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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Jun 17. 2020

캡틴  방으로 다 모여!

Thank you , Captain!

2004년 8월 1일 EK 383 DXB -BKK HKG -DXB


가 정말 사랑하는 방콕 비행이다. 이비행은 방콕에서 하루 레이오버(체류)하고 두 번째 날은 방콕-홍콕 셔틀 왕복 비행하고 하루 더 방콕에서 레이오버하는 정말  비행이다. 방콕에서 3일간 레이오버라니  이 로스터 받자마자 방콕 가서 뭐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드디어 비행하는 날이다. 룰루랄라 즐거운 마음으로 브리핑룸에 갔는데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 있었다.  보통 크루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편안한 분위기인데 이런 분위기가 좀 낯설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이 비행이 험난할 거 같은 안 좋은 느낌. 그런데  이런 느낌은 거의 100프로 맞아떨어진다.


브리핑 시작이다. 각자 간단히 자기소개한 후 객실 브리핑을 시작했다.  SEP(Safety Equipmetnt Procedure) 관련 질문이 진행 중일 때 캡틴과 부기장이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운항 브리핑을 했다.

출발지 목적지 항로 및 교체공항의 기상예보
ㅡ  도착지까지의 비행시간  등


기장님이 미소를 지으시며 간단하게 운항 브리핑을 하신 후 비행기에서 보자고 하시며 나가셨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기장님이 나가시자마자 사무장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 나는 영어를  잘알아들은 줄 알고 다른 크루들을 봤는데 크루들도 모두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사무장이  크루 앞에서 어떻게 우리 비행의 리더인 캡틴에 대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행이 험난 할거 같다.


겔리 오퍼레이터를 맡아서 기내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기내 음식을 체크했다. 완전 만석이라 한치의 오차도 있으면 안 돼서 정신 바짝 차리고 반복해서 카운팅 했다. 겔리(기내 부엌)에서 서비스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사무장은  도와주지 않았다. 게다가 잔소리까지 엄청 많이 해서 빨리 비행기가 내렸으면 할 정도였다. 아무런 문제 없이 서비스가 잘 진행되고 있는데  불평불만이 너무 많았다.  서비스를 잘 끝낸 후 기장님과 부기장님 식사를 챙겨드리기 위해 조종실에  들어갔다.  

기장님이 객실 브리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셨다. 같은 국적의 크루가 캡틴에게 이미 보고를 한 상태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크루에게도 다 물어보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크루가 말한 내용이 다 사실이라고 말씀드렸고 나도 많이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기내 서비스 중에 있었던 일도 다 말씀드렸다. 이렇게 말할 상대가 있어서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무사히 방콕에 도착했다. 이 곳이 천국이다.

마사지를 받고 맛있는 태국 음식을 먹고 알차게 하루를 보내고 그다음 날  오전 홍콩 비행준비를 했다. 그런데 눈이 약간 충혈돼있었다.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픽업 시간에 내려가니 사무장이 나를 보자마자 이눈으로는 비행할 수 없다고 하면서 호텔에 남아있으라고 했다.


동료들이 비행할 동안 나는 호텔에서 그냥 푹 쉬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따르릉  울렸다. 캡틴의 안부전화였다.

Yoon, are you okay?


캡틴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면서  눈 상태가 괜찮으면  자기 룸에 크루들 다 모여있으니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당연히 사무장 빼고 크루들 모두 모여있었다. 이미 크루들은 미니바에 있는 모든 술을 꺼내서 마시며  신나게 대화 중이었다.  그리고 사무장이 한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서 캡틴이 리포트를 하기로 해서 모든 크루들이 다 도와주기로 했다. 술이 들어가니 아주 술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 셔틀 비행 때도 사무장이 계속 짜증 내며 일은 도와주지도 않았다며 동료가 화를 내며 계속 술을 마셨다.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비행 얘기부터 이번이 마지막 비행이라는 크루까지 다양한 얘기를 하다 보니 다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정말 어메이징한 팀워크였다.

이렇게 캡틴 방에 모여서 다 같이 얘기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두바이에 돌아가는 비행이다.  이상하게 사무장이 전과는 다르게 너무 열정적으로 도와줬다.

 '하루 만에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우리끼리 소통하는 건 걸 눈치챈 거 같았다.


 조종실에  들어가니 이번 비행은 어떤지 물어보셨다. 그래서 이번엔 사무장이 많이 도와줘서 수월하게 서비스를 마쳤다고 했더니  캡틴이 다행이라고 하면서  그럼 이번은 그냥 넘어가겠다고 했다. 특히 인종차별건은 민감한 사안이라 리포트를 하면 크루들에게 전부다 연락을 해서 물어보기 때문에 우리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이미 크루들이 자기를 믿어주고 응원해 준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셨다.  크루들에게 너무 고맙고  정말 즐거운 비행이라고 하시면서 다음 비행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다.  그리고  몇 달 후  우연히 런던 게트윅  공항에서 누가 나를 불러서 봤더니 바로 캡틴이었다. 내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여전히 인자하신 미소로 나를 꼭 안아주셨다. 나도 가족을 만난 것처럼 너무 반가웠다.


진정한 리더란  이런 분이 아닐까?  

크루들의 얘기를 경청해주고 아픈 크루에게 안부 전화해주는 따뜻함과  결단력과 배려심까지 다 갖추신 멋진 분이셨다.  캡틴 덕분에 정말 즐겁고 행복한 비행이었다.

Thank you , Cap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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