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부정적 감정 해체하기
저는 어떤 것이 오직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 현존하고 행동할 때 자유롭다고 말하고, 반대로 그것이 일정하고 규정된 이유에 의해 현존하고 작동하도록 결정될 때 강제된다고 말합니다. ... 저는 자유를 자유로운 결정이 아니라 자유로운 필연성으로 간주합니다. — 바뤼흐 스피노자, 『서간집』 제58편
월요일 아침, 김대리는 지하철에서 뉴스를 보다가 급격히 불안해진다. "경기 침체로 대기업 구조조정 가속화"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머릿속에서 온갖 걱정이 쏟아진다. '회사가 망하면 어떡하지?' '내가 해고되면?' '경제가 이렇게 나쁜데 이직은 가능할까?'
그는 하루 종일 경제 뉴스를 검색하고, 부동산 시장 동향을 확인하고, 주식 시장 지수를 들여다본다. 마치 이런 정보들을 많이 알수록 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할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정보를 많이 볼수록 오히려 불안은 커진다.
스피노자는 350년 전에 이미 이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이것이 바로 2부의 핵심 주제인 '부적합한 관념'의 가장 강력하고 흔한 형태다. 즉, '나는 내 외부의 세계를 의지만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현실의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잘못된 믿음(지도)이 불안이라는 정념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서간집』 58편에서 놀라운 비유를 제시한다. 외부의 힘에 의해 굴러가는 돌에 의식이 있다면, 그 돌은 자신이 자유롭게 굴러간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비유다. 왜냐하면 자신의 노력(굴러가려는 충동, 코나투스)은 의식하지만, 자신을 굴러가게 만드는 외부 원인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의도는 의식하지만, 그 욕망을 만들어낸 무수한 외부 원인들(유전자, 환경, 교육, 과거 경험 등)은 전부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결정한다고 착각한다.
술주정뱅이는 나중에 숨기고 싶을 부끄러운 이야기를 자유로운 결정으로 지껄이고 있다고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신 나간 사람, 수다쟁이,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 행동하다고 믿으면서, 충동에 의해 그렇게 행동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서간집』 제58편
술주정뱅이, 정신 나간 사람, 수다쟁이와 같은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압도되어 휘둘리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자유로운 선택으로 술주정을 하고, 미친 말과 행동을 하며, 나중에 이불을 걷어찰만큼 부끄러워할 말을 내밷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스피노자가 이런 형편없는 인간뿐 아니라 자신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착각에 빠져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생각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절망적일까? 스피노자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이 필연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시작된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결정론을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이라는 무력한 숙명론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가장 강력하고 해방적인 도구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을 해방시키는 열쇠라니 무슨 말일까?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연(신)은 어떤 목적을 갖고 움직이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것은 식물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증기, 온도, 기압의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종종 '나는 ~을 위해 태어났다'거나 '이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거야'라며 인간적인 목적을 세계에 투영한다. 하지만 이는 자연의 질서를 오해하는 ‘부적합한 관념’이며, 목적이 달성되지 않을 때 우리를 실망과 불안에 빠뜨린다.
진정한 자유는 인과의 사슬을 끊는 것이 아니라, 그 사슬의 작동 원리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폭풍우 속에서 표류하는 잎사귀는 외부의 힘(바람과 파도)에 전적으로 지배당한다. 하지만 그 힘의 원리를 이해하는 항해사는 돛을 조정하여 폭풍우를 이용해 앞으로 나아간다. 잎사귀와 항해사 모두 필연성의 지배를 받지만, 오직 항해사만이 자유롭다. 이처럼 원인을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의 ‘적합한 원인’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더 나아가, 이 필연성의 이해는 우리를 수많은 고통스러운 정념들로부터 해방시킨다. 모든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났음을 안다면, '그때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 '네가 나에게 이러면 안 됐는데'라는 원망,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자책은 모두 근거를 잃는다. 이 모든 감정들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거짓된 가정 위에 세워진 신기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필연성의 수용은 우리를 이 헛된 감정의 소모에서 구해낸다.
스피노자의 통찰을 실제로 적용하는 첫 번째 단계는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한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통제 불가능한 것들: 타인의 행동과 감정, 과거에 일어난 일, 미래의 결과, 경제 상황, 사회 변화, 타인의 평가 등
통제 가능한 것들: 지금 이 순간 나의 생각, 나의 행동, 현재 상황에 대한 나의 해석, 나의 노력과 준비, 나의 태도와 관점
불안한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은 통제 불가능한 것에 에너지를 쏟으면서, 정작 통제 가능한 것은 소홀히 한다는 점이다.
실습 1: 불안 분류하고 행동 정의하기
현재 당신을 괴롭히는 걱정을 종이에 적고, 세 개의 칸으로 나누어 정리해보라.
결과에 집착에서 벗어나 과정에 집중하기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한 집착의 또 다른 형태는 '결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우리는 시험 점수, 승진 여부 등 결과에만 매달리지만, 결과는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스피노자적 해법은 결과에서 과정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미래의 결과가 아닌 현재의 행동에 집중한다.
결과 중심: "이번 프레젠테이션이 성공해야 해"
과정 중심: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진정성 있게 발표하자"
과정에 집중하면 불안이 줄어들고, 역설적이게도 좋은 과정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미래는 원칙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무수한 원인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다. 이것이 절망적인 사실일까? 오히려 우리를 불가능한 짐에서 해방시켜주는 해방적인 사실이다.
실습 2: 불확실성 일기
일주일 동안 불확실성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경험들을 기록해보라. 예상치 못한 만남, 계획에 없던 좋은 일들... 불확실성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스피노자의 궁극적 처방전은 "영원의 상 아래에서(sub specie aeternitatis)"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좁은 시공간적 관점을 벗어나 더 넓은 시야에서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가 1년 후, 10년 후에도 그렇게 중요할까? 이런 질문들이 우리를 좁은 관점의 감옥에서 해방시켜준다.
더 나아가, 이는 단순히 문제를 작게 보는 것을 넘어, 지금 이 사건이 자연이라는 거대한 질서 속에서 차지하는 필연적인 위치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불안, 회사의 위기, 사회의 변화 모두가 무한한 인과 사슬의 한 부분임을 관조할 때, 우리는 개인적인 고통을 넘어선 깊은 평온을 경험할 수 있다.
가장 역설적인 것은, 통제하려 하지 않을 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는 점이다.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려 하면 지치고 쓰러진다. 물살의 방향을 이해하고 그것과 함께 헤엄칠 때 우리는 멀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갈 수 있다.
이것이 스피오자가 말하는 "자유로운 필연성"이다. 세상의 필연적 질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실습 3: 통제 놓기 연습
오늘 하루 동안 작은 것 하나라도 통제하려는 시도를 포기해보라. 교통체증에 짜증내는 대신 음악을 듣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활용해보라. 놓아버리는 것이 얼마나 해방적인지 체험하게 될 것이다.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핵심은 매 순간 선택하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것인가? 결과에 매달릴 것인가, 과정에 몰입할 것인가? 좁은 관점에서 조바심낼 것인가, 넓은 관점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것인가?
이런 선택들이 쌓여서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한다. 통제의 환상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평온과 자유를 맛볼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불안 증폭기인 '비교'의 메커니즘을 살펴볼 것이다. SNS 시대에 더욱 치밀해진 비교의 함정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질투라는 정념의 구조를 스피노자의 지혜로 해체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