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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파워 Aug 28. 2024

#18.사하라 사막 마라톤 250km 6일간 심정 변화

퇴사 후 사하라 사막 마라톤 도전 | 완주 후기 EP18. 심정변화

24.04 사하라 사막 마라톤(모로코) 완주 성공

제 38회 MDS 대회

참가비 512만원

6일간 252km

최고 온도 55도

가방 무게 12kg



Day 1 (31km)

:꿈에 그리던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순간의 설렘에 대하여.


2024년 4월 14일, 드디어 사하라 사막 마라톤 레이스 시작!

8년간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인생 최대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순간.


약 1천명 사람들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으로 참가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영어공부 열심히 하길 잘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가슴이 뛰고 설렘 한가득이다.


사막의 세찬 모래 바람 때문에 눈,코,입으로 모래가 다 들어간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얼굴에 모래가 덕지덕지 붙어도 크게 불편함이 없다. 원래 그래왔던 것 마냥.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번 대회에서 나의 목적은 완주 기록보다도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어떤 미친 사람들이 이 대회에 참가했을까? 그들은 어떤 이유로 여기에 왔을까? 그들의 인생과 경험이 궁금하다.


그리고 스스로 마라톤 기록이나 완주 자체보다 과정에 충실할 것을 다짐해본다.

‘나, 잘할 수 있겠지? 완주할 수 있을까...?’ 


약간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레이스를 시작해본다. 


가보자!


Day 2 (41km)

: 도전의 속성에 대하여.


둘째 날이다. 

오늘은 41km를 가야한다. 아직은 생각보다 컨디션이 쌩쌩하다. 근데 어깨가 진짜 빠질거 같다. 친구들 가방은 10kg 내외던데 내 가방만 12kg다. 여분으로 가져온 양말, 샴푸, 수첩 등을 모두 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가방이 무겁다. 운명인가보다.


이번 사막 마라톤에서 가장 기대한 점은 ‘어떤 미친 사람들이 이 극한 마라톤에 참가할까?’에 대한 답변을 듣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곧 큰 실망으로 이어졌다. 


‘여기 왜 왔어?’ 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애매모호한 답변들 뿐이었다. 대부분의 답변이 “글쎄.”,”걷다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겠어.” 식이었다. 그간 생각 못한 질문이었다는 당황스러운 표정과 함께. 난 뭐 눈물없이 듣지 못하는 사연이라도 기대했나보다.


그리고 그 실망은 곧이어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아, 도전이 거창한 게 아니었구나.

도전에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었는데, 왜 그걸 이제 알았을까. 


여기 온 사람들은 거창한 목적의식과 이유를 가지고 도전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그냥’ 해보고 싶은 마음이 이곳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사막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해보고 싶은 걸 그냥 해보는 용기가 있었다. 


그들에게 도전이란 ‘성공시켜야할 무언가’ 가 아니라 ‘시도하는 무언가’ 였다. 도전을 했을 때의 득과 실을 계산하지 않고, 내가 진짜 해보고 싶은 거라면 그냥 해보는 용기도 때론 필요한 것 같다. 


도전을 계산하지 않을 용기. ‘그냥’ 해보는 용기. 거창하지 않을 용기!



Day 3 (85km)

: 함께 하는 소중함에 대하여.


죽음의 롱데이, 그 날이 밝았다. 

새벽 5시에 출발해 다음날 오후 3시에 겨우 도착했다. 걸린 시간은 총 33시간. 


죽음의 코스 답게 아침부터 거대한 바위산이 연속으로 나오며 오늘 하루가 길 것임을 암시했다. 밤에 혼자 걷는 게 걱정되어 길을 가며 두 눈을 부릅뜨고 함께할 동지를 찾았다. 그렇게 찾은 동지는 영국 직업 군인이자 나와 또래인 ‘나탈야’ 라는 친구. 우연히 만난 우리는 그렇게 롱데이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우린 이 날 30시간 이상 함께했다. 살면서 데이트도 이렇게 길게 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밤에 걷다 졸릴 때면 서로 우스꽝스러운 신호를 보내거나 영화 ‘위대한 쇼맨’ OST인 ‘Rewrite the stars’ 노래를 함께 부르곤 했다. 함께 해서 덜 고통스러웠고, 함께 해서 끝까지 버틸수 있었다.


새벽 5시에 출발해 어느새 저녁이 되고, 해가 지고, 깜깜한 밤이 되었다. 중간 중간 체크포인트에서 쪽잠을 자고 출발하곤 했다. 다음 날 해가 뜨고, 다시 뜨거움도 모자라 활활 타는 오후가 되어 버렸다. 나탈야와 나는 녹초가 되었다. 녹초인지 좀비인지. 그렇게 우리는 버티며 함께 걸었고 33시간이 걸려 피니시 라인에 도착했다. 뒤에서 4등! 도착하자마자, 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이미 도착한 같은 텐트 친구들이 내가 언제오나 기다리며 마중을 나와있었다. 

내가 도착하는 소식을 듣자마자 피니시 라인으로 달려와 나를 환영해줬다. 가방과 짐을 모두 들어주고, 녹초가 되어버린 나의 그 날 마지막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주었다. 행복해서 울음이 터져버렸다. 이 순간은 6일을 통틀어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었다. 피니시 라인에 들어왔다는 사실보다도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과보다도 그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경험들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을.



Day 4 (43km)

: 응원의 힘에 대하여.


85km 롱데이를 마치고 나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레이스 6일 동안 내내 활기찬 모습을 유지하는 게 목표였는데, 나도 모르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 이제는 정신력 싸움이다.


물집 11개가 생기고, 발톱이 4개가 빠져버렸다. 


그래, 이 정도는 되야 사막 마라톤이지.


다행히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내 발을 보며 괜히 스스로 장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버티기 어려웠던 건 사막의 날씨였다. 낮에는 최고 55도까지 올라가는데 걷다보면 정말 어지럽다. 간식으로 챙겨온 육포를 먹고 따뜻한 물을 마시니 물에서 역한 맛이 나서 죽는 줄 알았다!

걷다가 한 30번 이상 멈췄다. 발이 너무 아팠다. 그러던 와중에 고개를 드니 으악. 거대한 모래 언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럼에도, 6일간 ‘포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한국에서 나를 응원해준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기부 프로젝트에 동참해주신 80명이 넘는 분들을 포함해 응원해준 모든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앞에서 힘들어하는 나를 지켜보던 한 할아버지 스태프 분께서 나를 달래주었다. 멋진 배경과 함께 이쁜 사진도 남겨주셨다. 응원을 받으니 다시 힘이 솟았다.


끝까지 가보자. 난 할 수 있다!


Day 5 (31km)

: 끝나감의 아쉬움에 대하여.


어느새 다섯번 째 날이 밝았다.

새벽 3시쯤 화장실을 가려다 문득 하늘을 보았다. 커다란 보석들이 밤하늘에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내가 상상하던 쏟아지는 별들의 모습들은 아니었지만, 크고 밝게 빛나는 별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평소처럼 새벽 4시 반에 기상해 아침을 먹고 떠날 채비를 했다. 오늘 31km만 잘 넘기면 내일은 진짜 끝이다.

기분이 이상하다. 시간이 참 빠르다. 다치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 체력은 솔직히 거의 방전되었다. 그렇지만 이틀 버티는 건 별거 아니지. 그나저나 가져온 휴지가 다 떨어졌다.


오늘도 길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걸으니 힘이 났다. 지난 4일간 걸음이 비슷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이제는 다들 마주치면 익숙한 얼굴들이다. 반가운 얼굴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지난 8년간 간절히 꿈꾸던 버킷리스트를 이루고 있고, 이제 하루만 더 있으면 이 여정이 끝이 난다. 왠지 모를 시원섭섭함이 밀려온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아무리 시간을 붙잡고 싶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 불확실한 미래와 결과를 떠올리며 불안해하기보다, 현재의 내 감정과 소중한 인연들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 뒤돌아보면 미련이 없을테니까. 이제 정말 끝나간다. 과정에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보자.



Day 6 (21km)

: 여정을 마무리하며.


6일간의 252km 레이스가 끝났다. 


고군분투했던 6개월 준비를 거쳐, 고대하던 사막 마라톤 완주까지. 이 사막 마라톤 도전 과정을 통해 깨달은 세 가지가 있다. 도전이 거창한 게 아니라는 것, 사람의 소중함,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도전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해보고 싶은 게 있고 마침 해볼 기회나 타이밍이 생겼다면 일단 해보는 용기. 그게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상관없이, ‘그냥’ 해보는 용기. 도전을 계산하지 않을 용기. 거창하지 않을 용기. 도전의 가치는 ‘결과적 성공’에 있는게 아니라 ‘시도’ 자체에 있다.


사람의 소중함.

이번 사막 마라톤 도전이 다른 어떤 도전보다도 벅차고 행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함께’ 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응원해준 고마운 사람들, 기부 프로젝트에 동참해 사회적 가치를 함께 이끌어낸 멋진 사람들, 사막 마라톤 내내 함께 서로 다독이며 나아갔던 소중한 인연들. 이번 도전에서 ‘사람’ 이 빠졌더라면 남는 건 ‘고독하고 공허한 성취감’ 뿐 아니었을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도전의 끝에 남은 건 사막 마라톤 도전 과정에서 만난 모든 소중한 인연들, 함께 울고 웃었던 추억들, 힘들었지만 극복했던 경험들, 나도 모르게 성장한 달리기 실력이었다. 설령 이번 도전이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을 충분히 누렸고 느꼈기에 결코 미련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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