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감정은 수동적일 수도, 능동적일 수도 있다

1부. 감정의 구조를 이해하기

by 정지영

"우리 안에서나 외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의 적합한 원인이 바로 우리 자신일 경우, 우리는 능동적이다. 즉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우리 내부나 외부에서 어떤 결과가 필연적으로 따라 나오며, 그 결과를 오직 우리의 본성만으로도 명석하고 판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때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어떤 결과가 따라 나올 때 우리가 그것의 부분적인 원인에 불과한 경우, 우리는 수동적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정의 2


"우리 정신은 어떤 경우 능동적이고, 또 어떤 경우 수동적이다. 정신이 타당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 필연적으로 능동적이고, 부적합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 필연적으로 수동적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정리 1



직장에서 상사가 갑자기 회의실로 불렀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무슨 잘못을 했나?', '해고당하는 건 아닐까?'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스친다. 불안이 점점 커진다. 15분 후 회의실에서 나온다. 상사는 단지 새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한동안 심장은 계속 뛰었다.


한 시간 후, 같은 사람이 같은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에는 차분하게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일정을 계획하고, 필요한 자원을 검토한다. 흥미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렘과 기대감이 솟는다. 같은 상황, 다른 감정. 무엇이 달라졌을까?


스피노자는 이 차이를 명확히 구분했다. 첫 번째는 '수동적 감정(passio, 정념)', 두 번째는 '능동적 감정(actio)'이다. 같은 기쁨과 슬픔, 욕망이라도 그것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는다.



정념의 정체: 불완전한 이해에서 오는 감정

수동적 감정, 즉 정념은 "혼란스러운 관념"에서 비롯된다. 스피노자는 정념을 "정신이 자신의 신체나 신체의 일부에 대해 이전보다 더 크거나 작은 존재력을 긍정하는 혼란스러운 관념"이라고 정의했다.


앞서 예시에서 첫 번째 불안은 전형적인 정념이다. 상사의 호출이라는 외부 자극에 대해 완전한 정보 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과거 경험, 사회적 통념, 막연한 두려움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관념을 형성했다. 그 관념이 불안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냈다.


정념의 특징은 반응성이다. 외부 상황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한다. 내가 감정의 주체라기보다는 감정에 휘둘리는 객체가 된다. 스피노자 표현으로는 "부분적 원인"만 될 뿐이다.


현대인의 일상은 정념으로 가득하다. SNS 알림음에 즉각 반응하는 조급함, 타인의 성공 소식에 자동으로 솟는 질투, 모호한 메시지에 대한 과도한 해석과 불안. 이 모든 것이 불완전한 정보와 혼란스러운 관념에 기반한 정념들이다.



능동적 감정: 이해에서 나오는 힘

반면 능동적 감정은 "적합한 관념"에서 나온다.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 이해에 기반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이다. 앞서 예시에서 두 번째 기대감이 바로 그것이다. 프로젝트의 내용을 파악하고, 자신의 능력을 검토하고, 성장 가능성을 인식한 후에 발생한 감정이다.


능동적 감정의 특징은 자발성이다. 외부 자극에 단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한 결과로 감정이 발생한다. 내가 감정의 "적합한 원인"이 된다. 이는 그 감정이 외부 자극에 휘둘린 결과가 아니라, 오롯이 나의 본성, 즉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서부터 필연적으로 흘러나온다는 의미이다.


스피노자는 "정신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동 능력을 생각할 때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정신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활동 능력을 고찰할 때 기쁨을 느끼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활동 능력을 더 명확하게 표상할수록 그만큼 더 큰 기쁨을 느낀다."(3부 정리 53) 이것이 능동적 기쁨이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발휘할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만족감이다.


학습할 때 느끼는 지적 희열,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성취감, 타인을 도왔을 때의 뿌듯함. 이런 감정들은 명확한 이해와 의식적 행동에서 나오는 능동적 감정이다.



같은 감정, 다른 원인: 사랑의 두 얼굴

사랑을 예로 들어보자. 연인에 대한 사랑도 수동적일 수도, 능동적일 수도 있다.

수동적 사랑(정념적 사랑)

상대의 외모에 반했다. 상대가 보여주는 관심에 의존한다.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한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불안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 질투한다. 이는 불완전한 이해에 기반한 정념적 사랑이다. 상대를 완전한 개체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수단으로 본다.


능동적 사랑(이성적 사랑)

상대의 고유한 본성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상대의 성장과 행복을 바란다. 관계에서 서로의 능력이 증진되는 것을 기뻐한다. 갈등이 생겨도 이해를 통해 해결하려 노력한다. 이는 명확한 이해에 기반한 능동적 사랑이다.

두 사랑 모두 기쁨을 동반하지만 그 질이 전혀 다르다. 정념적 사랑의 기쁨은 외부(상대)에 의존하기에 불안정하지만, 능동적 사랑의 기쁨은 서로의 본성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므로 자립적이고 안정적이다. 이는 의존이 아닌 연결의 기쁨이다.



정념에서 능동으로: 전환의 열쇠

그렇다면 어떻게 정념을 능동적 감정으로 바꿀 수 있을까? 스피노자는 명확한 방법을 제시한다.

1단계: 감정 인식하기

먼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념인지 능동적 감정인지 파악해야 한다.

정념의 신호들: 갑작스럽고 강렬하게 밀려온다 / 외부 상황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 통제감이 없다 / 반복적으로 같은 패턴을 보인다

능동적 감정의 신호들: 상황을 이해한 후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 내 가치와 판단에 부합한다 / 지속 가능하다 / 성장과 학습으로 이어진다


2단계: 원인 탐구하기

정념이라면 그 원인을 명확히 파악한다. 어떤 외부 자극이 어떤 관념을 불러일으켰는지 분석한다. 그 관념이 얼마나 부정확하고 불완전한지 검토한다. 부장의 호출에 불안해했다면: '호출=문제상황'이라는 단순한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기회, 조언 요청, 단순한 업무 확인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3단계: 이해를 통한 재구성

상황에 대한 더 정확하고 완전한 이해를 구성한다. 사실과 추측을 구분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한다.


4단계: 능동적 대응

새로운 이해에 기반해 의식적으로 행동하고 감정을 조절한다. 이때 발생하는 감정이 능동적 감정이다. 물론 스피노자에게 이 과정은 단순한 마음 훈련을 넘어, 세계와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평생의 철학적 수련에 가깝다. 하지만 이 단계들은 그 위대한 여정을 위한 훌륭한 첫걸음이다.



현대적 적용: 디지털 시대의 감정 관리

SNS에서 '좋아요'를 받았을 때의 기쁨을 생각해보자.

정념적 반응: 즉각적인 도파민 분비, 타인의 인정에 대한 갈증 충족,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싶은 욕구 증가. 이는 외부 자극에 대한 조건반사적 반응이다.

능동적 전환: 잠시 멈추고 생각한다. '이 기쁨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타인에게 전달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관심받고 싶은 욕구의 충족일까?' 이해를 통해 기쁨의 성격을 파악하고, 건전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사용한다.



감정의 주인 되기

스피노자의 핵심 통찰은 감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쁨, 슬픔, 욕망은 인간 존재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문제는 그 감정이 어떻게 발생하느냐이다.


정념에 휘둘리는 삶은 반응적이고 수동적이다. 외부 상황의 노예가 된다. 하지만 능동적 감정에 기반한 삶은 자발적이고 창조적이다. 감정이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을 억누르는 능력이 아니라 감정의 원인을 이해하는 지혜다. 정념을 능동적 감정으로 전환시키는 기술이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의 주인 되기는 단순히 편안한 삶을 넘어, 스피노자가 말한 진정한 '자유'와 '지복(至福, beatitudo)'으로 가는 구체적인 길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오늘 하루 느꼈던 감정들을 돌아보자. 그 중 몇 개가 정념이었고, 몇 개가 능동적 감정이었는지 점검해보자. 정념이 많았다면 그 원인을 탐구하고, 내일은 좀 더 이해에 기반한 능동적 감정으로 하루를 채워보자. 이것이 스피노자가 제시한 감정적 자유로 가는 구체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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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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