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 희망과 공포의 변증법

2부. 부정적 감정 해체하기

by 정지영

"희망은 그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미래나 과거의 일의 표상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일 뿐이다. 이에 반하여 공포는 마찬가지로 그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일의 관념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슬픔이다. 그런데 만일 이들 정서에서 의심이 제거되면 희망은 안도가 되고, 공포는 절망이 된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정리 18의 주석 2


불안의 본질: 희망과 공포의 이중주

새벽 3시, 잠에서 깨어 뒤척인다. 내일 중요한 면접이 있다. 마음속에서는 두 개의 상반된 목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이번에는 정말 잘 될 것 같은데?" "만약 떨어지면 어떡하지?" 희망과 공포가 번갈아 가며 밀려온다. 한 순간은 합격 후의 환상적인 미래를 그리며 설레고, 다음 순간은 실패의 참담함을 상상하며 두려워진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이 감정의 소용돌이, 바로 이것이 스피노자가 말하는 불안의 본질이다. 불안은 하나의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희망과 공포라는 두 상반된 정념이 '의심'이라는 무대 위에서 벌이는 끝없는 춤이다.


1. 희망, 그 일정하지 않은 기쁨

스피노자는 희망을 "일정하지 않은 기쁨"이라고 정의했다. 핵심은 '일정하지 않다(inconstant)'는 것, 즉 변동이 심하다는 뜻이다. 희망은 안정적이지 않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들쭉날쭉한 기쁨이다. 예를 들어, "이 제품을 사면 행복해질 거야"라는 소비주의적 희망은 구매 후의 공허함으로, "이 목표를 달성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라는 성취주의적 희망은 또 다른 목표에 대한 새로운 불안으로 쉽게 변질된다. 희망은 우리에게 달콤한 기쁨을 주지만, 그 기반이 불확실하기에 늘 공포로 추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2. 공포, 그 일정하지 않은 슬픔

공포 역시 "일정하지 않은 슬픔"이다.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불안정한 슬픔이다. 공포의 가장 큰 특징은 '상상의 증폭'이다. 우리의 뇌는 실제 위험과 상상 속 위험을 잘 구분하지 못하기에, "몸의 작은 증상이 암일지도 모른다"는 건강 불안, "연인의 표정이 어두우니 관계에 문제가 생긴 걸까?"라는 관계 불안은 상상 속에서 눈덩이처럼 커져 현실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변증법적 악순환: 희망과 공포는 어떻게 서로를 키우는가

스피노자 통찰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은 희망과 공포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변증법이란, 서로 반대되는 두 힘이 서로를 전제하고 강화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즉, 희망이 공포를 낳고, 그 공포가 다시 희망을 갈구하게 만드는 끝없는 순환이다.


1. 희망이 공포를 만든다

강한 희망은 필연적으로 강한 공포를 동반한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을수록, 그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꿈의 직장에 지원한 사람은 합격의 희망이 큰 만큼, 불합격의 공포 또한 거대해진다. 희망의 크기만큼 공포의 그림자도 짙어지는 것이다.


2. 공포가 희망을 만든다

반대로 공포 역시 희망을 낳는다. 나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그래도 괜찮을 거야"라는 희망에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한다. 건강 검진 결과를 앞둔 공포는 "분명 아무것도 아닐 거야"라는 희망을 간절하게 만든다. 하지만 공포에서 비롯된 희망은 현실적 근거가 부족하기에 더욱 불안정하며, 작은 의심에도 쉽게 무너져 다시 공포로 회귀한다.


이렇게 불안은 희망과 공포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 속에서 두 감정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극심하게 소모시키는 고통스러운 상태다.



불안의 증폭: 현대 사회는 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가

희망과 공포의 변증법은 불확실성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이 불확실성을 체계적으로 증폭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1. 정보 과부하와 선택의 역설

과거에는 선택지가 적었지만, 지금은 전공, 직업, 라이프스타일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선택지가 너무 많은데, 각 선택의 긍정적 결과(희망)와 부정적 결과(공포)에 대한 정보 역시 인터넷에 넘쳐난다는 점이다. "이 길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와 "이 길로 후회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동시에 보이면서 우리의 불안은 극대화된다.


2. SNS와 비교의 불안

SNS는 희망과 공포의 변증법을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타인의 성공 스토리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과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라는 공포를 동시에 자극한다. 특히 비슷한 배경을 가진 동년배의 성공 소식은 가능성(희망)과 불가능성(공포)을 동시에 느끼게 하여 우리를 극심한 불안으로 몰아넣는다.


3. 미래에 대한 통제 불가능성

기술과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미래 예측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지금 안정적인 직업이 10년 후에도 존재할지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만성적인 불안의 원인이 된다. 기성세대의 성공 공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시대, 젊은 세대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희망과 그 길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사이에서 방황한다.



변증법의 고리 끊기: 불확실성을 이성의 힘으로 바꾸는 법

희망과 공포의 변증법에서 벗어나는 길은 '의심'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맹목적 확신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1. 1단계: 불확실성의 필연성 수용하기

먼저 불확실성이 삶의 자연스러운 조건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고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자 부적합한 관념이다.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미래는 무수한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원칙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 이것은 절망적인 사실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열쇠다.


2. 2단계: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구분하기

스토아 철학의 지혜처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그 필연성을 받아들인다. 면접 상황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준비와 태도뿐이며, 면접관의 평가나 다른 지원자의 역량은 통제 불가능하다.

[실전 도구] 불안 분해하기: 불안을 느낄 때, "이 불안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가?"로 분해해보자.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되, 그중 내가 통제 가능한 '대응책'에만 집중한다.


3. 3단계: 결과에서 과정으로 관점 전환하기 결과에 대한 집착이 희망과 공포를 키운다. 대신 통제 가능한 과정에 집중하면 불안이 줄어든다. "합격해야 한다"는 결과 중심 사고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자"는 과정 중심 사고로 전환하는 것이다. 과정에 집중하면 현재에 몰입하게 되고, 결과와 상관없이 성장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실전 도구] 작은 확실성 만들기: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완수하며 과정의 통제감을 경험하자. 계획한 운동이나 독서를 실행하는 등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결과와 무관한 내적인 확신을 준다.


4. 영원의 상(相) 아래에서 현재를 살기

스피노자적 해법의 정수는 시간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데 있다. 희망과 공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감정이다. 이 환상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거대한 인과관계의 사슬 안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남을 이해하는 것, 즉 '영원의 상 아래에서(sub specie aeternitatis)' 사물을 보는 것이 최고의 해법이다. 이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의 생각과 행동에 모든 정신을 집중할 때 가능하다. 미래를 통제하려는 헛된 시도 대신,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다.


다음 장에서는 불안을 더욱 구체적으로 키우는 관념들, 특히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불안을 증폭시키는지 살펴볼 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매달릴 때 불안은 더욱 커지고, 정작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놓치게 된다는 역설을 함께 탐구해보자.

keyword
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팔로워 314
이전 13화2-1. 정념의 뿌리를 찾아서: 부적합한 관념 해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