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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추는 가장 진실한 풍경

by 정지영

"통치자의 지능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The first method for estimating the intelligence of a ruler is to look at the men he has around him.)(마키아벨리, [군주론] 중에서)


사람은 흔히 타인을 판단할 때 겉으로 드러난 말이나 행동에 의존합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만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자리하며, 그 진실은 관계 속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철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통치자의 지능을 판단하려면 그의 주변 인물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정치인을 평가할 때 흔히 그가 하는 공식적인 연설이나 정책 같은 기준을 들이대곤 합니다. 하지만 정치인이 자신을 얼마나 근사한 언어와 논리로 포장하는지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오류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우리는 정치인이 어떤 사람들을 자신의 측근으로 선택하는지를 보고 그를 평가해야 합니다.


이는 비단 정치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세요. 우리가 누구와 함께하는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관계는 말보다 정직한 자기 표현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지는 단순한 사회적 습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치관, 욕망, 정체성이 외부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진정한 리더는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이는 단순한 인재 채용이 아니라 성숙한 자아와 자기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반면, 자신의 결핍을 숨기기 위해 무능하거나 아첨하는 이들만 곁에 두는 리더는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결국 누구를 선택하느냐는 그 사람의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리트머스지입니다. 더 나아가 어떤 집단의 리더든 일반인이든, 누구를 가까이 두느냐는 내면의 수준과 용기의 척도입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타인에게서 보는 것은 종종 자신의 그림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불편해하거나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무의식 중에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때로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아의 일면을 반영합니다. 그렇기에 관계는 자기를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강력한 성찰의 도구가 됩니다.


'인지적 감염'이라는 심리학적 용어가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의 ‘인지적 감염(cognitive contagion)’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주변 사람들의 정서, 태도, 습관에 본능적으로 영향을 받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흡수하고 모방하게 됩니다. 이는 뇌의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s)와 관련이 있는데, 이 신경세포들은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자신이 그 행동을 직접 하는 것처럼 활성화됩니다. 그 결과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인 습관이나 가치관뿐만 아니라 부정적이고 해로운 행동까지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내면에 침투해 사고와 행동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과 주로 상호작용하는지가 개인의 인격 형성과 내적 성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관계가 똑같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관계는 우리를 더 깊게 성장시키고, 어떤 관계는 스스로를 소모하게 만듭니다. 관계의 정원에 어떤 식물이 자라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경계를 설정하고, 어떤 관계에 정서적 자원을 투자할지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일은 자기 돌봄의 실천입니다. 특히 가까운 내면의 원(inner circle)은 더욱 신중하게 구성되어야 합니다. 좋은 관계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택하고, 돌보고, 때로는 가지를 쳐내는 꾸준한 작업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관계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입니다. 그 정원에 어떤 존재들이 함께 자라고 있는지, 어떤 잡초가 무성해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는 일은 결국 자기 삶에 대한 주인의식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관계는 단지 외부적 현실이 아니라, 내면세계를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입니다.


우리가 맺는 관계는 곧 우리 자신입니다. 관계를 돌본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돌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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