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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 : 마스크

by 정지영

우리는 모두 어떤 ‘마스크’를 쓰고 살아갑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 타인의 기대, 살아남기 위한 방어막. 하지만 어떤 마스크는 단순한 위장이 아니라, 정체성을 왜곡하는 고통이 됩니다.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1961)은 식민지 현실에서 ‘마스크’의 문제를 고민한 철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그는 흑인과 백인,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관계에서 강요된 가면이 정체성을 분열시키는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강요된 가면과 정체성의 위기

파농은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나 프랑스 국민으로 성장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흑인은 프랑스어를 배우고 유럽 문화를 익혔지만, 여전히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프랑스를 위해 싸웠지만, 백인 병사들만 훈장을 받는 차별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프랑스로 유학 간 그는 길거리에서 한 백인 아이가 "엄마, 저기 검둥이가 있어!"라고 외치는 장면을 통해 자신이 ‘인종적 이미지’로만 규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Peau noire, masques blancs, 1952) 집필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가면 속에서 분열되는 정체성

파농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을 활용해, 식민지 현실에서 흑인이 백인의 시선 속에서 왜곡된 존재로 규정되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유럽 사회에서 흑인은 ‘야만적’, ‘본능적’이라는 이미지로 대상화되며, 이러한 고정관념은 미디어와 문학 속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흑인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제국주의가 강요하는 왜곡된 정체성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그는 프랑스군의 고문을 겪은 알제리인들과, 프랑스 사회에서 성공하려 했던 흑인 환자들의 자기 혐오를 목격했습니다. 그는 이를 "식민적 신경증"이라 부르며, 식민주의가 인간의 정신까지 파괴하는 체제임을 지적했습니다. 파농은 피식민자가 강요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스스로 주체로서 정체성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그는 피식민자가 저항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식민지와 정체성 압박

오늘날에도 특정한 정체성을 강요하는 ‘제국주의’는 형태만 바뀐 채 여전히 존재합니다. 과거 식민지 시대에는 인종과 문화적 동화를 통해 피식민자의 정체성을 지배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정교한 방식으로 마스크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미디어는 이상적인 외모를 강요하고, 사회는 ‘좋은 대학 → 좋은 직장 → 안정된 삶’이라는 공식을 요구하며, 젠더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합니다. 또한, SNS는 이상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강요하며, 우리는 남들의 시선에 맞춰 자신의 이미지를 조작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정체성의 제국주의’이며, 파농이 말한 ‘마스크’는 단순한 인종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보이지 않는 식민지적 억압을 의미합니다.



정체성의 식민지에서 해방되려면?

우리는 사회가 부여한 ‘성공’, ‘아름다움’, ‘행복’의 기준이 진정한 가치인지 의심해야 합니다. 파농이 제국주의 프랑스의 기준을 거부했듯, 우리는 현대 사회가 만든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SNS와 미디어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남들의 인정보다 자기만족을 기준으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파농은 흑인이 백인처럼 살도록 강요받는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남들과 같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다름’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서 옵니다. 강요된 미의 기준을 거부하고, 남들이 정한 성공의 틀에서 벗어나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마스크를 벗고,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해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은 무엇인가?”

마스크를 벗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 없이는 우리는 온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는 강요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의 시작입니다.



* 첨언 :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이 우리 국민에게 "식민적 신경증"을 심어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일본은 미움과 증오의 대상인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뿌리깊게 자리잡았던 우리 자신에 대한 비하와 열등감도 같은 신경증적 현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오래된 신경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는가입니다. 이 문제도 한 번은 깊이 있게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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