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의 글쓰기
Turner Broadcasting의 뉴스 브랜드로 CNN은 무엇의 약자일까?
Cable News Network을 줄여 CNN이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허무했던 재밌는 기억이 있다.
나는 대학 4학년 3월 나는 CNN 인턴이 됐다.
그야말로 '쥐뿔'도 없던 내가 CNN 인턴이 된 거다.
열정과 도전 정신 하나는 끝내줬던 나는 상해 시티그룹 인턴 후에 계속 일할 곳을 찾아보았고
'미국 회사 인턴'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무작정 지원을 했다.
그랬다. 그 '미국 회사'가 CNN 일 줄이야.
그 흔한 토익 점수도 보지 않고 면접이 이어졌다.
한창 영어 점수를 올리기 위해 애를 쓰던 주변 취준생들의 노력은 그럼 뭐가 되는 거지? 하지만 토익 점수 따위.. 숫자에 불과한 것인 양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 해 3월 중순 입사였다. 서소문 중앙일보 빌딩에 자리한 오피스에서 매일 아침 오전 근무를 하기로 했다.
아직 졸업 전, 4학년이었던 나는 오전엔 인턴 생활을 하고, 오후엔 학교로 넘어가 수업을 들었다.
정확히 CNN 세일즈를 담당하던 한국의 연락사무소 격인 이곳에는 대표님과 나의 직속 상사 이렇게 있었고,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Cartoon Network라는 Turner Broadcasting의 어린이 채널을 한국에 론칭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같은 층에 Cartoon Network 사무실도 함께 있었다.
글로벌 미디어그룹에서 나는 역할이 가장 작은 인턴이었지만 당시 대표님은 그 누구보다 많은 기회를 주셨다. 고작 인턴이니까,라는 생각이 들기보다 모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을 심어 주고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셨는데... 가령 이런 것들이다.
당시 터너는 한국 방송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중앙 방송(지금의 jtbc)와 손잡고 조인트 벤처로 카툰네트워크 코리아를 론칭했다.
중앙일보 산하의 중앙방송. 그 수뇌부들과의 주요 회의에 함께하도록 자리를 내주신 것이 대표적인 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얼마큼 이해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 엄숙하고 무게감 있는 회의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었으니 말이다.
한 번은 미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식사 자리에도 데려가 주셨다. 당시엔 나 말고 다른 인턴도 함께 했었는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우리를 한 명 한 명 정성껏 소개해 주시고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해주셨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선을 앞두고 있었는데 관련된 주제로 굵직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런 대표님을 만난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허례허식, 억지스러운 상하 관계나 조직 문화 대신 리더의 품격 그리고 선진 조직 문화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특히 조직의 말단이라 할 수 있는 인턴을 대하는 모습들은 후에 내가 팀장이 되고 함께하는 팀원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최초의 본보기이자 기준이 되었다.
글을 마치며 ..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더구나 그 태초의 시작점에 서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한계를 스스로 한정 짓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공을 던져 보는 거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나처럼 운이 좋게 첫 회사, 그 조직 문화가 높은 수준이었다면 이후 맞닥뜨리게 될 현실이 조금은 가혹할 수 있다. 물론 지속적으로 더 좋은 곳과 연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는 이미 이 기준에 맞춰져 있는데 세상의 모든 조직이 다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CNN으로 시작한 인턴 생활은 Cartoon Network Korea로 이어져 장장 8년의 여정을 끝으로 첫 이직을 했다. 숨을 쉴 때 필요한 공기처럼 당연한 줄 알았던 것이 실은 너무도 귀한 가치였음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어찌 보면 사회생활의 첫 단추는 중요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방송 쪽 커리어를 생각해 본 적 없던 나는 이 인턴 생활을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커리어가 이어졌다. 다만, '방송'에 어떤 큰 뜻이나 꿈, 목표가 없었던 것이 늘 내적 결핍으로 존재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는 방송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 본인만의 뚜렷한 목표가 있어 언제나 눈이 반짝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고민스러운 날들이 많았다. 치열했던 고민은 결국 인생의 키를 조정하게 했지만, 그만큼 오랜 시간 에너지가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감사하고 소중하지만 본인이 진짜 목표한한 바가 있다면 조금은 신중해질 필요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