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바다 Oct 17. 2024

국립 부여 박물관과 정림사지 탐방

백제 사비성 부여시대(2)

부여 관광 안내도

   정약용 선생은 삼한 가운데 백제가 가장 강하고 문화가 발달하였다고 했다.(三韓之中 百濟最强最文, 강역고 疆域考) 단 하나의 예를 들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백제금동대향로를 말하겠다. 백제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한 눈에 보는 백제연표 / 백제금동대향로

   오늘(2024.10.03. 목, 개천절, 비 22도)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 사비성을 여행했다.


   백제의 수도 변천사를 잠깐 살펴본다. (금회, 굵은 선 사비성 탐방)

한성 위례성 BC 18~ AD 475 (1대 온조왕~21대 개로왕, 약 495년간, 73%, 2024.09.28. 방문, 토, 맑음, 28도)

웅진성      AD 475~ AD 538 (22대 문주왕~ 25대 무령왕, 공주, 약 64년간, 2024.10.01. 방문, 화, 비, 25도 )

사비성      AD 538~AD 660 (26대 성왕 ~ 31대 의자왕, 부여, 약 123년간, 2024.10.03. 방문)

     

   부여(사비성) 탐방 순서는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 금회 설명 순서)    

부여 버스터미널> 신동엽 시인 생가 및 문학관> 부여성당> 부여성당 신축부지 유물 발굴> 부여군청> 궁남지(포룡정)/서동과 선화공주/계백오천결사대 충혼탑> 화지산유적> 국립부여박물관> 정림사지 오 층 석탑/ 정림사지박물관> 관북리유적> 삼충사> 부소산 낙화암     


국립부여박물관

   1929년 부여 고적보존회로 출발한 박물관은 1975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승격됐다. 그리고 1993년 금성산 아래에 터를 잡고 지금의 자리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국보 세 점, 보물 여섯 점을 비롯해 총 1만 9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중 백제 유물이 1만 1000여 점에 달한다.(국립부여박물관 자료)

국립부여박물관 배치도

   백제금동대향로(국보)로 대표되는 백제 사비시기의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국보 4 점, 보물 5 점등 총 32,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방문하는 날 1층 입구 중앙홀로 들어가니, 갑자기 앞이 캄캄했다. 로비에서 천정을 배경으로, 현란한 무늬의 레이저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산수, 연꽃, 구름, 용, 봉황, 도깨비등이 주요 소재다. 참신하고 충격적이었다. 여러 박물관중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당유인원기공비

당 유인원 기공비

   입구에서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우측에 울타리 쪽에는 특이한 석물이 전각 안에 세워져 있었다.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부소산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는데, 백제 부흥운동을 평정한 이후의 행적은 지워져 있다고 설명판이 말한다. 비문에는 의자왕과 태자 및 신하 700여 명이 당나라로 압송된 사실과 부흥운동의 주요 내용, 폐허가 된 도성의 모습등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박물관과 지근거리에 있는 정림사지 오층탑 1층 탑신에 당의 소정방 장군이‘대당 평 백제국 비명’이라고 세긴 것처럼 뼈아픈 한반도의 역사다. 석촌호수 서호 입구에 서있는 조선 인조의 삼전도치욕(삼전도비)도 그렇다. 치욕도 우리의 역사다. 잊지 말자.  

부여박물관 1층 배치도
중앙홀 레이저 쇼(1)

중앙홀

   현관 입구에 들어섰는데, 앞이 캄캄하였다. 많은 관람객들이 천정에서 펼쳐지는 레이저 쇼를 감상하고 있었다.  부여 박물관이 관람객에게 다가가는 특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신선하다.

중앙홀 레이저 쇼(2)

   중앙홀에서 산수, 연꽃, 구름, 용, 봉황, 도깨비를 소재로 백제인이 꿈꾼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

제1 전시실

1 전시실

   부여의 선사와 고대문화를 보여준다. 충남의 청동기시대부터 마한까지의 문화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중국 랴오닝(요령) 지역의 문화와 한강 유역의 문화가 어울려 독특한 청동기 문화를 형성했다.

새 모양 토기

   부여 송국리 유적등으로 독특한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새 모양 토기는 좀 낮 설었다. 한국식 동검 문화는 일본에 까지 영향을 주었다.

대쪽모양 동기(좌측 하단) / 동검(중앙)/거친 무늬동경(우측)

   독널(옹관), 거친 무늬거울(조문경, 粗紋鏡) 유리대롱옥, 대쪽모양동기(대나무를 세로로 쪼갠 모양의 동기)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2 전시실(사비백제와 백제금동대향로)

2 전시실

백제금동대향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

   동양 최고의 금속공예품인 백제금동대향로다. 높이 61.8cm, 무게 11.85kg이다. 1993년 부여 능산리 사찰의 공방터에서 발견되었다. 뚜껑에는 봉황이 정상에 앉아 있다. 다섯 방향으로 쌓아 올린 봉우리에는 다섯 악사들과 현실 세계 동식물, 상상의 동물등이 묘사되어 있다. 산 사이사이에서 향의 연기가 올라오게 만들었다. 향로 몸체는 연꽃 봉오리처럼 표현하고 3단으로 되어 있다. 받침은 용이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나타냈다. 제작과정을 상세하게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백제금동대향로 제작과정

   신선들이 산다는 신산을 표현한 박산향로의 전통을 잇는다. 고대의 전통적 세계관과 도가사상을 정교하게 드러냈다.    

   

   제작방법은 밑그림 그리기, 밀랍으로 원본 만들기, 거푸집 만들기, 청동을 녹여 거푸집 붓기, 금도금하기 순서다. 마지막으로 향을 피워 시험해 본다. 정약용 선생이 백제문화를 극찬하는 대표적 상징물이라고 생각한다.  

부여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부여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부여 능산리 절터 중앙부에 자리한 목탑 자리 아래에서 출토된, 백제 때 사리를 보관하던 용기다. 출토 당시 이미 폐기된 상태였으며, 높이 74cm, 가로ㆍ세로 각각 50cm로 터널형이다. 실의 좌우 양쪽에 예서체의 글자가 각각 10자씩 새겨져 있다.


사택지적비

   사택지적이라는 인물이 남긴 이 비석은 부여 부소산 남쪽의 돌무더기에서 발견됐는데, 화강암을 잘 갈고 네모 칸을 친 뒤 글자를 새겨두었다. 지금은 부서져 56자만 남았다. 백제의 대표적인 금석문으로는 사택지적비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있다.     

사택지적비

   1948년에 발견되었다. 높이 102㎝, 폭 37.9㎝, 두께 29㎝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비면은 길이 7㎝인 정방형 선으로 금을 그어, 각 행에 모두 14자씩 4행으로 모두 56자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사택지적은 몸이 해가 가듯 쉽게 가고 달이 가듯 돌아오기 어려움을 슬퍼하여 금을 뚫어 진당을 세우고 옥을 깎아 보탑을 세우니, 그 웅장하고 자비로운 모습은 신광을 토해내어 구름을 보내며, 찌를 듯이 높게 솟아 슬프고 간절함은 성명을 머금어……"라고 되어 있다. 인생의 무상함을 적은 내용으로, 도교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어 백제 귀족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사택지적은 日本書記에 보이는 642년(의자왕 2) 왜에 사신으로 파견된 대좌평 지적과 동일인으로 보인다고 한다.      

호자 (남성용/여성용)

호자

   전시실에는 재미있는 모양의 그릇도 보인다. 남성이 사용한 요강이다. 호랑이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남성과 여성 요강의 형태가 다르다. 기발하면서도 여유가 있다.    


목간

   나무에 기록된 백제문화를 볼 수 있다. 구구단 남근형 신세한탄 망부가등 다양한 내용이다. 그 가운데 특이한 것은 구구단 목간이다. 예를 들면, 7*9= 63, 6*8=48등이다.

구구단 목간


제3 전시실백제의 불교문화

3 전시실

산수무늬벽돌 / 금동 보살 입상(국보) / 백제의 미소

   백제의 불교문화를 보여 준다. 석불상, 금동불상, 탑과 각종 꾸미개 등 백제의 예술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있다. 백제 불교미술의 정수를 만나다. 백제 침류왕 1년(384년)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사비시대는 불교가 가장 융성한 시기로 일본에까지 불교를 전파했다.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제293호)이 그 정점이다. 부여 왕흥사 사리기(국보)는 사리를 담는 함이다.

왕흥사지 사리기

   석재로는 산수무늬 벽돌,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 불상이 대표적이다.      

분청사기 연꽃물고기 무늬 병

제4실 기증으로 빛난 문화유산 사랑

   관람 후, 기증자의 당초 의도와 다르게 나의 솔직한 심정은 귀중한 우리 역사를 박살낸 증거물이라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공주 무령왕릉 주변의 예가 그렇다. 왕릉 7기 중, 유일하게 도굴 안된 곳이 무령왕릉이었다. 나머지 6기 내부를 발굴 당시 릉 안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 무령왕릉안에서 국보가 쏟아져 나왔다.

세발토기

   기증자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도굴꾼 혹은 발굴에 참여한 학자, 특히 일본 학자들은 유물들을 모조리 쓸어 반출하거나 증거나 자료도 하나 안 남기고 긁어갔다. 수많은 국보급들 유물들을 그렇게 허무하게 처리했다. 아무튼 수요자가 있었으니, 공급자(도굴꾼)가 있었지 않았겠는가? 귀중한 우리의 역사를 지우게로 지워버린, 아주 몹쓸 사람들이다.  

그릇받침 / 이중단지

   귀걸이, 분청사기 연꽃물고기무늬 병, 세발토기, 그릇받침등이 대표적이다. 이중단지의 용도가 궁금했다. 그릇 받침은 밑바닥이 둥근 항아리 등의 그릇을 올려놓을 때 쓰는 토기다.     

정림사지

정림사지

   정림사지는 부여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동쪽으로 금성산, 북쪽으로 부소산에 둘러싸여 있다. 백제 성왕이 538년 부여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나성으로 둘러 쌓인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정림사가 세워졌다. 절터에는 정림사지 오층 석탑(국보)과 고려시대 만들어진 석불좌상(보물)이 있고, 백제 불교문화와 정림사를 이해할 수 있는 정림사지 박물관이 있다.

정림사지(2)

   남북 일직선상에 중문. 탑. 금당. 강당을 배치하였다. 고려시대(1028)에 제작된 명문 기와가 발견되어 정림사지라고 불리고 있다. 

大平八年戊辰 定林寺大藏當草 명문이 새겨진 기와

   1942년부터 탑 부근에 대한 발굴이 계속되어 대가람의 사지가 확인되고 법당지에서 ‘大平八年戊辰 定林寺大藏當草’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기와 한 장이 역사를 바꾸었다. 이후로 절터는 정림사지로, 탑은 정림사지 오층 석탑으로 불려졌다.      

정림사지 오층 석탑

정림사지 오층 석탑(국보 제9)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현존하는 백제탑이다. 같은 담장 내에 정림사지박물관이 있다. 잘 다듬은 화강암 석재 149매를 짜 맞추어 올린 높이 8.9m의 탑이다. 전통 건축물 처마선과 같은 지붕의 부드러운 곡선과 각 층의 안정감과 균형 잡힌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정림사지 오층 석탑 (출처 백과사전)

   이 석탑의 높이는 8.33m이며, 석탑의 구조는 일반적인 건축이나 석탑에서와 같이 지대석(地臺石)을 구축하고 기단부를 구성한 다음 그 위에 5층의 탑신부(塔身部)를 놓고 정상에는 상륜부(相輪部)를 형성하였다.   

  

정림사지 오층 석탑의 상처

   백제 사비성을 침공한 당장수 소정방이 탑의 탑신 1층에 승전기공문인 ‘대당평백제국 비명’을 새겨 놓았기 때문이다. 한때 ‘평제탑(平濟塔)’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부여정림사지 석불좌상

정림사지석조여래좌상(보물)

   정림사지에 남아 있는 석불이다. 강당자리안에 있다. 고려시대에 절을 고쳐지을 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된다고 한다. 신체는 마멸과 파괴가 심하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제작당시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었다고 한다.     

정림사지박물관

정림사지박물관

정림사지 제1 전시관

1전시관

   역사를 조명한 명문 기와를 시작으로 라이팅 쇼와 발굴조사와 정림사지 오층 석탑 축조과정을 영상으로 보여 준다.          

제2 전시관

2 전시관

   백제 불교 역사관이다. 극락정토를 형상화한 연꽃과 사비백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디지털 실감 콘텐츠로 보여준다. 다른 전시관에는 보부상 활동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불교의 전파

   불교의 유래와 전파, 가람배치, 사찰 분포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백제문화제

   탑 뒤쪽 광장에 비가 오는 가운데, 백제문화제 축제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진행하시는 분들의 진심과 노고가 보였다. 관중들은 비가 오고 있었지만, 비닐 비옷을 입고 몸을 흔들며 박수까지 치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얼마나 더 신났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백제문화제 행사중(비가 왔다)

<참고 자료>

-. 국립부여박물관 팸플릿

-. 국립부여박물관 신기술융합콘텐츠 안내 (국립부여박물관 발행)

-. 정림사지 팸플릿(정림사지박물관 발행)

-. 여기가 부여다 팸플릿(부여문화원 발행)


긴 글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어서  다음회에는 관북리유적, 삼충사, 부소산 낙화암 방문 결과에 대하여 글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07화 부여 궁남지와 화지산 유적지 탐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