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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Feb 02. 2021

하루가 한 달 같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 37.6도예요.  병원 올 때 뛰어오셨나요? 다시 재 볼게요!"


난 몸이 얼음처럼 찬 편이다. 손발이 차다 보니 항상 방을 따뜻하게 하거나 꼭 수면 양말을 신는다. 이렇게 체온이 높은 적이 없어서 언제인지 기억할 정도다. 다시 재도 체온은 똑같다. 갑자기 간호조무사는 페이스 실드를 찾느라 분주했다. 뭔가 안 좋은 느낌이다. 먼저 코로나와 독감 증상이 비슷해서 독감 검사를 해야 한다며 격리실로 안내했다. 아예 독감이길 바랐지만  아니다.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은 계속 질문했다.  "목은 언제부터 아팠어요? 목소리가 원래 이런가요? 기침을 많이 하나요? 미각과 후각은 어때요? " 대답하면서 느꼈다. 난 코로나 유증상자구나. 목이 아프지만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약만 처방받고 바로 집에 왔다. 근처 코로나 선별 진료소에 갔지만 이미 끝났다. 내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체온을 한 시간에 한 번씩 쟀다. 내려갈 생각을 안 한다.  38 도까지 올라갔다.

집에서 자체 격리를 했다. 딸 니엘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외할머니 댁에 간다며 이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 때문에 갈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엄마 걱정하실까 봐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니엘이가  핸드폰을 바로 받더니 " 할머니 보고 싶어요. 그런데 엄마가 열이 높아서  못 가요!"라고 말하며 울어버렸다. 엄마가 상황을  아시고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목소리에는 걱정이 잔뜩 묻어있었다.  아직 검사받기 전인데 혹시 코로나에 걸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가족과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 봐 두렵고 불안했다. '니엘 아빠 회사는? 니엘인 피아노 학원 가서 친구들과 놀아야 하는데.. 내가 방문한 상점들은? 여기 아파트 주민들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시간이 왜 이리 더디게 가는지 모르겠다. 책을 봐도 어떤 내용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도 않는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유튜브로 봤다.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봤지만 어떤 내용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은 왜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이 우선일까?  좋은 건 나를 선택하길 바라고 나쁜 건 제발 나를 피해 가기를 바란다. 지극히 이기적이다. 나도 제발 나는 아니기를 기도하고 있으니까.  코로나 확진 후 생활치료센터에서 지내는 블로거의 글을 봤다. 체온이 37.8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자 이미 난 확진자처럼 행동했다.



아침 9시에 일어나 바로 보건소에 갔다. 들어가자마자 증상이 있냐고 물어봤다. 체온이 높다고 하니  검사지에 유증상자 체온에 체크한 후 건네줬다. 다음 장소로 이동해서 검사지를 내고 체온을 쟀다.  37.7도가 나왔다. 일반 마스크를 방진마스크로 바꿔 쓰고 검사받으러 이동했다. 검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검사를 받고 나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여전히 천천히 갔고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걱정됐다.  체온이 다시 38도까지 올라갔다. 약을 먹고 나서 인후통은 사라졌지만 열은 내려가지 않았다.  책을 펼쳤다가 다시 덮었다. 자는 게 나을 거 같다. 누었지만 걱정이 한가득이라 잠도 안 온다. 유튜브를 켜니 아이 5명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남편이 가상으로 만나는 '너를 만났다 시즌 2'가 나왔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왜 이영상으로 이끌었을까... 울다가 잠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체온을 쟀다. 여전히 37.8도다. 문자가 언제 올까 계속 핸드폰만 쳐다봤다. 뜬 눈으로 기다리느니 눈 감고 있는 게 나을 거 같아 다시 누웠다.  감사하게도 아침 8시 15분에  메시지를 받았다.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음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줄 몰랐다.

'음성... 음성... 난 음성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울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음성이래요! 엄마, 나 진짜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어!" 엄마랑 통화하며 엉엉 울었다. 엄마도 걱정돼서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하셨다. 니엘 아빠와 니엘이와 껴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가족의 위로와 사랑이 정말 큰 힘이 됐다.



이런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큰일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지금이 감사하다.  그냥 건강하게 가족들과 한집에 살고 함께 밥 먹고 안고 뽀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힘든 상황에서 주말에도 근무하시는 의료진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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