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170319)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康成, 1899년~1972년, 73세 졸)가 생을 스스로 마감한 가나가와현(神奈川県,かながわけん) 즈시(逗子)의 해변을 두발로 걸어 본다. 즈시역에서 나와서 바닷가와 해변 지역을 거쳐 湘南国際村까지 걷는다. 거리는 편도 약 10km이고, 3시간 정도 걸린다.
즈시는 미우라 반도에 위치해 있어, 해변과 언덕과 산으로 형성되어 있다. 도로는 주로 협소한 편도 일차선이다. 한국과 달리 좌측 통행이다. 자동차 핸들 위치도 우측에 있다. 통행로에서는 차를 마주 보면서 갓길로 걸어 가는 것이 안전하다. 즈시는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에 바로 인접한 해변에 접한 조그마한 소도시다.
목련이 피기 시작한 봄 바다를 출렁이는 파도를 벗 삼아 걷고 또 걸었다.
목련
고독과 허무와 죽음이 드리워진 그의 삶의 일부를 느껴 볼 수도 있겠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진솔한 행위가 아닐까?
즈시 앞 바다
1899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1901년(한국 나이 3세)에 죽고, 1902년에 어머니마저 죽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4세 정도 어린아이)와 그의 어머니 사망 당시의 모습이 생각나 사진에 담아 보았다(수평선 우측 무동력 요트가 보인다)
오오사카 인근의 이바라키시에서 1906년 9월 그를 보살펴 주던 할머니가 죽고, 1909년에는 따로 살고 있던 누나마저 사망하는 비극이 이어졌다. 1912년 오오사카 이바라키 중학교(지금의 오오사카 부립 이바라키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2년 뒤 1914년 할아버지까지 죽었다. 절해고도의 일엽편주나 다름없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청년 시절
친척의 도움으로 도쿄에서 생활하였으며, 대학(도쿄대 영문학부 입학 후, 국어 국문학으로 전과, 졸업) 재학 중 작품 활동을 하였다. 좋아하였던 장소는 도쿄 아사쿠사 지역이었다고 한다. 오오사카에서 30분 거리인 교토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즈반도(저의 작년 주제, 20211115 '이즈 반도 문학 기행' 참조) 여행으로 ‘이즈의 무희’가 탄생하고, 눈의 고장 니가타현(에치고유자와 온천에서 집필)에서 ‘설국‘이 세상으로 나왔다.
1937년부터 사망한 1972년까지 35년을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와 즈시 지역에서 보냈다.
가마쿠라 저택
야스나리는 1949년부터 가마쿠라를 배경 한 소설 『천 마리의 종이학(千羽鶴)』, 『산소리(山の音)』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후기 대표작 대부분이 가마쿠라에서 탄생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다음 해인 1969년에는 가마쿠라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다.
노벨 문학상 3년 뒤인 1972년 4월 16일, 가나가와현 즈시의 맨션「즈시 마리나」의 세컨드 하우스인 자택 집필실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이곳은 그의 주거주지인 가마쿠라 하세에서 택시로 30분거리다. 사인은 가스에 의한 자살로 추정되었다. 향년 73세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묘
그의 무덤은 ’ 가마쿠라 공원 묘원‘에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중년(가마쿠라)
주변의 이야기를 근거로 살펴 보면, 그를 가마쿠라와 즈시로 이끈 것은 그의 사망시각인 저물녘의 고독과 허무가 드리운 바다가 아닐까 생각한다.
즈시 해변의 석양
바다를 가진 가마쿠라 분위기는 전번 저의 주제 “수국 여행“에서 대략 설명드렸다.
어떤 주장도 힘주어 말하지 않는 습관을 가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말만큼은 힘을 주었다고 한다. 1968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장 수상소감의 한 대목이다.
"고독과 죽음에 대한 집착으로 삶을 살았고 글을 썼다. 작품을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고자 했다. 평생 동안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애썼다."
ShonanKokusai Mura Green Park(湘南国際村グリーンパーク)->승마학교->즈시역
야마테 성당
1. 요코하마
1) 야마테 성당
첨탑이 아름답다.
야마테 카페
2) 카페
언덕 위에 있는 조용한 동네의 참새 방앗간 같은,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카페이다.
이탈리아 정원
3) 이탈리아 정원
건물 뒤편 정성 들여 가꾸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바닷 쪽 아랫마을의 정경과 조화를 이뤄 평화롭게 보인다. 부속건물들이 계단 아래 넓은 부지에 있다.
4) 이시카와 쵸 역
작은 샛강을 사이에 두고 다른 출입구(남/북)가 떨어져 위치해 있다. 외부 방문객과 만남의 약속 장소 혼동으로 잠시 소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2. 즈시 & 하야마 마리나
즈시 역
1) 즈시역(逗子駅)
해변가를 달리는 버스 편이 있지만, 도보 여행의 감흥을 느끼기 위해 걷는다. 바닷가 산책 후 장거리를 장시간 걸어도 별로 피곤함을 모른다. 폐에 고농도의 산소가 많이 공급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 즈시 역
2) 신즈시역(新逗子駅)
또 다른 노선의 역을 지나게 된다. 시골역 같은 분위기를 느낀다.
즈시 해안 해수욕장(수평선 우측 희미하게 보이는 섬이 가마쿠라 에노시마 섬)
3)逗子海岸海水浴場(Zushi Beach)
진행 방향으로 보았을 때, 시계 6시 방향에서 12시 방향으로 휘어진 해변이 아름답다. 멀리 가마쿠라의 에노시마가 보인다.
태양의 계절 비
4) 태양의 계절 비(太陽の季節碑)
유, 소년기를 즈시에서 보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소설 <태양의 계절> 문학기념비가 있다.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하야마 마리나
5) 하야마 마리나(葉山マリーナ)
일본 요트장 발상지다. 지인에게 여행하기 좋은 곳을 물었더니, 요트광인 그가 즈시/하야마를 적극 추천하였다.
그 후 얼마 뒤 그는 퇴직하고 나가노 산 꼭대기 도로변에 카페 개업하고, 은퇴하였다.
마리나 리조트 맨션(정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마지막 거처, 4층 417호)
유서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무덤은 ’ 가마쿠라 공원 묘원‘에 있다.
모리토 해안의 어부와 미역 말리는 일터
6) Morito Coast(森戸海岸)
이곳에서 보는 석양의 후지산이 멋있다고 한다.
즈시 해안의 바다 가재와 고등, 미역
바닷물고기, 미역 등을 말리고 있는 어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모리토 대명신사 다리
7) Morito Daimyojin Shrine(森戸大明神)
붉은색 칠한 다리가 있다.
8) Ajisai Park(あじさい公園)
공원이 수국화로 꾸며져 있다.
신나세 해안
9) Shin-nase Beach(真名瀬海岸)
바닷가 도리가 특이하다.
시바사키 해안
10)芝崎海岸(Shibasaki Coast)
바닷가 바위에 자생하는 해송에게서 인간의 고독과 애처로움을 느낀다.
11) 가나가와현립 근대미술관(神奈川県立近代美術館 葉山館)
스쳐서 지나갔다.
12) Koisonohana(小磯の鼻)
바다를 향해 코처럼 돌출된 바위 덩어리가 있다.
하야마 시오사이 공원
13) Hayama Shiosai Park(葉山しおさい公園)
시오사이(しおさい)는 海潮音, 밀물소리, 파도소리다. 일왕이 수집한 표본과 사가미만의 해양 생물을 전시하고 있다.
시오사이 공원 연못
벽에 대정 왕의 서거(1929년)지이며, 소화 왕의 계승 지라는 기록판이 있다. 정식 취임 행사는 도쿄에서 이루어졌다.
왕 별장
14) Hayama Imperial Villa(葉山御用邸)
왕의 별장이다. 葉山しおさい公園와 인접해 있다.
즈시 해안
15) Kanagawa Kenritsu Hayama Park (神奈川県立葉山公園)
해수욕장과 솔밭이 있다.
죠자가사키 카페
16) Chojagasaki(長者ヶ崎)
언덕에 조그마한 동네의 식당같은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바닷가로 내려가 보니 연인 한쌍이 손잡고 산책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즈시역 방향으로 우측에 휘어진 해변의 곡선이 일품이다.
구유화 해수욕장
17) 久留和海水浴場
좌측 산 도로 주변에 별장이 띄음띄음 있고, 해변 쪽에는 폭발물 주의 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2차 세계 대전시 미군 비행기에서 투하된 불발탄을 조심하라는 의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고독과 허무가 바다에 드러누웠다.
3. 湘南国際村에서 즈시역으로
쇼난 국제촌 그린 파크
1) ShonanKokusai Mura Green Park(湘南国際村グリーンパーク)
해변에서 수직 방향으로 산을 올라간다. 중간에 아담한 카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우디 벨 카페
언덕에 3월에 피는 색깔별로 띠를 이루고 피어 있는 철쭉꽃이 참 아름답다. 한 번 본 그 광경을 근거로, 큰 소리치며 친구들을 즈시역에서부터 도보로 대동하여 바닷가를 경유하여 4월에 방문하였다. 안타깝게도 이미 끝물이라 그 화폭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고 아쉬웠다. 그것도 2번이나. 花無十日紅이었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순간이고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