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감정의 구조를 이해하기
"욕망이란 의식을 동반하는 충동으로 정의될 수 있다.
—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정리 9의 주석
새벽 5시 알람을 무시하고 잠을 더 자고 싶다. 동시에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달콤한 케이크가 먹고 싶다. 하지만 다이어트도 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다. 그런데 거절당할까 봐 두렵기도 하다.
우리는 매 순간 수많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끊임없이 경쟁한다. 때로는 욕망을 나쁜 것으로 여기며 억누르려 하고, 때로는 욕망에 휩쓸려 후회한다.
스피노자는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 있는 욕망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욕망은 억눌러야 할 적도, 무조건 따라야 할 주인도 아니다. 욕망은 우리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힘이자, 모든 감정의 뿌리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욕망을 이해하려면 먼저 '충동'와 '욕망'을 구분해야 한다. 충동(Appetite)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생존 경향이다. 목마를 때 물을 찾는 것, 추울 때 따뜻한 곳을 찾는 것, 위험할 때 도망가려는 것은 모두 욕구에 해당한다.
욕망(Desire)은 이 무의식적 충동이 의식과 만났을 때 생긴다. 예를 들어, 단순히 '목이 마르다'는 충동이 '시원한 콜라가 마시고 싶다'는 구체적인 욕망이 되는 순간이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막연한 충동이 '저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특별한 욕망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의식’의 단계에서 우리의 상상, 기억, 그리고 세상에 대한 믿음(관념)이 개입하면서 단순한 충동이 복잡하고 다채로운 욕망의 옷을 입게 된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충동(衝動, 라틴어: Appetitus)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정서(감정)를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순간적인 충동을 넘어, 인간의 본질 그 자체이며, 삶을 지속하게 하는 원초적인 동력이다. 이 충동은 욕망과 구분된다. 충동(Appetitus)은 의식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작동하는, 존재를 유지하려는 근원적인 힘이다. 이는 무의식적인 차원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욕망(Cupiditas)은 우리가 "아, 내가 이것을 원하고 있구나"라고 '의식'할 때의 충동이다. 즉, 충동에 의식이 더해진 상태가 바로 욕망이다.
스피노자의 혁명적 통찰은 욕망을 모든 감정의 근원으로 본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생명력 게이지를 올리고 싶다는 근본적인 힘', 즉 욕망이 외부 세계와 만나면서 다채로운 감정이 연주되는 것이다.
욕망(게이지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 성취될 가능성이 보이면 희망이 되고, 좌절될 가능성이 보이면 공포가 된다. 욕망이 충족되어 게이지가 실제로 올라가면 기쁨이 되고, 욕망이 방해받아 게이지가 내려가면 슬픔이 된다. 내 게이지를 올려주는 대상에게는 사랑을 느끼고, 내 게이지를 떨어뜨리는 대상에게는 미움을 느끼는 식이다. 직장에서 승진하고 싶다는 하나의 욕망이 상황에 따라 기쁨, 질투, 희망, 불안 등 다양한 감정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많은 철학과 종교는 욕망을 고통의 원인으로 본다. 욕망이 있기에 우리가 괴로워한다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욕망은 삶의 고통이 아니라 삶의 원동력이다.
욕망이 없다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굶어 죽을 것이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고립될 것이다.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성장도 멈출 것이다.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내적 엔진이다. 자동차에 연료가 필요하듯, 삶에는 욕망이 필요하다. 문제는 욕망 자체가 아니라 욕망을 다루는 방식이다.
모든 욕망이 같지는 않다. 스피노자는 우리의 본성을 실현하는 욕망과 우리의 본성을 해치는 욕망을 구분한다.
건강한 욕망은 우리의 능력, 즉 생명력 게이지를 올린다. 지식을 얻고 싶은 욕망, 건강해지고 싶은 욕망,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은 우리를 더 완전한 존재로 만든다. 이런 욕망은 추구할수록 우리가 강해진다.
병든 욕망은 우리의 능력을 해친다. 타인을 해치고 싶은 욕망,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욕망, 의존적이 되고 싶은 욕망은 우리를 약하게 만든다. 이런 욕망은 추구할수록 우리가 무력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스스로를 해치는 병든 욕망을 갖게 될까?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이는 종종 '부적합한 관념(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된다. 과거의 상처나 왜곡된 생각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행위(예: 과도한 음주, 현실 도피)가 일시적인 고통을 덜어주거나 거짓된 안정감을 줄 것이라고 착각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클 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상태를 욕망하는 것 역시, 실제로는 성장을 포기함으로써 고통을 피하려는 소극적이고 병든 욕망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욕망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욕망이 나를 키우는지, 어떤 욕망이 나를 해치는지 구분하는 지혜를 기르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욕망의 성격은 그 대상의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무엇을 욕망하느냐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돈을 욕망하는 사람은 계산적이 되고, 명예를 욕망하는 사람은 허영에 물들기 쉽다. 반대로 지혜를 욕망하는 사람은 겸손해지고, 사랑을 욕망하는 사람은 따뜻해진다. 높은 대상을 욕망할수록 우리 자신도 높아진다. 현대의 소비 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낸다. 광고는 우리가 원하지도 않던 것을 원하게 만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 욕망이 정말 내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이론을 실제 삶에 적용하며 욕망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자.
[욕망 관찰하기: 3줄 욕망 일기]
하루 동안 떠오르는 욕망들을 다음의 3가지 질문에 따라 간단히 기록해보자. 저녁에 목록을 보며 자신의 욕망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 어떤 욕망이 일어났는가? (예: 비싼 명품 가방을 사고 싶다.) 그 뿌리에 있는 진짜 욕구는 무엇인가? (예: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 이 욕망의 실현은 나의 '생명력 게이지'를 올리는가, 내리는가? (예: 일시적 흥분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공허함과 재정적 압박으로 게이지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
[욕망의 뿌리 찾기]
특정 욕망이 생겼을 때 "왜 나는 이것을 원할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새 옷을 사고 싶다면, 정말 옷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다른 표현인지 살펴본다. 욕망의 뿌리를 알면 더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다.
[욕망 순위 정하기]
모든 욕망을 다 추구할 수는 없다. 내게 가장 중요한 욕망, 즉 나의 생명력 게이지를 가장 의미 있게 올려주는 욕망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한다. 중요한 욕망에 집중하면 삶의 산만함이 줄어든다.
[건설적 욕망 키우기]
의식적으로 건전한 욕망을 키운다. 책을 읽고 싶은 욕망, 운동하고 싶은 욕망,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망을 의도적으로 자극해본다.
[욕망의 완급조절]
욕망이 너무 강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강한 욕망이 일어났을 때는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 다음 행동한다. 욕망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욕망을 없애려 하지 말자. 욕망은 우리 존재의 핵심이다. 욕망을 적으로 여기는 것은 자신을 적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
대신 욕망과 친구가 되어보자. 욕망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이되,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는다. 욕망을 현명한 조언자로 대하되, 절대적인 명령자로 받들지는 않는다. 욕망은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도구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되, 그 방향으로 얼마나 빨리, 어떤 방식으로 갈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욕망보다 더 근본적인 힘인 '코나투스'를 살펴볼 것이다. 모든 존재가 자기 자신으로 있으려는 근원적 노력,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감정과 욕망을 결정하는지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