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를 소유하고 파악하며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타자가 아니다. 소유와 이해, 파악은 모두 권력의 또 다른 이름이다.”(If one could possess, grasp, and know the other, it would not be other Possessing, knowing and grasping are synonyms of power.)(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중에서)
레비나스의 말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우리는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그 사람의 복잡성을 단순화하거나 자신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친구, 가족, 혹은 낯선 사람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러나 타자는 언제나 우리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존재로 남아있으며, 이를 인식하는 것이 존중의 시작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그는 "타자"를 하나의 대상처럼 다루거나, 우리가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을 거부합니다.
레비나스는 타자가 완전히 이해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이나 삶의 모든 면을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는 타자가 항상 우리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독립적이고 고유한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만약 우리가 타자를 "다 이해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타자를 단순화했거나, 그 사람을 내 마음대로 해석했기 때문일 겁니다.예를 들어, 친구를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그 친구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의 복잡한 마음과 삶을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은 아닐까요? 타자는 친구든, 낯선 사람이든, 언제나 내가 모르는 부분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시도는 결국 그 사람을 내 기준에 맞춰 축소시키는 일이 됩니다.
우리가 타자를 소유하려 하거나 지배하려고 하면, 결국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연인 사이를 떠올려 보세요. 누군가 상대의 모든 것을 "완벽히 알고 싶다"고 말하면서 행동을 하나하나 통제하려 든다면, 그 관계는 결국 어려워질 겁니다. 레비나스는 이런 태도를 "권력"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권력은 타자를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타자의 행동과 존재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이는 상대를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나의 이해와 이익에 맞춰 조작하려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타자를 내 뜻대로 하려는 욕심은 타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함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윤리는 "얼굴"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얼굴은 단순히 눈, 코, 입의 조합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한 타자의 고유한 존재를 상징합니다. 얼굴은 타자를 나의 이해와 소유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권력의 태도를 배제하며, 그 자체로 나를 향한 윤리적 요청을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길에서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느끼는 책임감이나, 아기가 울 때 본능적으로 느끼는 돌봄의 의무가 바로 얼굴의 메시지입니다. 이는 타자가 우리에게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일깨워줍니다. 이것이 바로 레비나스가 말하는 윤리적 책임입니다. 얼굴은 우리에게 "나를 해치지 말라"는 요청과 동시에 "나를 위해 책임을 다하라"는 호소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타자를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지배하려는 태도를 넘어, 타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윤리적 관계를 형성하게 합니다.
레비나스는 책임이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길에서 누군가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어 보일 때, 우리는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그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도와주는 것이 맞다고 느끼는 거죠. 바로 이런 행동이 윤리적 책임입니다. 우리가 타자에게 지는 책임은 타자가 우리에게 요구해서가 아니라, 타자가 단지 거기에 존재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이는 타자의 존재가 나의 생각과 판단에 종속된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레비나스의 생각은 현대사회에서도 큰 의미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글로벌 사회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문화나 생각이 다르면 종종 그들을 설득하거나 바꾸려 들지요. 하지만 레비나스는 우리에게 타자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갈등의 이유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이유입니다.
레비나스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더 겸손해지라고 말합니다. 타자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그 신비를 억지로 해석하려 하거나 내 뜻대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타자의 얼굴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책임은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타자의 다름을 존중하고, 그 신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레비나스가 말하는 윤리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