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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Mar 05. 2020

엄마! 이거 물어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요...

천천히  다가갈게요..

니엘이를 씻기고 있는데  갑자기 니엘이가 얼굴을 들더니 나를 빤히 쳐다본다.


엄마! 이거 물어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요... 왜 엄마는 할머니 집에 가면
할아버지랑 얘기를 잘 안 해요?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름 조심한다고  했는데 니엘이는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이모는 할아버지한테 친근하게 말도 많이 하고 삼촌도  할아버지 많이 챙기는 거 같은데
엄마는 인사만 하고 얘기 거이 안 하잖아요!!
그런데 엄마! 할아버지가 돈을 벌어서
세명을 키운 거잖아요?

그래서  난  이렇게  얘기를  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사업이 너무 안돼서
주말에 일 도와드리러 지방에 내려가시면서도  
울 삼 남매 이렇게 힘들게 키우셨어요!! 그래서 엄마는 할머니한테 더 잘하고 싶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니엘이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랑 아빠 월급 똑같아요? 아니잖아요!!! 엄마가 더 많이 벌 때도 있고 아빠가 더 많이 벌 때고 있잖아요! 그래도 2명이서 벌잖아요!
그래서  나 키우는 거잖아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모랑 삼촌 그리고 엄마까지 3명을 키웠잖아요!! 할머니가 도와주셨다고 해도 할아버지가 돈을 번거쟎아요! 할아버지도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그리고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잖아요..
엄마 좀 잘해드리면 안 돼요?


이렇게 니엘이가 얘기를 하는데 난 할 말이 없었다.

난 엄마를 너무 고생시키는 아빠가 그냥 미웠다. 왜 사업을 크게 벌여서 이렇게 울 엄마를 힘들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고등학생 때 아빠가 벌어놓은 사업들이  안되면서 그때부터 우리 집은 정말 많이 힘들어졌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키우며 아빠가 벌어놓은 일들을 정리하기 바쁘셨고 난 그런 엄마를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럴수록 아빠는 내 마음속에서 멀어져 갔다.


어쩌다 아빠가 지방에서 집에 오시면 집에 있기가 너무 싫어서 그냥 밤에 나와서 혼자 걷기도 하고 그런 내가 걱정돼서 나온 아빠와 싸우다가 교회에 가서 울다가 집에 오기도 했다. 그게 나의 유일한 일탈이었다.  공부도 다 그만두고  싶고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그나마  내가 정신줄을 놓지 않았던 건 엄마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되면 울 엄마가 너무나 힘들어할 걸 알았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정말 이 악물고 견뎠다.


이런 환경에서 공부하다 보니 상위권이었던 내성적은 갈수록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음 잡고 공부하려고 해도 너무 생각이 많아 집중하기 힘들어서 도서관에 가서 잠만 자고 온 적도 있었다. 그냥 빨리 어른이 돼서 자립하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을 갔었어야 했는데 난  그 정도 정신력이 안됐었나 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학교를  가도  집에서 다녔기 때문에 혼자 살고 싶어서 빨리 해외를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가 지방에 계실 때  얘기도 안 하고 시드니에 어학연수를 갔다. 그때부터  해외생활이 좋아져서 대학교 4학년 때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가서  일을 하고  졸업 후에는   두바이에서 4년을 거주하면서  비행을  했다. 그리고  결혼 후 플로리다에서 3년을  살았다.   안 그래도 얘기를  거이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다 보니  공감하면서 얘기할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함께  있어도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니엘이에게 "엄마는  할 기가 없어요!"라고 했더니

엄마 천천히 다가가세요!!
 새 학기 때 다 서먹서먹하잖아요. 새 학기 때 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해보세요.
천천히 다가가면 돼요!!


 내 딸이지만 진짜 너무 현명하다.. 정말 오늘 니엘이에게  많이 배웠다.  이렇게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니엘이를  보니 그래도  내가 잘 키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니엘이에게 한소리 들었지만 기분이 좋다.

 

니엘아!! 엄마가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노력할게요.
니엘이가  말한 데로  천천히  다가가도록 할게요. 이렇게  얘기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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