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가 '아는 것'(知)이 무엇인지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은 인정하되 그 힘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에게 다시 인(仁)이 무엇인지를 묻자 대답했다.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난후 그 보상을 구한다면 그것을 '인'이라 말할 수 있다."
(樊遲問知。子曰:「務民之義,敬鬼神而遠之,可謂知矣。」問仁。曰:「仁者先難而後獲,可謂仁矣。」)(공자, 논어 옹야편 22장)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승진을 위해 밤낮으로 일할 것인가, 가족과의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길 것인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안정적인 직장을 유지할 것인가, 꿈꿔왔던 창업에 도전할 것인가? 이런 결정 앞에서 우리는 종종 '내가 어떻게 해야 옳은가'와 함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때로는 점집을 찾거나, 타로카드를 펼치거나, 별자리 운세를 찾아보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자 합니다.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요즘, 이러한 초자연적 해답을 구하는 경향은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2500년 전, 공자는 이미 이러한 인간의 고민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남겼습니다.
인용한 공자의 말에서 '務民之義'의 '民'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체 의미가 크게 달라집니다. '民'을 '백성'으로 해석하면 이 구절은 군주가 갖춰야 할 지혜와 덕에 관한 내용이 됩니다. 그러나 전체 문맥을 고려할 때 '民'을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務民之義'는 '사람(民)이 마땅히 해야 할 일(義)에 최선을 다한다(務)'로 옮길 수 있습니다. 앎(知)은 실천을 위한 것입니다. 진정한 앎이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앎은 추상적이고 공허할 뿐입니다. 아무리 추상적인 지식이라도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실천될 때 비로소 진정한 앎이 됩니다.
이러한 해석은 다음 구절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敬鬼神而遠之'는 직역하면 '귀신을 공경하되 거리를 둔다'입니다. 앎에 관한 이야기 중 갑자기 '귀신'이 등장하는 것이 의아할 수 있지만, 우리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반드시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순간에 직면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우리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한계에 대한 인식은 일을 대충 하는 사람은 깨닫지 못하며, 정말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다 부딪치는 한계, 나의 힘과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겸손하게 그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을 가리킵니다. 공자가 말한 '귀신'은 인생의 불가항력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인정합니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한계를 인정하지 못해 억울해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해 결국 일을 망치고 맙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와 삶의 신비를 인정하되 너무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바로 '귀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올바른 앎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삶의 한계는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영역 너머에 있으며, 그 영역은 우리가 계속 확장해 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의 능력 밖의 상황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거나 미신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진인사'를 하지 않고 '대천명'만 바라는 것이 바로 '귀신을 가까이 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인'(仁)에 대한 공자의 다음 설명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인'이란 어려운 일을 먼저 최선을 다해 한 후에 보상이나 결과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성품은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노력 없이 결과만 바라는 사람의 성품은 인하다고 할 수 없으며, 반드시 어떤 결함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먼저 노력하고 그 후에 노력의 결과를 얻는 사람이 바른 성품을 가진 사람, 즉 '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근대를 거치며 종교와 미신으로부터 벗어나 계몽되었다고 믿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신과 비합리적 신념에 의지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지도층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2500년 전 공자의 대화가 놀랍도록 현대적인 지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옹야편 22장을 정치적 군주의 도리가 아닌 보편적 인간 삶의 지혜로 해석하려 했으나, 결국 다시 오늘날의 정치 리더십에 대한 시사점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 공자의 이 말에 담긴 삶의 지혜는 과거 어느 때보다 현재에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