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밀 May 16. 2024

편성 PD로 최악의 실수

퇴사자의 글쓰기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니까 사람이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편성팀에서만 8여 년간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방송 자료를 다루는 일부터 프로그램 스케줄까지 맡았다.


은행에서 숫자는 돈과 직결되고

방송에서 숫자는 방송 러닝 타임을 가른다.


편성 PD로서 최악의 실수는 '원피스'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스케줄링 하면서 일어났다.

90분 이상 되는 콘텐츠로 기억하는 데 이를 보통 3등분 해 방영했다.

중간중간 광고가 들어가거나 채널 내 다른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도록 틈을 벌리는 거다. 

각각의 시작점과 끝점의 타임코드를 시스템에 입력하는 데서 에러가 났다.


당연히 순서대로 1>2>3 이렇게 스케줄링을 했어야 맞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순서가 1>3>2로 방영이 된 거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방송 시각은 새벽 2시경이었다. 평소 시청률로 따지자면 크게 의미 있는 숫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시각.

이 엄청난 실수를 발견한 건 다름 아닌 시청자였다. 


프로의 영역에서 사각지대란 있을 수 없고, 그 어떤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나의 업무를 평가하는 건 비단 상사나 HR팀에 한정 지어서도 안될 것이다.

직업인으로서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되새기는 큰 전환점이 됐다.


그 후 어떤 징계를 받았을까? 가장 먼저 나를 뜨겁게 질책한 건 물론 시청자다. 편성팀 직통 번호로 전화를 걸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호되게 혼이 났다.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그야말로 너무도 당연한 질책이 아닌가..

물론 경위서도 써야 했다. 


조직, 고객으로부터의 피드백이 꼭 아니더라도 본인 스스로 느끼는 자책감, 타격감도 결코 작지만은 않다. 그러나 한 번씩 넘어지고 부딪혀 깨져보면서 경험치를 쌓다 보면 노련해지기 마련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크고 작은 실수와 맞닥뜨릴 누군가에게 따뜻한 응원의 마음을 보내본다.

작가의 이전글 글로벌 미디어 그룹에서 내가 배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