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감정의 구조를 이해하기
모든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비록 절대적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부분적으로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힘을, 따라서 감정의 영향을 더 적게 받을 수 있는 힘을 소유한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5부 정리 4의 주석
우리는 흔히 ‘내 마음’과 ‘내 몸’을 따로 떼어 생각하곤 한다. 마음이 몸에게 명령을 내리고, 몸은 그 명령을 따르는 식이다. 마치 내가 로봇 조종사라도 된 것 같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것이 큰 착각이라고 말한다. 그는 마음과 몸이 원래부터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라고 보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노래를 부르는 한 사람을 떠올려보면 쉽다. 한 사람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때 그에게는 두 가지 차원의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
몸의 사건 (물리적 세계): 그의 성대가 떨리고, 입술이 움직이며, 폐에서 공기가 나온다. 이것은 눈으로 보고, 소리를 듣고, 기계로 측정할 수 있는 물리적인 사건이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모든 물질의 세계를 ‘연장(Extension)’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마음의 사건 (정신적 세계):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는 ‘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생각하고, 가사를 기억하며, 음정을 맞추고, 노래에 담긴 슬픔이나 기쁨을 느낀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사건이다. 스피노자는 이 모든 생각과 느낌의 세계를 ‘사유(Thought)’라고 불렀다.
자, 여기서 핵심 질문이 있다. 성대가 떨리는 물리적 사건과, 노래를 부르겠다는 정신적 사건이 과연 별개의 일일까? 아니다. 둘은 ‘노래 부르기’라는 하나의 행동을 각각 몸과 마음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일 뿐이다. 노래하려는 마음 없이 성대가 떨릴 수 없고, 성대의 떨림 없이 노래가 나올 수 없다.
스피노자는 온 우주가 이와 같다고 보았다. 세상의 모든 일은 물리적인 측면(연장)과 정신적인 측면(사유)을 동시에 가진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도 이와 똑같다. 우리가 ‘기쁨’을 느낄 때, 심장이 뛰고 에너지가 솟는 몸의 변화(연장)와, ‘기쁘다’고 느끼는 마음의 활동(사유)은 두 가지 일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이다.이처럼 마음과 몸이 적군이나 주종 관계가 아닌, 원래부터 완벽한 하나의 팀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식 감정 이해의 가장 중요하고 혁명적인 첫걸음이다.
그렇다면 이 '신체, 관념, 정서'의 삼중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주될까? 그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해부해보자.
1단계: 신체가 먼저 연주를 시작한다 (신체의 변용)
모든 감정은 신체의 물리적 변화, 즉 '연장'의 세계에서 시작한다. 스피노자에게 신체는 외부의 다른 것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여러 방식으로 변화(변용)하는 복합적인 개체다. 특히 그는 "신체가 다른 신체들로부터 더 많은 방식으로 변용될 수 있도록 배치되면 될수록, 정신은 더 많은 사물을 지각하기에 적합해진다"고 말하며, 신체의 복합성과 감수성이 정신 능력의 기반임을 강조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만날 때, 이 신체의 활동 능력, 즉 '존재력(코나투스)'이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칭찬을 들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에너지가 넘치는 '존재력 증가'가, 비난을 받으면 몸이 무거워지는 '존재력 감소'가 일어난다. 감정의 첫 소절은 언제나 이 구체적인 신체의 연주다.
2단계: 정신이 그 소리에 의미를 붙인다 (관념의 형성)
신체의 연주가 시작되면, '사유'의 세계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연주가 동시에 일어난다. 바로 신체의 변화를 정신이 알아차리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관념'의 형성이다.
예를 들어 심장이 빨리 뛰는 신체 변화 자체는 중립적이다. 정신이 이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생각과 연결하면 설렘이 되고, '중요한 시험'이라는 생각과 연결하면 불안이 된다. 이처럼 관념이 감정의 성격을 결정한다.
3. 그 해석은 왜곡되기 쉽다 (부적합한 관념과 정념)
문제는 이때 형성되는 관념이 대부분 불완전하고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다. 스피노자는 이를 '부적합한 관념(inadequate idea)'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지식의 제1종인 '상상(imaginatio)' 또는 '억견'에 해당한다. 우리가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기분이 좋다' 혹은 '나쁘다'는 결과 자체는 강렬하게 느끼지만, 그 감정을 일으킨 원인들의 복잡한 연쇄 고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지는 못한다. 외부 대상이 내 신체에 미친 '결과'만을 단편적으로 인식할 뿐, 그 원인의 본질까지 꿰뚫어 보지는 못하는 것이다.
SNS에서 타인의 행복한 사진을 보고 우울해지는 것은, 상대방 삶의 전체 인과관계가 아닌 편집된 결과물(상상)만을 보고 '나는 불행하다'는 부적합한 관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부 원인에 의해 내 신체가 변하고, 그에 대한 부적합한 관념이 우리를 휘두르는 수동적인 감정을 스피노자는 '정념(passio)'이라고 정의했다.
4. 감정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다
일단 정념이 형성되면, 그것이 우리 생각의 방향을 결정한다. 감정은 사고의 '필터' 혹은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기쁨이라는 감정이 생기면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이고, 슬픈 감정이 생기면 온통 잿빛으로 보인다. 우리는 특정 방향으로만 생각하도록 이끌리며, 정념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이 4단계 과정이 우리가 감정의 노예가 되는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해방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정념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로 지식의 1종('상상')에 머물러 있는 '부적합한 관념'을, 지식의 2종인 '이성(ratio)'을 통해 '적합한 관념'으로 바꾸는 것이다.
'적합한 관념'이란 감정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내 생각이 어떤 편견에 기반하고 있는지 그 인과관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이 '이성적 이해'를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외부 자극에 맹목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우리 자신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능동적 정서(actio)'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념을 이해해서 능동적 정서로 전환하는 것, 이것이 스피노자 철학이 제시하는 감정 치유의 핵심이다.
이러한 철학적 이해는 추상적 이론이 아니다. 일상에서 내 감정을 해부하는 구체적인 도구가 된다.
신체 관찰 (연장의 관점): 감정이 일어날 때 즉시 신체 반응을 점검한다. 어깨가 올라갔는가? 주먹이 쥐어졌는가? 몸의 신호를 놓치지 않는다.
관념 탐색 (사유의 관점): 어떤 생각(관념)이 이런 신체 변화를 일으켰는지 추적한다. 이 생각은 타당한가, 아니면 나의 왜곡된 해석(부적합한 관념)인가? 질문을 통해 상상(1종 지식)에서 이성(2종 지식)으로 나아간다.
정서 명명 (이해의 시작): 이 감정에 가장 정확한 이름을 붙인다. '기분이 안 좋다'가 아니라 '실망했다', '질투한다', '불안하다' 등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결국 스피노자가 『에티카』 5부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명석하고 판명하게 이해할 능력이 있다"고 단언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감정이 신체, 관념, 정서의 유기적인 '시스템'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더 이상 감정의 희생자가 아니라 그 시스템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운영자가 될 수 있다. 감정의 노예에서 감정의 해부학자로, 그리고 마침내 감정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여정, 그 첫걸음은 바로 이 삼중주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