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스물일곱, 청춘이라는 단어에 잘 어울리는 나이였고 말 그대로 푸른 봄철 같았다.
막연한 동경에서 시작된 꿈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었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꿈을 발견하는 반짝이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어떤 것은 그렇게 시작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만 봐도 삶은 분명한 인과 관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모닥불에 잘 구워진 마시멜로우 같은, 보슬보슬하고 따뜻한 것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때때로 어떤 벽에 부딪히곤 했는데, 따뜻하던 마시멜로우가 차가워지는 순간 현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면 아마도 하지 못했을 거다.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었고 무던히 견뎌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그때는, 월급의 반이 월세로 나갔다. 매달 빠듯한 생활이었고 그 흔한 신용카드를 만들기도 어려웠다. 나를 증명해 주는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프리랜서라고 말하면 조금 덜 서글플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은행 일을 보고 있는데 한 은행원분께서 친절한 목소리로 고객님, 신용카드 하나 만드세요. 하고 말을 걸어왔다. 속으로 대답했다. 저 신용카드 못 만들어요. 만들 수 있다면 저도 만들고 싶네요. 하며 처음 보는 사람을 붙들고 이러저러해서 카드를 못 만든다는 말을 하는 모양도 우스우니, 나는 그냥 슬쩍 웃고 말았다.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던 생활 속에서 나를 지탱하게 하는 것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는 점이 유일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고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꽤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느껴졌다.
현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향해 나의 순간들을 성실하게 쌓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세상은 더 이상 나에게 마시멜로우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차츰 느끼고 있을 때였다.
잘해야 했다. 성실하게 쌓아가던 순간들만 붙들며 보이지 않는 미래를 호기롭게 견디기에는, 나는 조금씩 겁이 났다.
삶의 모양이 너무 다양해 복잡하다고 느낀 누군가가, 성공과 실패라는 단 두 가지 프레임으로 삶의 기준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정확히는 실패 아닌 성공이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며 사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리고 삶이 정말 그 두 가지로만 설명되는 것이라면 나의 삶은 어디에 속해있을까 생각했다.
그쯤 나는 곁에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덧 이십 대 후반이 되었지만 어떤 결과물이랄까, 그런 것들은 전혀 없었다. 열심히 살았던 시간 끝의 결과가 이런 것이라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숱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내 하나의 꿈을 접어두었다. 가치관 그리고 현실적인 고민들로부터 온 결정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포기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포기는 나에게 실패하는 것이었다. 포기라는 말이 무겁고 서러웠다. 약한 사람이 되는 듯한 기분이 싫었고, 그 말이 내 삶을 관통하는 것이 싫었다.
그날 이후 나는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기 위해, 아니 어쩌면 ‘구색 좋은 포기’를 위해 수많은 이유들을 만들었던 것 같다. 흔히들 말하는 포기라는 것을 내가 하지는 않았다고, 나에게는 그렇게 했어야만 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다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생각하며 말이다.
오랫동안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는 세 번의 시험을 치른 이후 내게 말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그래서 이제 그만두려고 한다고 했다. 친구가 얼마나 원했던 것인지를 알기에 그 말을 듣는 내 마음도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인지 친구가 멋져 보였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을 포기하는 게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친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놓을 줄 알았다. 때로는 가지려는 때보다, 놓으려는 때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친구는 엄청난 용기를 가졌고, 뒤돌아보지 않고 그 결정대로 걸어갔다. 그리고 또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다.
어떠한 포기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과거의 내가 있었다. 포기하는 것은 실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었다. 실패하는 것이 싫어 구색 좋은 포기를 위해 수많은 이유들을 마음속에 쌓았던 내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또 다른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 번의 포기 뒤에는 또 다른 선택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선택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바뀐 것은 신용카드가 있다는 것뿐만은 아니다. 신용카드가 있다고 해서 성공한 삶도, 그것이 없다고 해서 실패한 삶도 아니다. 성공과 실패 단 두 가지로만 우리네 수많은 삶들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결국 삶은 선택하고,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들의 연속이 아닐까.
내가 두려워했던 포기를 했다고 해서 내 삶에 엄청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처음인 삶, 서툴 수밖에 없다. 삶이라는 게임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알아 갈 때쯤이면, 유명한 노랫말처럼 우리는 이미 많이 익어가고 있을 때일지 모른다.
내가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포기 좀 하면 어때. 이것도, 저것도 삶의 모습인걸요.
나는 포기하고, 선택하며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