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이, 내가 나 자신과 부조화를 이루는 것보다 낫다."(It would be better for me... that multitudes of men should disagree with me rather than that I, being one, should be out of harmony with myself.)(소크라테스, [고르기아스] 중에서)
여러분은 헬스장에서 근육 운동을 해본 적이 있나요? 운동을 처음 시작하면 근육통으로 고생하지만, 그 과정을 견디면 더 강한 근육이 만들어집니다. 근육에 미세한 손상이 생기고, 그 손상이 회복되면서 튼튼한 근육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이와 비슷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하며 세상을 배워가듯, 우리의 사고도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성장합니다. 생각의 불일치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고민의 시간이 없으면 생각이 발전하거나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성장 과정은 정말 피곤하고 귀찮은 일입니다. 누군가와 의견이 다를 때면 불편하고,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부끄럽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때로 너무나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쉬운 길을 선택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그 쉬운 길이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5분짜리 유튜브 영상으로 복잡한 경제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수로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죠. "100만 조회수라면 틀림없이 맞는 말이겠지!" 하면서 말이에요. 전문가의 의견이라면 무조건 맞다고 믿고, 대중이 좋다고 하면 우리도 덩달아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2,400년 전, 한 괴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당시 아테네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는 이런 '편한 길'을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이 위험했을 때도, 대중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을 거부했죠. 그의 제자들이 "선생님, 도망가세요!"라고 애원했을 때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그래도 때로는 대중의 의견이 옳을 때도 있지 않나요?" 라고 물으실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대중이 완전히 잘못된 선택을 한 사례도 보여줍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그는 자신은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다수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시죠.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불편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가진 공통되는 생각이나 의견이라도 그 속에 모순은 없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반성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음악처럼 정리된 생각과 의견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떠신가요? 오늘부터 우리도 한번 시작해볼까요?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머리 아프고 피곤하더라도, 진정한 나를 만들어가는 이 여정을... 소크라테스라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힘들어도 괜찮아. 그 불편함이 바로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