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건을 살 때, 정말 필요한 것만 살까요? 케이트 소퍼(Kate Soper)는 꼭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현대 소비문화에서는 물건을 사는 행위가 단순히 필요를 채우는 걸 넘어,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변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최신 스마트폰이나 명품 가방을 사는 건 단순히 그 물건의 기능이나 품질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사람들은 그런 물건을 통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 혹은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릅니다.
소퍼는 현대 사회에서 소비가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가 됐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소유한 물건으로 자신을 설명하려 합니다. 좋은 옷, 멋진 가구, 최신 전자기기는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어떤 이미지로 보이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작동하죠.
SNS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누군가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찍은 음식 사진을 올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 산 물건을 자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비싼 음식과 명품 소비는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기"를 위한 무대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엔 문제가 있습니다. 물건으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이런 방식은 끝이 없습니다. 새로 산 물건에 잠시 만족할 수는 있겠지만, 곧 새로운 제품이 나오거나 유행이 바뀌면서 또 다른 소비를 해야 할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소퍼는 이를 바닷물을 마시는 일에 비유합니다. 처음에는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심한 갈증이 찾아오죠. 소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를 사면 잠깐은 만족스럽지만, 곧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는 겁니다.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찾으려는 이 방식은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만약 소비가 나를 정의한다면, 물건이 낡거나 유행이 지나면 우리의 정체성도 흔들리게 됩니다. 이런 정체성은 얕고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진정한 자아를 탐구하거나 내면의 가치를 발견하기보다는, 외부의 평가에 자신을 맞추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결국, 소비로 만들어진 정체성은 내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사람인지보다는,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로막고, 정체성을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소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 하면, 정체성은 마치 얇은 껍질처럼 쉽게 깨지고 무너진다." 물건이 사라지면 나를 설명할 방법도 사라지는 셈이니까요. 결국, 이런 방식은 우리를 더 공허하게 만들고, 더 많은 소비로 그 공허를 채우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과도한 소비는 환경과 사회에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예를 들어, 패스트 패션은 싸고 쉽게 살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환경 오염과 노동 착취가 숨어 있습니다. 소퍼는 우리가 소비로 자신을 증명하려다 보니 이런 문제를 외면한다고 비판합니다.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물건이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그렇다면 이런 소비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소퍼는 우리가 소유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태도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질적 소비가 아닌 경험과 관계에서 얻는 기쁨이 훨씬 더 깊고 오래 간다는 겁니다.
비싼 물건을 사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소박한 산책이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떠올려 보세요. 자연에서 보내는 하루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더 큰 만족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듭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소비할 때 잠시 멈추고 질문해 보는 습관입니다. "이 물건이 정말 필요한가?", "이 물건을 구입하기 한 선택이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스스로 물어보는 거죠.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을 사거나,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정체성을 물건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행동에서 찾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물건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진짜 나를 정의합니다. 물건이 아니라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 곧 나를 말해줍니다.
케이트 소퍼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소유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말고, 삶의 방식과 가치로 자신을 표현하라." 소비를 통해 나를 설명하려는 태도는 결국 나를 더 얕게 만듭니다. 물건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가치와 행동 속에서 나를 찾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소비가 아니라 더 충만한 삶일 겁니다. 그리고 그 삶은 물건이 아닌, 우리의 가치와 행동 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