나는 그냥 밀가루 떡 비슷한 걸 만들었던 것 같다. 질깃질깃했지만 듬뿍 넣은 설탕 맛으로 먹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던 나는, 한 직업을 꿈이라며 말하기 시작했고 마음에 품고 살았다.

스물여섯, 마음 가득 품던 꿈을 이루었다.

나는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었다.


"무슨 일 하세요?"

"직업이 뭐예요?"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처음 만나거나 오랜만에 만나면 사람들은 그런 질문들을 해왔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예요."라고 말했을 때 단번에 알아듣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나는 한 음절씩 꼭꼭 눌러 정확히 말하는 게 습관이 되어있었다.

다음 반응은 거의 두 가지로 나뉘었다.

"우와! 멋진 일 하시네요." 또는 "그럼 정확히 어떤 업무를 하시는 거예요?"

첫 번째 반응이 나올 때 나는 약간의 민망함과 쑥스러움이 섞인 미소를 지었고, 두 번째 반응이 나올 때에는 내가 하는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면 이해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해가 다 되지는 않더라도 더 이상 묻기는 좀 그런지 대충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내가 속한 직업군 외에는 완전히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그 또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생각했다.

멋진 일을 한다는 말에는 직업 자체가 그럴 듯 해 보이는 단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흥미로운 작업들을 많이 해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한 번쯤은 꿈꿔왔던 직업이기에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꽤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동경으로 바라봐주던 직업을 갖고 있었다.


요리를 하고, 음식을 예쁘게 세팅하고, 멋진 사진과 영상을 위해 포토그래퍼와 협업을 하고, 음식을 담을 그릇을 고르고 협찬을 받고, 책을 만들고 방송 촬영을 하는 등의 많은 일들을 했다. 그리고 푸드스타일리스트 뒤에 내 이름 석자가 들어간 감각 있는 명함도 있었다.

일이 힘들어도 명함을 보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 내심 뿌듯했다. 사실 종이 한 장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 종이 한 장이 나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나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덧붙이면, 하나 슬픈 일은 사실 그 명함은 크게 쓸 일이 없었다. 클라이언트 미팅 때 선생님 명함을 드리고, 어시인 우리 명함도 같이 드릴 때 쓰는 정도였다. (사실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인 어시 명함.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잘 없다.)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일할 때 나는 월 백만 원을 벌었다. 슬픈 얘기지만 업계가 보통 그랬다.(보통 어시 생활 때는 선생님께 배우면서 일을 하는 개념이다.)

돈을 적게 받으면 시간도 짧게 일하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답하자면, 촬영 스케줄이 없으면 일찍 퇴근하는 때도 있었다. 이 얘기는 촬영 스케줄이 많으면 언제 퇴근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새벽에 촬영이 끝나고 사무실 바닥에 이불 깔고 몇 시간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 그날의 촬영을 준비하는 날에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고 하고 싶던 일이지만 나라고 이 돈 받으려고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정말 꿈이 아니면 하지 못했을 거다.

선생님 밑에서 어시생활을 하며 차근차근 경력과 시간을 쌓으면 '진짜'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될 수 있었다. (진짜'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면 페이는 천차만별이다. 어시의 현실은 다소 어둡지만 인내로 그 시간을 버티우면 밝은 미래가 올 수도 있다. 이것은 인생의 진리?) 솔직하게 말하면 그 당시 나는 단독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아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 미완성의 상태로 일을 그만두었다.


아무튼 얘기로 다시 돌아가, 나는 교통비라도 아껴야지 싶어 매일을 걸어서 출퇴근했다.(실제로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하기도 했고.) 모두가 초반에만 조금 걷다가 결국에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할 거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회사를 다니는 1년 반 내내 걸어서 출퇴근했다.

그리고 월세로 월급의 절반을 냈다. 그리고 타지 살이를 하는 나에게 주어진 돈은 한 달에 약 오십만 원. 오십만 원 안에서 해결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음식을 만들고 꾸미는 푸드스타일링을 한다면서 정작 나를 꾸미지 않고 추레하게 다니는 것은 정말 싫었다. 명품 옷이나 가방은 가질 형편도 안되었고 어울리지도 않았다. 옷을 좋아해서, 비싸지 않지만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들을 사서 입었다. 푸드 스타일링을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트렌드는 읽어야 하니까 새로 생긴 식당과 카페는 주기적으로 가야 했다. 한번 방송 촬영이 들어가면 퇴근은 언제 할지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생길 때 친구를 만나야 했다. 그리고 고생했으니까 맛있는 것도 먹어줘야 했고.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지.(삶은 정말이지, 의무와 의향의 연속이 아닌가.) 아무튼 어떻게 어떻게, 그 돈으로 살아졌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 서로의 속사정을 알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퇴근하며 그런 고충들을 나누는 게 일상이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엔 연남동 연트럴 파크를 매일 지나갔는데, 주전부리나 맥주 한 캔을 사서 그 길에 앉아 서로의 하루를 토닥이고 내일의 우리를 생각하며 짧은 한숨과 꿈을 나누기도 했다. 사실은 눈물 날만큼 앞이 캄캄하고 막막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꿈꾸는 대로 꼭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하루를 마쳤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 직업에 대한 환상과 나의 삶은 괴리가 컸지만 그것이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다 그렇게 사는 것이니까. 남들이 생각하는 나와, 현실의 내가 늘 접점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었고 모든 것이 나의 몫이었다. 나는 그것을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행복했다.

꿈꾸던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불러낸 작은 부스러기 같았다. 부스러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낸 내가 대견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못했을 일이다. 나는 정말 그 일이 하고 싶었고, 오랜 시간 꿈꿨던 장면 속에 내가 있다는 게 좋았다. 그 순간을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어 행복했다.


지금도 나는 마음을 따라 살고 있다. 스물여섯에서 서른이 되었고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사실 크게 변하지 않았다. 상황은 아주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 현상 유지 정도로 살아간달까? 이 말은 너무 슬픈데. 사실이 그렇다.

마음을 따라 살다가 훗날 정말 남는 것이 그것뿐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도 만나본 적이 없는 미래의 내가 불안하기도, 걱정되기도 하니까. 그럴 때면 생각한다. 언제 나한테 쉬운 게 있었나,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깊이 느끼게 될 테니 그날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자고.


시간이 흐르고 일을 하고, 살아가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은 것이 다르다는 것을 체감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들과 경험치로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다. 눈치로 대충 때려 맞힐 수 없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겠다 싶은 것들도 많아진다. 삶은 늘 그렇게 돌아간다.

이럴 때일수록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자는 말은 아니다. 다른 이의 시선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다른 이의 생각 안에서 갇혀 살지 말자고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과 생각에서 자유로워지자.

나의 시선이 관점이 되고, 나의 생각이 가치관으로 자리 잡게끔 단단해지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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