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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Mar 30. 2020

하늘에서 처음 맛본 아포가토

이탈리아노 크루가 직접 만들어주다.

2004 년 3월 30일 DXB( 두바이 ) to LHR(런던 히드로)

Duty : L2 ( Left 두 번째 도어 담당, 면세품 판매)


역시 오늘도  풀(만석)이다. 오늘도 걸어서 런던까지 갈꺼같은  내 예상은 빗나간 적이 없다. 그래도 오늘 즐비안비 (즐겁게 안전하게 비행 ) 해야지!


비즈니스 크루들과 팀워크가 좋아서  일이 그다지  힘들지 않다. 역시  비행은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번에 너무 감사하게도 겔리( 기내 부엌)를 맡은 동료가  완전 프로다. 일을 너무 잘한다. 정말 센스 짱이다. 내 눈빛만 보고도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바로 알고 준비한다. 손발이  척척 맞다 보니 서비스가  예상시간보다 리 끝나서 쉴 시간이 있었다.


겔리를 맡았던 우리의 영웅 이탈리아노 친구인 안토니오가 날 애타게 부른다.

쭐리 쭐리, 너 이거 먹어 본 적 있어? 아포가토?


그게 뭔지  궁금해서  보니 이거 내가 한국에서 투게더 아이스크림에 블랙커피를 넣어서 먹었던 거였다. 근데  이게 이름이 아포가토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솔직히 기대하지도 않고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대박이다. 진짜!!! 그래서 안토니오에게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보니  비즈니스에서 서비스 나간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부어서 만든 커피라고 하면서  견과류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고 했다.  달달한 아이스림과 쌉싸름한 에스프레소의 만남에 고소한 견과류까지...

이런  천상의 맛을 왜 이제야 안 걸까...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먹자!!! 그리고  이탈리아가 원산지인 아포가토를 이탈리아노 동료가 비행기에서 만들어주다니..

오늘  진짜   받은 날이다.


겔리 하느라 피곤하고 힘들었을 텐데 동료들을 위해 아포가토를 준비하는  이 스위트한 남자!


크루들과  두바이 라이프에  관해 얘기하다가 크루 한 명이 안토니오의 반지를 보고 결혼했냐고 물어보니 결혼한 지 두 달 신혼이라고 했다.  우리가 러브스토리를 물어보니 카이로 출신인  아내는  비행하면서 만났고  외모는 클레오파트라처럼 이쁘고 성격도 너무 좋아서 결혼하고 싶은데 아내 부모님이 종교문제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안토니오는 아내와 결혼하고 싶어서 가톨릭에서  이슬람으로 개종을 했다고 한다.  우와!!!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 이렇게 개종을 하는 사람을 직접 보다니  정말 대단하다. 그의  열정적인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도 이렇게 잘 챙겨주는데 아내는 얼마나 챙길까..

매일 아침 원두를 갈아서 커피 내려 주는 남자 일 거 같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완전 KO패다...


아포가토로 시작해서 달달한 러브스토리까지  힘든 런던 비행인데도 동료들과 즐기며 웃으면서 일해서 시간이 정말 빨리 갔다. 이런 동료들만  만나길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대신 내가 동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가 되도록 더 노력하자! 오늘도 뱅하느라 수고했어!!


비행 일기 쓸 때 워낙 나만 알아보는 암호가 많아서  조금 수정해서 다시 써봤다. 그래서  일부러 만땅, 즐비안비, 뱅 , 대박 등 이런 단어들은 바꾸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비행 일기를 보니 기억이 너무 생생하게 난다. 겔리에서 같이 아포가토 먹으며 손뻑치며 웃고  서로 연예 상담해주며  조언해주고  안토니오의 찐 러브스토리까지  진짜 기억에 남는 즐거운 비행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비행 일기를 보는 걸 보니 비행기를 못 타니  이렇게라고 비행을 하고 싶은가 보다.   덕분에 오늘은 해피 플라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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