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바다 Apr 20. 2023

비슬산   진달래 (2)

비슬산 참꽃과 삼국유사

   

비슬산 등산도

   비슬산(琵瑟山) 대구 달성과 경북 청도, 경남 창녕의 사이에 있다. 천왕봉(1,084m)과 대견봉(1,035m)이 있다. 비슬(琵瑟)이라는 이름은 산 정상 바위 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상  100만 m 2(30만 평) 고위평탄면에는 자생하고 있는 진분홍 진달래 () 군락지가 있다. 국내 최대규모다. 대구 달성은 올해 제27회 비슬산참꽃문화제를 개최하여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을 선보였다.      


수서 SRT / 동대구역 (기후시계, 인간의 환경 파괴로 인한 지구의 잔존 생명 6년 104일 남았음)

   비슬산은 나에게 선녀 같은 신비로움과 가슴 설렘으로 남아 있었다. 오늘(2023.04.15. . 흐림/가끔 비) 아침 07:00 수서역에서 출발하여 동대구역에 08:41 도착하였다.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동대구역에서 승차, 대곡역에서 하차하였다. 곡역이 비슬산 휴양림 가는 출발 정류장이기 때문이다. 대곡역 버스 정류장에는 비슬산행 600번 임시운행 버스를 타기 위하여 30명 정도의 등산객들이 모여 있었다. 휴양림 주차장에 11:30 하차하였다.     


   비슬산은 나에게 어머니 같은 산이다. 어릴 적 아침 눈 비비고 사립문밖을 나서면 큰 산이 바로 보였다. 이곳 사람들은 비슬산을 ‘큰 산’이라고 불렀다. 세상에서 제일 큰 산이기 때문이었다. 해가 동쪽 비슬산에서 떠올랐다.  땔감이 떨어져 가는 어느 봄날, 옆 집 아저씨가 새벽 일찍 큰 산에 나무하러 갔다는 소문이 났다. 해질 무렵이면 집채 만한 나무짝 위에 꽂힌 분홍색 진달래가 너울너울 춤추며 비슬산에서 내려왔다. 비슬산 진달래는 그렇게 오래전부터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이른 봄에 큰 산에 산불이 자주 일어났다. 밤에 시뻘건 산불을 처음 본 옆집 갓 시집온 새댁은 우짜꼬! 우짜꼬!’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동네 사람들은 나무꾼들이 불을 냈다고도 하였다. 몇 날 며칠 밤을 도깨비 얼굴모양으로 불 띠를 보였다.  봄비가 오는 날 비로소 산불이 꺼졌다.     


   한 번 고향 떠난 방랑자에게 처음으로 비슬산 등산 기회가 온 것은 작년 초여름 6월이었다.(저의글 2022.06.28. 비슬산 등산)  그 후 오매불망 산 정상의 진달래가 눈에 그려져 보고 싶었다. 4월 중순경 목표로 대망의 비슬산 진달래를 보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기필코 보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졌다. 마침내 참꽃 축제 일정(2023.04.15.~16)이 뉴스에 떴다. 그런데 49일경에 참꽃 군락지에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들이닥쳤다. 비슬산 정상부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영하로 내려가 참꽃이 얼어버렸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핀 꽃들은 얼어서 점점 갈색으로 변해 가고 있다고 했다. 작년 고향 방문했을 때 택시 기사님 조언이 생각났다. 비슬산 참꽃을 제대로 즐기려면, 일주일 간격으로 사전에 미리 한번 올라가 보아야 한다고 했다.  

  

고위 평탄면의 진달래 군락지

   다행히 산 정상 진달래 군락지의 진달래는 잠깐의 저온을 견디어 낸 다른 가지에서 새로운 꽃을 피워내어 참꽃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참꽃 군락지에 들어서자 구름과 안개가 끼어 군락지 건너편 천왕봉까지 멀리 볼 수는 없었다.  일기예보대로 간간이 비가 후드득 뿌려 등산객들이 우산을 펼치거나 비옷을 찾아 입었다. 30만 평 고위 평탄면에 이미 핀 일부 진달래는 냉해를 입어 시들어 가고 있었다. 머지 새로운 보랏빛 진달래군은 바람에 흔들리며 신비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락군의 참꽃이 만개하였다.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한다. 참꽃은 진달래의 다른 이름으로 유일한 꽃 혹은 먹을 수 있는 꽃이란 의미다. 주차장 근처에 Azalea(아젤리아, 참꽃)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호텔이 있다.     


고맙다! 반갑다! 비슬산 진달래!      


   옆지기는 ‘소원 풀었네’라고 응원해 주었다. 비슬산 참꽃 관람은 나의 버킷리스트이자 또 다른 나의 소원 1호였다. 세상일이란 예측불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내년에는 정말 멋진 진달래와의 만남을 간절히 빌어 본다. 비슬산에 늦깎이 등산하게 된 이유는 이렇다. 어릴 적에는 보폭이 좁아 감히 엄두를 못 내었고, 나이 들어서는 방랑자가 되어 세상사에 쫓겨 바빴다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다.  이제는 회귀본능에 따라 여우가 누울 곳을 찾고 있는 딱한 처지의 수구초심(首丘初心) 신세인 것이다.   

  

투어 버스 타는 곳

주요 탐방로는 다음과 같다.

   비슬산 자연 휴양림 주차장->참꽃 군락지(고위평탄면)->대견사(일연)->암괴류(토르, 애추)-> 비슬산 자연휴양림/펜션->소재사->비슬산 자연 휴양림 주차장     


   등산 다음의 행선지는 현풍읍-> 선산 참배->초등학교->현풍읍(숙소)였다. 다음날(2023.04.16.)은 대구의 앞산공원을 탐방하고, 청라언덕역에서 하차하여 이은상 시인의 동무생각시비를 보고 미국 선교사 주택과 선교사 무덤을 돌아봤다. 이어 3.1 만세운동길, 계산성당,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국채보상운동의 서상돈 고택을 탐방하였다.      

제27회 비슬산 참꽃 문화제 안내

1) 비슬산 자연 휴양림 주차장

   도보 등산 대신에 빡빡한 일정을 고려하여 ‘제27회 비슬산 참꽃 문화제에서 비슬산 정상까지 운영하는 20인승 소형 셔틀버스를 탑승하여 정상까지 곡예를 하듯 산복도로를 이동하였다. 심한 회전구간에서는 차체의 등뼈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셔틀버스 바닥에서 났다. 12시경에 이미 2,000여 명 정도가 셔틀버스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간 것 같았다.(근거 : 나의 번호표 109, 한조에 20명씩 타는 무료 셔틀버스 티켓) 총 버스 7대가 쉼 없이 계속 주차장과 정상을 순환하며 탐방객들을 실어 날랐다. 효율적인 관람객 수송 관리차원에서 축제 기간 중 전기버스는 운행 중단하고 있다고 했다.     

참꽃 군락지

2) 참꽃 군락지(고위평탄면)

   대견사(표고 1,000m) 입구에서 하차했다. 조금 전 하차한 탐방객과 관람을 끝내고 내가려는 탐방객이 뒤엉켜 있었다. 진달래를 먼저 볼 것이냐 대견사를 먼저 들릴 것이냐로 실랑이를 하는 탐방객도 있었다. 나는 진달래를 택했다. 나의 꿈, 버킷리스트가 진달래였기 때문이다. 운무 속에서 진달래 군무사이에 난 데크를 따라 걷는,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대곡역 600번 버스 정류장에서 사귄 동갑내기 서울 강북 아저씨를 군락지에서 다시 만났다. 반가웠다. 서로에게 사진을 찍어 주었다. 아저씨는 천왕봉으로 향하고 나는 대견사로 내려왔다. 우리는 그렇게 기약 없이 헤어졌다.(참고로 나도 아저씨)     

부처 바위 / 대견사 탑

3) 대견사(일연)

   진달래와의 첫 만남 후에 바로 인접한 대견사와 연결된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벼랑 끝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선 부처바위가 부처님 설법을 설파하는 듯 장엄하게 서 있었다. 대견사의 심벌이다. 암반 끝에 세워진 삼층석탑이 오랜 세월을 굿굿하게 버티며 서있다. 사 요원들이 벼랑끝 쪽으로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었다. 그래도 어디에서나 인생 사진을 찍는 용감한 탐방객이 있다. 위험 테이프가 진입을 막고 있었다.     


   천년고찰 대견사는 삼국유사의 저자 보각국사 일연과 연이 있다. 일연의 초임지이며 수행처였다. 삼국유사의 토대를 쌓은 곳이다. 기록에 따르면 일연은 1227(고종 14) 선불장에서 최고의 성적으로 합격한 뒤 초임지로 비슬산 보당암(대견사)을 택해 22년간 계셨다고 한다.


    진달래 군락지를 탐방하며 단군신화와 방대한 삼국유사 저술의 큰 그림을 그리며 거닐고 있는 일연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필시 삼국유사의 출발점이 비슬산 정상의 진달래였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대견사

   대견사는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라는 뜻이다.  ‘봉정, 대견이라고도 불린다고.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하늘 아래 가장 높은 도량이라는 뜻이다.
 
   고려 말에 몽골 침입으로 폐허가 됐다가 1371년 다시 지었다. 그런데 한일합방 후 비슬산 산세와 대견사가 대마도를 당기고,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속설 때문에 1917623일 강제로 폐사됐었다고 한다. 이후 약 100여 년간 폐사지로 방치됐다. 조계종 동화사와 달성군 노력으로 2014년 복원되었다고 한다.  참꽃 문화제 주관처에서 시집을 배부하고, 보도옆에 걸개그림으로 걸어 두었다. 그중에 대견사를 노래한 시가 있었다. 오십 초반 한창 진달래 꽃 같은 나이에 돌아가신 분홍치마 입은 어머니 생각이 저절로 났다.    

  

대견사에서

대견사에서

(시인 김청수)   

  

봄이 왔다는 전갈에 비슬산 올랐네

봄비에 분홍은 젖어 있었네

가만히 앉아

먼 산봉우리 바라보니

하늘 길 따라 우리 엄니,

분홍 치맛자락 휘날리며 다녀가시네     

산림문화 휴양관

4) 비슬산 자연휴양림과 펜션 숙소

   자연경관을 그대로 활용해 휴식공간과 편의시설을 갖췄다. 당초에는 산림 속 호텔에서 별을 보며 하룻밤을 보내겠다는 당찬 로망이 있었다. 아젤리아 호텔, 휴양림 숙소 예약을 시도했으나 일찌감치 완료되어 할 수 없이 현풍시내에 작년에 묵었던 숙소를 다시 잡았다.      

소재사

5) 소재사(消災寺)

소재사 일주문에서 우측으로 비슬산 정상 올라가는 도로변에 보각국사 일연 동상과 기념비가 탐방객을 맞는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소재교를 건너면 소재사 일주문과 마주한다. 재앙을 소멸한다는 이름의 사찰이다. 한때 300여 명이 상주했던 큰 절이었다고 한다. 소재사 앞 터에는 방앗간을 비롯하여 두부공장·기왓골 등도 있었다 한다. 현재 이 절의 축대 밑에는 금빛이 나는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터 금물정(金水井)이 있다고 한다. 가뭄 때면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다음 백과)     

개막 축하 공연

6) 비슬산 자연 휴양림 주차장

   하산은  소형 셔틀버스 탑승대신에 두 발로 하였다. 내려오면서 잠시 2개의 개막 축하 공연을 보았다. 하나는 풋풋한 젊은 두 청년의 패기 넘치는 산속 길거리 공연(반딧불이 버스킹)이었다. 숲 속 휴양림 넓은 장소에서 개막축하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가수 박미경의 트롯풍의 노래에 관객들이 격렬하게 환호를 하고 있었다. 주최 측에서 많은 준비를 하였으나 날씨(흐림/)와 일기 변화로 정상의 진달래가 냉해를 입었다는 뉴스에 등산객이 아쉽게도 목표보다 다소 감소한 것 같았다.   

   

   곳곳에서 차량이동을 잘 통제하여 교통 흐름이 원활하였다. 원거리에서 온 대형버스는 초입의 다른 대형 주차장에 주차하게 하여 혼잡을 피하였다. 유가사 방면 교통과 연계하여 시계방향으로 일방통행하게 하여 교통정체등 막힘없이 원활하였다. 참꽃화전, 지역 농축 특산물 홍보, 자원봉사자들의 열성이 눈에 보였다. 코로나로 3년간 축제가 취소되었다가 금년(27)에 다시 시작하였다. 내년에는 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응원하여 본다.    

   

현풍 시내에서 본 비슬산

7) 현풍읍~선산 참배~초등학교~현풍숙소

   주차장에서 현풍시내로 내려가는 임시 운행 버스를 타고 종점(개인 차량 이용자를 위한 주차장)에서 하차하였다. 한동안 헤매다가 급기야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약 8km 거리의 선산에 들러 예를 올렸다. 항상 송구스러운 마음뿐이다. 고향 마을은 주마간산처럼 스치듯 지나갔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동네 친척 누나, 척 여동생, 친구 생각이 났다. 10세 전후의 에게 너무 깊은 마음의 병으로 남아 직은 글로 남길 용기는 없다. 


   초등학교 정문에 도착하였으나 정문이 닫혀 있었다. 날씨 탓인지 거리는 한산했고, 짜장면 생각이 나서 반점을 찾았으나 오늘은 휴업 중이었다. 텅 빈 시장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우시장 일대를 하릴없이 배회하다가 결국 급행 8번을 타고 현풍숙소 돌아왔다. 다행히도 시장터, 파출소, 고목, 교회, 우체국, 농협, 도로(편도 1차 선), 방치된 빈집터(옛날 친구 집)에는 기억하고 있던 오래된 과거의 일부는 그대로 남아 있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암괴류(너덜강)

2. 신의 작품

(1) 달성 비슬산 암괴류(達城 琵瑟山 岩塊流, 너덜겅)

   우리말로는 너덜너덜한 돌들이 거랑(개울)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로 너덜겅이다.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435호로 지정되었다. 길이가 2킬로미터에 달하는 비슬산 암괴류의 마지막 하단 끝부분이다. 경사 15도로 기울어진 채 산자락을 길이 2km, 80m, 두께 5m에 달하고 암괴들의 직경이 약 12m에 이르는 것으로 국내에 분포하는 수 개의 암괴류 중 규모가 가장 커다고 한다.     

부처 바위(토르 샘플)

(2) 토르

   토르(tor, 화강암 기반의 지하에서 풍화된 미세한 알갱이가 제거되고 남은 화강암체)가 잘 발달한 대견사지 부근에는 부처바위 등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분포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산만큼 커다란 바위 집합체다. 부처바위가 대표적이다.     


(3) 애추 등의 다양한 지형 자원

   칼바위는 애추(崖錐, 풍화된 암석 조각들이 경사가 급한 비탈로 떨어져 내려가 절벽 밑에 부채꼴 모양으로 쌓인 각진 돌의 집단)의 형성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4) 고위평탄면

고위평탄면의 진달래

   약간 경사진 논밭처럼 평평하다. 고위평탄면의 진달래와 더불어 오늘의 주인공이다.  빙산으로 설명하면 고위평탄면은 보이지 않는 수면하부이고, 진달래는  상부의 일부분이다.      

보각국사 일연 기념비

3. 비슬산과 일연과 삼국유사

   비슬산 대견사(보암당)는 일연의 깨달음 수행의 장소였다. 대구 일대는 보각국사 일연(1206~1289)의 탄생(경산, 본명 김견명, 경주 김 씨), 깨달음(대구 달성 비슬산), 열반(군위 인각사)의 현장과 관련이 깊다. 삼국유사의 ‘왕력 편’이 쓰인 대구 인흥사와 집필지로 추정되는 운문사, 완성지인 인각사가 모두 대구를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참꽃 화전

   보각국사 일연이 20대를 비슬산 대견사(보당암)에서 보낸 수행 지였다. 일연은 이곳에서 다양한 신앙과 경전을 접했는데 이것은 훗날 삼국유사(고려 충렬왕 7, 1281년~1283년)의 폭넓은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일연이 혼자 쓴 야사로 평가받고 있지만 수많은 고대 사료를 수록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 특히 고조선의 건국 신화를 서술해 한반도 역사의 기원을 기록한 것이다. 비슬산 참꽃화전처럼, 우리 민족의 기원을 똑똑히 기록하였다.     

비슬산 참꽃 문화제 팜플릿

 글이 길어져 앞산공원과 청라언덕 편은 다음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06화 비슬산 참꽃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