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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Jul 05. 2020

나의 역마살을 일깨워준 아람단 생활

이렇게 울 엄마는 자유를 찾았다.

나는 삼 남매 중 어중간한 둘째다.
언니는 맏이라서 매번 책임감 있게 다 잘하니 칭찬 많이 받고 막내는 막내라서 실수해도 다 용서받았다.  난 그런데 어중간한 둘째라서  어렸을 때 그런지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특히 남동생과 나는 한 살 차이라서 더더욱  엄마 옆에만 있으려고 했다. 엄마가 막내만 챙기면 괜히 떼쓰며 울면서  계속 엄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었다.

 방학이면 안동 큰집에 사촌언니와 오빠들이 있어서 매번 놀러 갔다. 한번 가면 3박 4일은 놀다가 오는데 언니와 남동생은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난  엄마와 그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 있는 게 너무 싫었다. 매번 엄마와 잘 놀고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가지만  3박 4일을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빠와 하루 동안만  안동에서 지내고 그다음 날 아빠와 함께 서울로 왔다. 지금 엄마가 돼서 생각을 해보면 난 정말 너무 엄마를 힘들게 한 딸이었다. 엄마 쉴 시간을 전혀 주지 않은 아주 이기적인 딸이었다. 우리 삼 남매를 키우시느라 정말 힘드셨을 텐데 나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못 보내신 것 같아 너무 죄송하다.


 하지만 갈수록  엄마 옆에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디를 가도 엄마 옆에만 앉아 있어야 하고 잘 때도 엄마 옆에서 자야만  하는 그런 아이였다. 어린 나이에 엄마 사랑을  언니와 동생보다  많이 받고 싶었던 거 같다. 울 엄마는 정말 우리 삼 남매를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풍족한 살림이  아니었지만  모든지 최고로 해주시기 위해 노력하셨다. 엄마가 되고 나니 울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엄마가 아람단에 가입해보는 건 어떤지 물어보셨다. 아람단을 하면 캠프를 하니  밖에서 자고  단체생활을 해야 되는데 그건 내가 원하는 활동이 아니었다.  난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하자 옆에서 언니가 자기는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괜히 언니가 못했다고 하니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언니가 안 하는 건 다 하고 싶었던  동생이었으니까.

그런데 엄마 없이 잘 생각을 하니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난 엄마에게 할 생각이 없다고 다시 말했다. 그런데 친한 친구들이 한 명 두 명 다 아람단을 한다고 했다. 그것도 인원 제한이 있어서 지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친구들이 한다고 하니 갑자기 하고 싶어 졌다. 막상 지원하고 나서는 안되기를 바랐는데 하늘은 엄마 편이었다. 역시 하늘은 선한 사람을 돕는다. 그렇게 아람단원이 돼서 창단식에 단복을 입고  베레모를 쓰고 갔다. 그때 사진을 보면 난 엄마 손을 꽉 붙잡고 있고 얼굴은 울기 일보직전이다. 그렇게 나의 아람단원 활동이 시작됐다.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다.  약간은 내성적이고 수동적이던 나는 아람단 활동을 통해서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하는 캠프의  즐거움을 이때 알게 됐다.

그래서 엄마를 찾는 일이  많이 줄었고 엄마 없이도 잠도 잘 잤다. 덩달아 울 엄마의 생활도 훨씬 자유로워지셨다. 나 때문에  약속도 잘 못 나가셨는데 그 이후로는 언제든지 편하게 친구를 만나시고 아빠일도 더 적극적으로 도와드릴 수 있었다.  


엄마 옆에만 있었던 나는 이렇게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아이로 변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어떻게 하면 해외로 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이렇게 나의 역마살은 시드니에서 시작다. 그리고 두바이에서 승무원 생활을 하고 신혼생활은 미국에서 했다. 이제 또 다른 정착지찾고 싶다.  


지금도 가끔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가 이렇게 변할지 누가 알았겠어?
그때 아람단 보내길 정말 잘했어!!




이미지 출처 Unsplash  ,  한국청소년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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