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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Aug 31. 2022

602번 맞죠?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8월 20일 드디어  피아노 콩쿠르 당일이다. 이날만을 위해 3개월 정도를 주말에도 열심히 연습했다. 중학생이 되면 콩쿠르 나가기 쉽지 않고 1학년 때부터 배웠으니  경험 삼아 한번 나가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딸 니엘이는 일단 나간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니엘이가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으니 연습한 만큼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다면서 갑자기 나에게 안겨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이렇게까지 부담을 가질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 괜히 한번 나가보라고 한 나 자신이 미워서 콩쿠르 안 나가도 되니까 이렇게 힘들면 그만두라고 했다. 니엘이가 피아노를 정말 즐겁게 쳤는데 갑자기 경연이 되다 보니 은근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게다가 첫 참가에 대상을 받아야지만 아빠랑 약속한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했는데 나한테는 끝까지 말을 안 했다. 니엘 아빠에게 물어보니 첫 경연에 대상을 타기는 쉽지 않을 거라서 아이에게 동기부여를 주려고 약속한 거라며 역시나 나에게 그 딜이 뭔지 알려주지 않았다.


니엘이가 오후 12시에 피아노 연습 후 1시 넘어 집에 왔을 때 나는 화상 수업 중이라서 점심을 차려놓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니엘이를 보니 이미 치마와 남방을 입고 있었다. 바로 니엘이 올림머리 해주고 잘할 수 있다고 꼭 안아줬다. 니엘이는 그냥 빨리 아트센터에 가고 싶다고 했다. 좀 있다가 엄마랑 택시 타고 가자고 했지만 먼저 버스 타고 간다고 했다. 혼자 연주곡 들으면서 가고 싶어하는것 같아서 알았다고 한 후 난 그제야 나갈 준비를 했다.  오후 3시에 6학년 경연 시작인데 니엘인 30분 먼저 도착해 대기실이라고 했다.


" 엄마, 나 여기 대기실인데 갑자기 너무 떨러요. 여기 너무  조용해요."

" 울 니엘인 잘하니 편하게 즐겨요! 심호흡하고 좋은 생각 해요!"

" 엄마, 5학년 끝나가요! 나 6학년 세 번째인데 떨려요!"

"처음인데 떨리는 건 당연한 거야! 눈 감고 편한 음악 잠깐이라도 듣고 있어요!"


니엘이가 생각보다 많이 떨었다. 어렸을 때 모델하면서 무대에 선 적이 많아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콩쿠르가 주는 중압감이 훨씬 큰가 보다. 아이가 떨기 시작 시작하니 아이의 번호가 다가올수록 나도 조금씩 긴장됐다.



드디어 6학년 경연 시작이다. 600번, 601번, 드디어 602번 니엘이 차례다.

콩쿠르는 번호가 불리면 인사 없이 바로 피아노를 치고 종소리가 나면 바로 연주를 멈추고  나간다. 니엘이가 나와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니엘이가 3개월간 연습한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 4장'이다. 니엘이가 연주하는 동안 영상을 찍는데 계속 손이 떨렸다. '역시 울 니엘이! 잘한다! 잘한다!'를 계속 마음속으로 외쳤다. 2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손에서 계속 땀이 났다. 나도 이렇게 긴장되는데 니엘인 얼마나 떨렸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큰 실수 없이 첫 콩쿠르를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니엘인 나를 보자마자 실수를 너무 많이 했다면서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쉽다면서 울었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첫 무대를 이렇게 멋지게 해내서 대견하다고 칭찬해 줬다.


고생한 니엘이를 맛있는 거 사주려고 근처 백화점에 가려고 나와서 지도 앱을 보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계속 니엘이를 쳐다보시더니 칭찬해 주셨다.

" 602번 맞죠? 정말 잘 치던데요!"

니엘인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본인을 기억해 주시고 칭찬해 주신 아주머니께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나 또한  아주머니에게 "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풀이 죽어있던 니엘이는 자신을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칭찬은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아주머니께서 이렇게 칭찬을 해주셔서 니엘인 용기를 얻었다. 기분이 좋았는지 바로 피아노 원장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하며 그제야 활짝 웃었다.  



니엘이 와 백화점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원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 진짜요? 제가요? 제가 정말 대상이에요? 가르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다 원장님 덕분이에요!"

니엘인 울고 웃으며  통화를 한 후 온 가족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니엘이의 첫 콩쿠르를 대상으로 멋지게 장식했다.


 니엘인 바로 아빠에게 전화하더니 바로 헤어숍 예약하라고 했다. 그 딜은 내가 그렇게도 반대했던 바로 탈색과 염색이었다. 니엘 아빠가  니엘이 실력을  과소평가한 결과 지금 니엘이 머리는 바이올렛 같은 금발이다.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처음이자 마지막 탈색이라고 하니 믿어봐야겠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니엘이를 보니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씩씩했다.  그런 긴장감을 이겨내고 실력을 발휘한 니엘이가 참 자랑스럽다. 니엘이의 새로운 도전을 언제나 응원한다.



#말버릇의힘

#나이토요시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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