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 사회와 집단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형성되고 다듬어집니다. 우리가 쓰는 말과 가치관, 습관, 심지어 기억까지도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합니다. 그래서 기억을 단순히 개인의 경험으로 보기보다는 사회적 환경과 집단의 영향으로 만들어진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모리스 알바흐스(Maurice Halbwachs)는 에밀 뒤르켐의 제자로서 집단기억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기억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집단 속에서 형성되며, 언어와 제도, 전통 같은 공유된 틀에 의해 구조화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을 담은 그의 저서 '집단기억'(1950)은 사회적 기억 연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혼자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속에서 기억을 나누고 만들어갑니다. 어떤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할지는 사회적 환경이 결정하며, 이 과정에서 기억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집단기억의 핵심입니다.
흔히 역사를 사회적 기억과 같은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알바흐스는 이 둘을 분명히 구분했습니다. 집단기억은 특정 집단의 현재 정체성과 필요에 따라 유지되고 변화하는 반면, 역사는 과거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입니다. 다시 말해, 집단기억은 살아 숨 쉬는 경험이며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역사가 연구를 통해 고정된 형태로 남는다면, 집단기억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강조점이 바뀌고 새로운 의미가 더해질 수 있죠.
집단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선택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입니다. 사회 집단은 현재의 필요에 따라 특정 사건을 강조하거나 재구성하면서 집단의 정체성을 다져갑니다. 이 과정에서 기억은 현재적 의미를 얻게 되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집단기억은 단순한 추억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과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광주 시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에게 5·18 민주화운동은 단순한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집단기억입니다. 이는 과거의 객관적 재구성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더해가며 살아 숨 쉬는 기억입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이어가는 기억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더욱 굳건히 합니다. 오늘도 광주에 그 '집단기억'이 현재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모든 집단에는 저마다의 집단기억이 있습니다. 가족, 학교, 기업 등 모든 공동체는 그들의 집단기억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며,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이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발전하는 바탕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단기억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미래를 만들어가는 힘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