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정념의 뿌리를 찾아서: 부적합한 관념 해체하기

2부. 부정적 감정 해체하기

by 정지영

"정신의 능동적 상태는 오직 타당한 관념에서만 생겨나고, 수동적 상태는 오직 부적합한 관념에만 의존한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정리 3

"허위는 타당하지 않은 관념들, 즉 단편적이고 혼란스러운 관념들이 포함하고 있는 인식의 결핍에 성립한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2부 정리 35


정념의 뿌리: 부적합한 관념이라는 토양

아침에 회사 메일함을 열었다. 상사로부터 "내 사무실로 와서 이야기 좀 하자"는 짧은 메시지가 있다. 순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다. '뭔가 잘못했나?' '해고당하는 건 아닐까?'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스친다. 10분 후 상사 사무실에서 나온다. 그는 단지 새로운 프로젝트 참여 의사를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 10분 동안 나는 이미 불안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이런 경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식으로 감정의 급류에 휩쓸린다. 스피노자는 이런 현상의 정확한 원인을 350년 전에 이미 진단했다. 바로 '부적합한 관념(inadequate idea)'이 만들어내는 '정념(passio)'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부정적 감정은 외부 현실에 대한 불완전하고 왜곡된 이해, 즉 부적합한 관념에서 비롯된다. 상사의 짧은 메시지는 단순한 사실이었지만, 내 정신은 그것을 '위험 신호'라는 부적합한 관념으로 해석했다. 그 순간 나는 감정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었다.



적합한 관념 vs 부적합한 관념: 자유와 예속의 갈림길

스피노자 철학에서 '관념'은 우리가 현실이라는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사용하는 '지도'와 같다. 이 지도의 성능에 따라 우리의 여행은 순탄할 수도, 고될 수도 있다.

부적합한 관념 (찢어지고 흐릿한 지도): 전체 도시를 보여주지 못하고 특정 골목만 보여주는 지도다. 철학적으로 말해, 부적합한 관념이란 어떤 결과(내 몸의 변화)는 인식하지만 그 변화를 일으킨 완전한 원인은 알지 못하는 상태의 관념을 말한다. 이는 스피노자가 말한 '지식의 1종(상상과 억견)'에 해당하며,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우리의 일상적 인식 방식이다. 이 지도를 따르면 우리는 길을 잃고 불안(정념)에 휩싸이기 쉽다.


적합한 관념 (실시간 위성 지도): 도시 전체의 도로망과 실시간 교통 정보까지 보여주는 정교한 지도다. 철학적으로 이는 사물의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그 본질에 맞게 파악하는 관념이다. '지식의 2종(이성)'과 '3종(직관지)'을 통해 얻어지며, 이를 통해 우리는 최적의 경로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유다.



정념의 메커니즘: 부적합한 지도가 감정의 미로를 만드는 과정

1단계: 외부 자극과 신체의 연주 (신체 변용) 모든 정념은 외부 사물이 우리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서 시작된다. 상사의 메시지라는 외부 자극이 눈을 통해 들어와 뇌에서 처리되면서 신체적 변화를 일으킨다. 심박수가 증가하고, 근육이 긴장하며,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2단계: 성급한 길 찾기 (부적합한 관념 형성) 정신은 이 신체 변화를 해석하려 한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처럼, 우리는 찢어진 지도(부적합한 관념)에 의존해 성급한 판단을 내린다. "상사가 부른다 → 뭔가 잘못되었다"는 단편적인 정보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3단계: 정서의 발생 (수동적 정념) 부적합한 관념이 형성되면, 그에 상응하는 감정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불안, 두려움, 걱정이 밀려든다. 이것이 바로 정념(passio)이다. '수동'을 의미하는 이 단어의 어원처럼, 정념은 외부 원인에 의해 내 존재의 힘(코나투스)이 좌우되는 수동적인 상태다. 나의 본성보다 외부의 힘이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4단계 : 정념의 지배 일단 정념이 형성되면, 그것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불안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위협적으로 보인다. 평상시라면 별일 아닌 상사의 표정도 "역시 뭔가 잘못되었구나"라는 확증편향으로 해석된다. 우리는 정념의 포로가 된다.


스피노자에게 진정한 자유란 원인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동의 '적합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 부적합한 관념을 통해 외부 자극에 맹목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예속된 상태다. 반면, 적합한 관념을 통해 사물의 필연적 질서를 이해하고 자신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바로 자유다. 이해하는 것이 곧 힘이자 자유가 되는 것이다.



현대적 정념의 전형 : 디지털 시대의 부적합한 관념들

오늘날 우리는 스피노자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그리고 더 교묘한 형태의 부적합한 관념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디지털 환경은 부적합한 관념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비옥한 토양과 같다. 그 이유는 디지털 정보가 본질적으로 단편적이고, 맥락이 제거되어 있으며, 알고리즘에 의해 증폭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삶의 '결과'만 볼 뿐, 그에 이르는 복잡한 '원인'의 과정은 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한 '지식의 1종(상상)'이 지배하는 세계다.


1. SNS의 비교 정념: 편집된 행복과 나의 실존

인스타그램에서 친구의 화려한 해외여행 사진을 보고 순간 우울감이 밀려온다. 완벽해 보이는 사진이라는 외부 자극은 즉시 나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고, 정신은 "저 사람은 항상 행복하고 성공적인데, 내 삶은 왜 이럴까?"라는 부적합한 관념(찢어진 지도)을 형성한다. 이는 사진 한 장이라는 극히 일부의 정보로 타인의 삶 전체를 재단하는 왜곡된 인식이며, 곧장 '슬픔'과 '질투'라는 수동적 정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는 "SNS는 세심하게 연출되고 선별된 삶의 단편일 뿐이며, 이 사진 한 장이 그 사람의 모든 고뇌와 복잡한 인과관계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적합한 관념(위성 지도)으로 전환될 수 있다.


2. '읽씹'의 불안 정념: 소통의 공백이 만드는 상상

연인에게 보낸 메시지 옆의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아 불안이 커진다. '읽지 않음'이라는 상태는 초조함이라는 신체적 변화를 낳고, 정신은 과거의 경험과 최악의 시나리오를 끌어와 "답장이 없는 것은 관계의 위험 신호"라는 부적합한 관념(찢어진 지도)을 만든다. 이 관념은 곧장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정념을 발생시킨다. 이성의 눈으로 보면 "답장이 없는 원인은 무수히 많으며, 그것을 나의 문제와 필연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라는 적합한 관념(위성 지도)에 도달할 수 있다.


3. 알고리즘의 확증 편향 정념: 보이지 않는 손의 지배

유튜브에서 본 자극적인 콘텐츠 하나 때문에 비슷한 영상들이 계속 추천되며 세상이 문제투성이처럼 느껴진다. 이런 정보의 홍수는 우리 신체를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태로 만들고, 정신은 "세상은 온통 갈등과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는 부적합한 관념(찢어진 지도)을 갖게 한다. 이는 '무력감'과 '냉소'라는 정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현상의 진짜 원인은 "이 정보들은 나의 관심사에 반응한 알고리즘이 추천한 것일 뿐 세상의 객관적인 모습이 아니다"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적합한 관념(위성 지도)이다.


위와 같은 디지털 관련 사례와 함께 좀 더 일상적인 사례에도 적용해보자.

4. 교통체증의 분노 정념: 의도 확대 해석하기

운전 중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들 때, 심장이 철렁하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이 신체적 각성 상태에서 정신은 즉시 "저 운전자가 나를 무시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다"는 부적합한 관념(찢어진 지도)을 만들어낸다. 상대방의 행동에 악의적인 의도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곧바로 '분노'라는 정념을 폭발시킨다. 하지만 그 행동의 원인은 상대의 부주의, 초보 운전,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긴급한 사정 등 무수히 많을 수 있다. "저 차가 끼어들었다는 사실 외에 그 의도는 내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적합한 관념(위성 지도)이다.


5. 직장 내 오해의 불안 정념: 침묵을 부정으로 해석하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가 아침에 나를 보고도 인사 없이 지나간다. 순간 가슴이 서늘해지는 신체 변화를 느끼고, 정신은 즉시 "내가 뭔가 잘못했나? 그가 나를 피한다"는 부적합한 관념(찢어진 지도)에 사로잡힌다. 동료의 침묵이라는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관계의 파탄이라는 최악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는 '소외감'과 '불안'이라는 정념을 낳는다. 그러나 "동료가 다른 깊은 생각에 빠져 있거나, 우리가 모르는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정신이 없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넓은 인과관계를 보는 적합한 관념(위성 지도)이다.



부적합한 관념을 적합한 관념으로: 실전 전환 기법

정념에서 벗어나는 길은 부적합한 관념(지식의 1종)을 적합한 관념(지식의 2종, 이성)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주문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더 정확하고, 더 완전하게, 더 넓은 인과관계 속에서 파악하려는 이성적 훈련에 가깝다.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감정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학자'가 되는 과정이다.

기법 1: 인과관계 추적하기 (원인 탐정 되기) 부적합한 관념은 하나의 결과에 대해 성급하게 하나의 원인을 단정할 때 생긴다. 이 고리를 끊으려면, 가능한 다른 원인들을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 "답장이 없다"는 결과에 "나를 싫어해서"라는 원인 하나만 매달지 말고, 회의 중, 배터리 방전, 운전 등 최소 5가지 이상의 다른 가능성을 나열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만으로도 특정 원인에 대한 맹신이 깨지면서 정념의 힘이 약해진다.


기법 2: 시간과 공간 확장하기 (관점의 줌아웃) 정념은 우리를 '지금, 여기, 나'라는 좁은 틀에 가둔다. 이 틀에서 벗어나 시공간의 축척을 바꾸면 문제의 무게는 현저히 가벼워진다. SNS 비교로 괴로울 때 "이 감정이 1년 후, 10년 후에도 중요할까?"라고 자문해보거나(시간 확장), 실수로 자책할 때 "전 세계에서 오늘 나와 비슷한 실수를 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라고 생각해보는 것(공간 확장)이다.


기법 3: 사실과 해석 분리하기 (데이터와 상상 구분하기)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에 덧붙여진 '해석'이다. 이 둘을 명확히 분리해야 한다. 상사의 호출에 "오전 10시 30분, 상사가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과 "나는 해고될 것이다"라는 해석을 구분하는 것이다. 사실은 하나지만 해석은 무수히 많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섣부른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적합한 관념으로 가는 길이다.



정념의 필연성: 자책하지 말고 이해하기

중요한 것은 정념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모든 일이 자연의 필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보았다. 정념도 마찬가지다. 정보 과부하와 속도 압박이 심한 현대 사회의 조건 속에서 부적합한 관념이 형성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이러한 필연성의 이해는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회, 원망, 억울함 같은 헛된 정념들로부터 해방시킨다. '그 일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생각 자체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의 원인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부적합한 관념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책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고 점진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능동으로 나아가기: 이해에서 오는 기쁨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불안과 슬픔 같은 부정적 정념에서 벗어나는 소극적 상태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본성과 세계의 필연성을 이해함으로써 발생하는 '능동적 기쁨(active joy)'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외부의 우연한 자극에 의해 좌우되는 '수동적 기쁨'(예: 칭찬을 받아 잠시 기분이 좋은 것)과 달리, 능동적 기쁨은 나의 이해와 행동이 온전히 나의 원인이 될 때 솟아나는 내적인 힘이다. 따라서 부적합한 관념을 해체하는 훈련은 고통을 피하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기쁨을 획득하기 위한 능동적인 여정인 것이다.



일상 속 실천: 부적합한 관념 탐지기 만들기

정념의 고리를 끊으려면 부적합한 관념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심박수 증가 같은 신체적 신호, "항상", "절대" 같은 극단적 표현을 쓰는 정신적 신호, 충동적이거나 회피하는 행동적 신호가 포착되면, 잠시 멈추고 자문해보자.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지도가 부적합한 것은 아닐까?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적합한 관념으로 가는 여정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 변화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우리가 감정의 주인이 될지 노예가 될지는 바로 우리의 관념, 즉 우리가 든 지도가 얼마나 적합한가에 달려 있다.


다음 장에서는 미래의 불확실한 결과에 대한 상반된 기대, 즉 '희망'과 '공포'라는 정념이 어떻게 서로를 강화하며 우리를 더 깊은 불안의 악순환으로 이끄는지 살펴볼 것이다. 부적합한 관념이 만들어내는 불안의 미로에서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함께 탐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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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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