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부정적 감정 해체하기
"사람은 자신이 독점했던 사랑하는 대상이 다른 대상과 자신만큼 밀접하게 혹은 그보다 더 밀접하게 사랑으로 결합되는 것을 표상한다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증오를 느끼게 될 것이고, 다른 대상에 대해서는 질투를 느낄 것이다. ... 질투와 결합한,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이 증오는 시기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므로 시기란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느끼면서, 질투하는 대상에 대한 관념을 동반하는 마음의 동요에 불과하다. "
—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정리 35와 주석
"질투란 타인의 행복으로 인해 슬퍼하며, 타인의 불행에 기뻐하도록 작용하는 미움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3부 감정의 정의 23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즐거워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을 상상해보라. 친구가 연인과 행복해하는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 동료가 당신이 원했던 승진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런 순간 우리 마음에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폭풍이 일어난다.
스피노자는 이 감정의 정체를 정확히 간파했다. 질투는 단순한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사랑과 증오가 동시에 일어나는 '감정적 모순'이다. 우리는 그 대상을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미워하게 되고, 이 모순된 감정 상태가 바로 질투의 본질이다.
여기서 잠깐 질투와 시기의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자. 스피노자는 두 감정을 구분한다. 이번 글에서 주로 다루는 '질투(zelotypia)'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라이벌에게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동요하는 감정이다. 반면, '시기/선망(invidia)'은 타인의 행복 자체에 대해 슬픔을 느끼는 더 넓은 감정을 뜻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 감정을 복합적으로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350년 전 스피노자가 진단한 이 감정적 딜레마는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더욱 복잡하고 일상적인 고통이 되었다.
1단계: 비교라는 렌즈의 등장
질투는 언제나 '비교'에서 시작된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우리는 "동등한 자만을 질투한다." 우리가 유독 '비슷한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이유는, 그들의 성공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는데'라는 '나의 가능성'에 대한 상실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존재 능력(코나투스)이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감소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토록 고통스러운 것이다.
2단계: 소유욕이라는 부적합한 관념
스피노자는 질투의 근본 원인을 '독점적 소유욕'에서 찾는다. 이는 사랑을 '상대방의 존재력 증진'이 아닌 '나의 소유물'로 여기는 '부적합한 관념'에서 비롯된다. 연인이 다른 사람과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내 것을 빼앗긴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왜곡된 관념이 질투의 토양이 된다.
3단계: 사랑과 증오의 모순적 결합 (정념의 형성)
질투의 가장 고통스러운 지점은 사랑과 증오의 모순에 있다. 스피노자의 감정 원리에 따르면, 사랑은 '기쁨'에 '외부 원인(연인)의 관념'이 결합된 것이고, 증오는 '슬픔'에 '외부 원인의 관념'이 결합된 것이다.
질투의 상황에서 '연인'이라는 동일한 대상은, 그를 떠올릴 때의 기쁨(사랑)과, 그가 경쟁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할 때의 슬픔(증오)을 동시에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이처럼 하나의 대상에 대해 사랑과 증오가 함께 일어나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상태를 스피노자는 '동요(vacillatio)'라고 불렀다. 이것이 바로 질투라는 정념의 정확한 해부도다.
4단계: 상상력이 증폭시키는 고통 - 경쟁자에 대한 미움
이 고통은 '표상(imaginatio)', 즉 스피노자가 말한 '지식의 1종'에 의해 증폭된다. 우리는 연인과 경쟁자가 함께하며 느낄 기쁨을 생생하게 표상한다. 스피노자의 '정념의 모방' 원리에 따라, 우리는 타인의 기쁨을 표상하는 것만으로도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 기쁨이 내가 배제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나에게는 곧 슬픔이 된다. 그리고 이 슬픔의 원인인 경쟁자를 향해 강력한 미움이 생겨난다. 이 모든 과정은 이성적 판단이 아닌, 대부분 상상력의 연쇄 반응 속에서 일어난다.
소유에서 성장으로: 사랑의 재정의
질투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단계는 사랑에 대한 '부적합한 관념'을 '적합한 관념'으로 바꾸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존재력을 증진시키는 것이며, 상대가 다른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때 더욱 풍성해진다는 이성적 이해(지식의 2종)에 도달하는 것이다.
제로섬에서 윈-윈으로: 경쟁의 재정의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진정한 자유인들은 서로를 적이 아닌 동반자로 본다. 동료의 승진을 나의 실패가 아닌 우리 팀 전체의 성장으로, 친구의 연애 성공을 좋은 관계의 모델로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경쟁이라는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협력이라는 윈-윈 게임으로 진입한다.
내재적 가치의 발견: 비교를 넘어선 자기 만족
스피노자가 말하는 '내면의 평정(acquiescentia in se ipso)'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자신의 본성 실현에서 오는 만족이다. 내 존재의 가치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닌, 내 고유한 본성(코나투스)의 실현 정도에 달려 있음을 아는 것이다.
질투라는 감정의 독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 다음의 훈련을 통해 부적합한 관념을 적합한 관념으로 전환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1단계: 사이렌을 인지하라 (신체 감각 관찰)
질투의 첫 신호, 즉 가슴의 답답함, 얼굴의 화끈거림을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2단계: 거짓 보고서를 찾아내라 (부적합한 관념 찾기)
"그들은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 같은 자동적 사고를 찾아내고, 이것이 얼마나 단편적인 '상상'에 기반한 것인지 인식한다.
3단계: 새로운 보고서를 작성하라 (적합한 관념으로 전환)
"그의 성공과 나의 가치는 별개의 일이다", "그의 행복이 내 행복을 빼앗지 않는다" 같은 보다 전체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으로 의식적으로 전환한다.
이성적 이해를 넘어선 질투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은 스피노자가 말한 '제3종의 지식(직관지)'에서 찾아온다. 이는 나와 연인, 그리고 경쟁자마저도 거대한 자연(신)이라는 필연적 질서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양태로 이해하는 궁극의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소유'나 '경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연인의 기쁨은, 그 원인이 내가 아니더라도, 자연 전체의 완전성이 표현된 것이기에 나 역시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해에서 오는 기쁨, 즉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은 어떤 경쟁자도 앗아갈 수 없는 절대적이고 흔들림 없는 기쁨이다.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이 사랑은 질투나 시기의 감정으로 더럽혀질 수 없다. 반대로, 우리가 더 많은 사람이 동일한 사랑의 유대로 신과 결합된다고 상상하면 할수록, 이 사랑은 더욱 촉진된다."(에티카, 5부 정리 20)고 말하며, 질투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의 길을 제시했다.
질투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긴다. 성공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공에 대한 왜곡된 관념 때문에 생긴다. 스피노자가 보여준 길은 이런 오해와 왜곡을 이성으로 풀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존재를 더 큰 질서 안에서 긍정하는 지혜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험 삼아 위의 글을 구글 노트북 LM의 오디오 오버뷰(일종의 팟캐스트)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아래 이미지 링크를 클릭하면 오디오를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