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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Nov 27. 2024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한 것들도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지요. 이런 태도는 때로 우리의 잘못도 아닌 극단적인 상황에서 우리를 무너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윤리적인 삶의 본질에 대해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윤리적인 삶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것은 마치 단단한 보석이 아닌 연약한 식물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고유한 아름다움은 바로 그 연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To be a good human being is to have a kind of openness to the world, an ability to trust uncertain things beyond your own control, that can lead you to be shattered in very extreme circumstances for which you were not to blame. That says something very important about the condition of the ethical life: that it is based on a trust in the uncertain and on a willingness to be exposed; it’s based on being more like a plant than like a jewel, something rather fragile, but whose very particular beauty is inseparable from that fragility.)(마사 누스바움, [연약한 선] 중에서)


 좋은 글을 인용하다보면 문장 한 두개를 선택하는 것이 꺼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사 누스바움의 명언을 마지막 두 문장만 인용하려다가 그 앞의 전체 문장이 너무 좋아서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긴 문장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인간은 현실 속에서 지극히 나약한 존재입니다. 평소에는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극한 현실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가령 응급 상황에서 의사가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어느 환자를 먼저 치료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은 도덕적 취약성의 본질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의사는 가능한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모든 환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는 상처 또한 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한 의도와 윤리적 결단이 외부 조건과 충돌하며 남기는 상처, 그리고 그 속에서도 지속되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마사 누스바움은 [연약한 선]에서 이러한 도덕적 취약성을 인간 조건의 본질로 규정하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윤리적 실천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그녀는 철학의 출발점이 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철학을 통해 질문을 던졌던 근본 문제가 바로 현실 속에서의 인간 존재의 취약함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취약성의 윤리학'은 완벽한 도덕적 주체의 환상을 거부하고, 불확실성과 상처받음의 가능성을 수용하는 새로운 윤리적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도덕적 취약성을 무지(agnoia)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고, 이성적 통찰을 통한 극복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순수한 이성적 덕이 현실의 복잡성 앞에서 한계를 드러냄을 보여줍니다. 플라톤은 이데아(eidos)의 세계를 통해 도덕적 취약성 극복을 시도했으나, 누스바움은 이것이 인간 실존의 구체성을 간과한다고 지적합니다. 현대의 맥락에서 이는 추상적 윤리 원칙과 구체적 상황 사이의 긴장을 보여줍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통해 도덕적 취약성에 접근했습니다. 그의 중용(mesotes) 개념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의 균형을 제시하며, 누스바움은 이것이 현대의 복잡한 윤리적 상황에 가장 적절한 지침이라고 평가합니다.


 응급 상황 의사의 윤리적 고뇌의 사례는 '도덕적 취약성'의 현대적 표현이었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완벽할 수 없었지만, 불완전함 속에서도 인간다움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었습니다. 누스바움이 전하는 깊은 통찰은 바로 이 연약함 속에서 피어나는 선(善)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마주한 복잡한 윤리적 도전 속에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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