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코나투스: 존재를 지속하려는 본질적 노력

1부. 감정의 구조를 이해하기

by 정지영

모든 사물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한에서 자기 존재를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각 사물이 자기 존재를 지속하려고 하는 코나투스는 바로 그 사물의 현실적 본질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 『에티카』 제3부 정리 6, 7


새벽 5시 30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이미 하루 일정을 정리하고 있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다. 이 모든 일상적 행동들이 무의식적으로 이어진다. 왜 우리는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 걸까? 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걸까?


스피노자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우리 안에는 '코나투스(conatus)'라는 근본적인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틴어 코나투스는 '노력', '시도', '충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 코나투스는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장 깊은 본질이다.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코나투스다

흔히 생존본능이라고 말한다. 위험에 처했을 때 도망치려는 충동, 배고플 때 음식을 찾는 욕구 등을 생존본능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는 이보다 훨씬 근본적이다.


"각 사물이 자기 존재를 지속하려고 하는 코나투스는 바로 그 사물의 현실적 본질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스피노자의 이 말은 혁명적이다. 코나투스는 존재를 위해 부가된 도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라는 뜻이다.

이때 '노력'이라는 말을 의지를 쥐어짜는 고된 노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코나투스는 마치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려는 자연스러운 흐름과 같다. 강물은 '애써서' 흐르지 않는다. 그저 흐르는 것 자체가 강물의 본질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코나투스는 생존을 위한 의식적인 분투라기보다, 살아 숨 쉬는 것 자체에 내재된 자연스러운 힘의 발현이다.


꽃이 햇빛을 향해 줄기를 뻗는 것, 새가 새벽마다 지저귀는 것,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 이 모든 것이 코나투스의 발현이다. 의식적인 계획이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지속하려는 힘을 내포한다.



현대인의 코나투스는 어떻게 표현되는가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코나투스는 어떤 모습일까? 생물학적 생존을 넘어서 우리의 존재 지속 노력은 훨씬 복합적이다.


신체적 코나투스: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습관, 충분한 수면. 이는 가장 기본적인 코나투스의 표현으로, 우리 존재의 물질적 기반을 지키려는 힘이다.

정신적 코나투스: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욕구,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경험을 확장하려는 충동. 이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우리가 지속되고 성장하려는 노력이다.

사회적 코나투스: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는 노력, 소속감을 추구하는 충동.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우리의 코나투스는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서도 표현된다.

창조적 코나투스: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욕구,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려는 충동. 예술, 사업, 양육 등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고 지속시키려는 모든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왜곡된 코나투스: 현대적 병리 현상들

하지만 현대인의 코나투스는 종종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소비주의 문화는 우리의 존재 지속 충동을 물질 소유로 치환시킨다. 더 많이 가져야 더 존재한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SNS에서의 '좋아요' 수집도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왜곡된 코나투스다.


번아웃 증후군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성과를 내고 생산성을 높이려는 강박은 마치 더 많이 할수록 더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진정한 코나투스는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자신을 소진시키는 것은 존재 지속과 정반대의 길이다.



자신만의 코나투스 리듬 발견하기

3부 정리 7을 통해 스피노자를 통해 스피노자는 "모든 개체는 자신만의 고유한 코나투스를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획일적인 성공 기준이나 행복 공식은 없다. 나만의 코나투스 리듬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활동을 할 때 에너지가 솟는가? 어떤 관계에서 자신이 더 살아있다고 느끼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우리 고유한 코나투스의 방향을 알려준다. 내성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의 존재 지속 방식이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본성이 다른 까닭이다.


[실습: 나의 코나투스 나침반 찾기]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며, 어떤 활동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몰랐다'거나 '오히려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는지 세 가지만 적어보자. 반대로 어떤 활동이 당신을 가장 지치고 고갈시켰는지도 적어보자. 전자가 당신의 고유한 코나투스가 흐르는 방향이고, 후자는 그 흐름을 거스르는 활동일 가능성이 크다. 이 나침반을 통해 당신은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알 수 있다.



코나투스, 욕망, 기쁨의 삼각관계

이제 1부에서 다룬 핵심 개념들을 하나로 묶어보자. 코나투스, 욕망, 기쁨/슬픔은 어떻게 연결될까?

코나투스는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동력, 즉 '계속해서 존재하려는 힘' 그 자체다. 이것은 우리 존재의 엔진과 같다.

이 코나투스가 의식의 수준에서 구체적인 방향성을 가질 때, 그것이 바로 욕망이 된다. 엔진의 힘을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운전대인 셈이다.

그리고 그 욕망이 실현되어 코나투스가 더욱 강해질 때(즉, 우리의 생명력 게이지가 올라갈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이는 엔진이 원활하게 돌아가며 연료가 채워지는 느낌과 같다.


이 세 가지는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힘이 발현되는 과정의 서로 다른 이름이다. 모든 감정과 행동의 가장 깊은 곳에는 바로 이 코나투스가 역동적으로 흐르고 있다.



코나투스와 자유: 진정한 자기결정

스피노자는 "코나투스는 한정된 시간이 아니라 무한정한 시간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는 우리의 존재 지속 노력이 단순히 오늘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배우고, 창조하고, 사랑하는 모든 행위는 현재를 넘어 자신의 존재를 확장시키려는 코나투스의 표현이다.


"코나투스는 한정된 시간이 아니라 무한정한 시간을 포함한다"는 말은 에티카 3부 정리 9에 대한 해석이다. 정리 9의 원문은 "정신은 명석 판명한 관념을 지닐 때나 혼란한 관념을 지닐 때나 자신의 존재 안에 무한정한 시간 동안 지속하려고 하며 또한 이러한 자신의 노력을 의식한다."이다. 정리 9를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든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든, 우리의 마음은 '계속 살고 싶다', '나로서 계속 존재하고 싶다'는 근본적인 힘에 의해 움직이며, 우리는 이 힘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모든 존재는 소멸되지 않고 계속 존재하려는 관성을 가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항해하는 배의 비유를 들어보자. 코나투스는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이성(명석판명한 관념)은 유능한 항해사가 맑은 날씨에 지도를 보며 항해하는 것과 같다. 엔진의 동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목적지로 순항한다(기쁨). 반면 감정(혼란한 관념)은 미숙한 항해사가 폭풍우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허둥대는 것과 같다. 배는 파도에 떠밀려 이리저리 흔들리고 동력을 낭비한다(슬픔).


진정한 자유는 코나투스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건전한 방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외부의 기대나 사회적 압력에 맞춰 사는 것은 자신의 코나투스를 배반하는 일이다. 반대로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에 휘둘리는 것도 코나투스의 건전한 발현이 아니다.


진정한 자기결정은 자신의 본질적 존재 지속 충동을 이해하고, 그것을 지혜롭게 실현해가는 과정이다. 내일 아침 알람이 울릴 때, 우리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은 단순한 의무감 때문이 아니다. 우리 안의 코나투스가 또 다른 하루를 만들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그 힘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기 자신의 본질에 따라 사는' 삶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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