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우리는 왜 감정에 흔들리는가?

by 정지영

"인간 신체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매우 많은 개별 물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동일한 물체에 의해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영향받을 수 있다. 반대로, 하나의 동일한 것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영향받을 수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신체의 동일한 부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하나의 동일한 대상이 서로 상충하는 많은 감정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명제 17의 주석



철학자의 날카로운 시선

스피노자는 인간의 감정을 바라보는 혁명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감정을 신비롭거나 영적인 현상으로 보지 않았다. 대신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물리적 현상으로 이해했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불이 산소를 만나면 타오르는 것처럼, 인간의 감정도 명확한 원인과 결과를 가진 자연 현상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관점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다. 감정을 도덕적 선악이나 영혼의 문제로 바라보던 시대에, 스피노자는 감정을 기하학적 정밀함을 통해 분석했다. 그의 주저 『에티카』는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처럼 공리와 정의, 명제와 증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정조차 수학적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스피노자는 왜 우리가 감정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보았을까? 그 답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구조에 있다.



복합체로서의 인간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매우 많은 개별 신체들로 구성된" 복합체다. 뼈, 근육, 혈액, 신경, 장기 등 수많은 부분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나'라는 존재를 이룬다.


이런 복합적 구조가 바로 감정적 흔들림의 근본 원인이다. 단순한 존재라면 한 가지 방식으로만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복합체인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대상이 서로 상충하는 많은 감정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연인과의 데이트를 생각해보라. 그 사람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동시에 잘못 말해서 관계가 틀어질까 불안하다. 또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면서도 두렵다. 사랑, 기대, 불안, 두려움, 호기심이 동시에 일어난다. 하나의 대상(연인과의 만남)이 상충하는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스피노자는 '동요(vacillatio)'라고 불렀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이 감정 저 감정 사이를 오간다. 이는 인간의 약함이 아니라 복합체로서의 자연스러운 특성이다.



관계적 존재의 숙명

더 나아가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한다. 스피노자의 표현으로는 "외부 신체들에 의해 아주 많은 방식으로 영향받는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외부 자극에 노출된다. 날씨, 소음, 냄새, 빛, 사람들의 표정, 언어, 분위기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우리의 복합적 구조는 이런 자극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산책하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햇빛은 비타민 D 합성을 촉진해 기분을 좋게 만든다. 동시에 자외선에 대한 걱정이 스트레스를 준다. 신선한 공기는 상쾌함을 주지만, 바쁜 일정을 떠올리면 초조함이 밀려온다. 하나의 상황이 복합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인간은 관계적 존재로서 외부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도 완전히 독립적일 수는 없다. 이것이 감정적 흔들림의 두 번째 원인이다.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존재

스피노자는 또 다른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동일한 사람이 이전에 미워했던 것을 지금은 사랑할 수 있고, 이전에 두려워했던 것을 지금은 과감하게 할 수 있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무서워했던 어둠을 성인이 되어서는 오히려 평안함의 공간으로 느끼기도 한다. 학창시절 싫어했던 과목을 나중에 취미로 즐기게 되기도 한다. 헤어짐의 아픔을 주었던 연인을 세월이 지나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인간이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process)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체는 매 순간 새로운 세포로 교체되고, 우리의 정신은 새로운 경험과 지식으로 업데이트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엄밀히 말해 다른 존재다.


이런 변화하는 특성이 감정적 일관성을 어렵게 만든다. 어제 확신했던 감정이 오늘 의문스러워진다. 분명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하면 별로 끌리지 않는다. 이는 변덕이나 의지박약이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인식의 한계와 착각

스피노자는 인간의 인식 능력에도 주목한다. 우리는 사물의 진정한 본질을 직접 알 수 없다. 대신 우리 몸의 상태와 외부 대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기는 '관념'을 통해서만 세상을 안다.


이는 마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빨간 안경을 끼면 모든 것이 붉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끼면 모든 것이 파랗게 보인다. 우리의 감정도 이와 같다. 우울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행복한 상태에서는 같은 것도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연인이 말을 걸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관계가 좋을 때는 '바쁘겠구나' 또는 '집중하고 있나 보다'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불안한 상태에서는 '내가 뭘 잘못했나?'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이 없나?'라고 해석한다. 똑같은 행동이 우리의 내적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인식의 한계 때문에 우리는 종종 실체 없는 것에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상대방의 진정한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의 해석에 따라 기뻐하거나 화낸다. 스피노자가 말한 '부적합한 관념'에 기반한 감정이 바로 이것이다.



욕망의 모순적 구조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감정의 근원은 '욕망(cupiditas)'이다. 욕망은 존재를 지속하고 완성하려는 근본적 충동인 '코나투스(conatus)'의 의식적 표현이다. 쉽게 말해 '더 나은 상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욕망이다.


문제는 욕망 자체가 모순적 구조를 가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으면 또 다른 것을 원한다. 영원한 만족은 없다. 항상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더욱이 여러 욕망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서로 충돌한다. 건강해지고 싶은 욕망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과 안정적이고 싶은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혼자 있고 싶은 욕망 등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런 욕망의 충돌이 내적 갈등과 감정적 혼란을 만든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이 욕망 저 욕망 사이에서 방황한다. 이것이 감정에 흔들리는 또 다른 근본 원인이다.



모방적 욕망의 함정

스피노자는 인간의 모방적 성향도 지적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 함께 기뻐하고, 누군가 슬퍼하면 함께 슬퍼한다. 이런 감정의 모방은 공감과 유대감의 기초가 되지만, 동시에 감정적 혼란의 원인이기도 하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SNS를 통해 타인의 감정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누군가의 행복한 소식을 보면 부러움과 박탈감을 느끼고, 누군가의 불행한 소식을 보면 안도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 타인의 감정이 나의 감정이 되고, 나의 감정이 타인의 감정에 의해 좌우된다.


이런 모방적 욕망은 진정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게 만든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인지 구분이 모호해진다. 그 결과 감정적 혼란은 더욱 깊어진다.



자유의지라는 착각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 혼란의 원인을 의지의 약함으로 돌린다. '의지만 강하면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런 자유의지 개념 자체를 비판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동과 감정은 선행 원인들의 필연적 결과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모두 그럴 만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당구공이 다른 공에 맞아 움직이듯, 우리의 감정도 외부 원인에 의해 일어난다.


이는 결정론적 관점이지만, 절망적 메시지는 아니다. 오히려 해방의 출발점이다. 감정을 도덕적 잘못이나 의지의 약함으로 보지 않고 자연 현상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날씨를 바꿀 수 없지만 날씨에 맞는 옷을 입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감정의 발생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감정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필연성 안에서 찾는 자유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감정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스피노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인간이 감정에 흔들리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 흔들림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이해'에 있다. 감정이 왜 일어나는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무엇이 감정을 강화하고 약화시키는지 이해할 때, 우리는 감정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질투가 일어났을 때 그 감정을 없애려고 애쓰는 대신, 질투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질투는 보통 '비교'에서 시작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이 가졌다는 인식이 질투를 만든다. 이를 이해하면 비교 자체의 허상을 볼 수 있고, 질투의 힘은 약해진다.


또 다른 예로, 불안이 일어났을 때 불안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다. 막연한 불안은 강력하지만, 구체적인 불안은 대처 가능하다. '뭔지 모르게 불안하다'에서 '발표를 잘못할까 봐 불안하다'로 명확해지면, 준비를 철저히 하거나 실수해도 괜찮다는 관점을 기를 수 있다.



감정 이해의 실천적 의미

스피노자의 관점은 단순한 철학적 사변이 아니다. 실제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 통찰을 제공한다.


첫째, 감정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불안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안다. 이 자체만으로도 감정적 부담이 줄어든다.


둘째, 감정의 일시성을 인정하게 된다. 모든 감정은 변화한다. 지금 아무리 강렬한 감정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이를 아는 것만으로도 감정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


셋째, 감정의 원인을 탐구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 감정을 무조건 신뢰하거나 무조건 거부하는 대신, 왜 이런 감정이 일어났는지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넷째, 감정의 복합성을 인정하게 된다. 하나의 상황에서 상충하는 감정들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임을 안다. 이를 통해 감정적 모순을 받아들일 수 있다.



새로운 질문의 시작

스피노자가 "왜 우리는 감정에 흔들리는가?"라는 질문에 제시한 답은 간단하다.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특성이기 때문이다. 복합체이기 때문에,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에,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욕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감정에 흔들린다.


이 답은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정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것인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감정의 에너지를 건설적으로 활용하는 길은 무엇인가?"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바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적 통찰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을 제시할 것이다.


감정에 흔들리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하지만 그 흔들림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인간의 가능성이다. 스피노자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적 자유를 향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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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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