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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23. 2020

피토관 덮개

“익숙함에 속지 마라”

하루에도 비가 왔다 해가 떴다 하는 변화무쌍한 오클라호마의 기상 탓에 비행이 가능한 화창한 날이면 자가용 면장을 취득한 학생들은 솔로 크로스컨트리 비행으로 비행시간 쌓기에 바빴다. 한정돼 있는 비행기 댓 수에 스케줄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비행 전날 자신이 탈 비행기와 비행시간을 미리 체크해 스케줄을 잡지 않으면 당일 취소되는 스케줄의 비행기만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노후화된 비행기가 많아서 학생들과 교관들 사이에서 성능이 좋다고 알려진 비행기의 스케줄 잡기는 더욱 힘들었다.


비행기 스케줄표_(가로) 시간대별로 (세로) 비행기 테일 넘버 옆에 교관과 학생의 이름이 적혀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바람도 불지 않던 포근한 봄날, 별다른 수업 계획이 없어서 새벽부터 일몰 전까지 비행 스케줄을 잡았다. 첫 비행을 마치고 비행기를 행어에 세워둔 뒤 두 번째 비행을 나가기 위해 공항 FBO에 전화해서 주유를 부탁했다. 학교 안에 들어가 포어 플라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플라이트 플랜을 제출하고 릭에게 비행해도 좋다는 서류 서명을 부탁했다. 보통 솔로 비행을 가기 전에 체크리스트 순서대로 프리 플라이트를 꼼꼼히 해야 하는데 이미 새벽 비행을 한번 하고 온 터라 귀찮기도 하고 시간도 부족해 대충 재점검을 마쳤다. 그날따라 많은 학생들이 줄줄이 비행을 나갔다. 릭도 귀찮았는지 세세하게 체크를 하지 않고 내 솔로 비행 서류에 서명을 해줬다. 교관의 서명은 단순한 사인이 아니라 해당 학생이나 비행기가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본인이 책임을 떠안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행 어디 갈 거야?”

“샤누트 공항으로 갑니다.”

“연료 양은 얼마나 돼?”

“가득 채웠습니다.”

“오일 수치는?”

“6 정도 됩니다.”

“조심히 다녀와.”

“예썰!”


연료 양과 오일 수치만을 점검한 뒤 릭은 내 솔로 비행을 허락했다. 나는 칵핏에 올라 헤드셋을 끼고 체크리스트 순서대로 계기를 점검했다.


“Beacon On. Prime as Necessary. Mixture rich. Set throttle. Check area clear.”


고개를 돌려 왼쪽, 정면, 오른쪽, 후방에 사람이나 장애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막 시동을 걸 찰나였다.    


“어? 왜 열쇠가 없지?”


난감했다. 열쇠가 없었다. 이미 비행기를 행어에서 꺼내 교관에게 부탁해 비행 전 최종 점검까지 마친 상태였다.


“아! 내가 정신 나갔구나.”


순간 행정 사무실에서 열쇠를 받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자책했다. 교관에게 서명을 받고 난 뒤 최종 점검을 받기 전에 먼저 열쇠를 챙겼어야 했다. 급하게 서두르다 생긴 큰 실수였다. 얼른 비행기에서 내려 사무실로 달려가 열쇠를 받아왔다. 랜든이나 릭이 행여나 눈치 채지 않았을까 가슴 졸이며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시동을 걸었다. 


"클리어 프롭!"


엔진이 굉음을 내며 강한 진동과 함께 작동하기 시작했다.

 

“Riverside Ground, Cessna 94658 run-up complete.”

-리버사이드 그라운드, 세스나 94658, 런업 완료.


“Cessna 658, number 2 contact tower number 1”

-세스나 94658, 대기 순서 두 번째, 대기 1번일 때 타워에 연락 요망.


“Number 2 contact tower number 1, cessna 658.”

-대기 순번 두 번째, 대기 1번일 때 타워에 연락할 것.


이륙 전 모든 점검을 마치고 막 활주로에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그때였다. 싸늘한 기운이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찝찝했다. 분명 무언가를 빼먹은 느낌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으면서 이마에서 식은땀이 났다. 왼쪽 날개 아랫면에 붙어있는 피토관의 덮개가 제거되지 않은 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피토관 덮개-친절하게도 비행 전에 제거하란 말까지 쓰여있다


피토관(pitot tube)
: 속도계와 연결돼 관의 입구와 내부의 공기 압력 차이를 통해 속도를 측정하는 장비.


피토관 덮개를 벗기지 않으면 비행기의 속도를 측정하지 못한다. 


속도를 모르면 이륙할 때나 상승, 하강 시 스톨(양력을 잃고 자유낙하)에 걸릴 위험에 노출된다. 속도계가 고장 났을 경우에는 절대 비행을 해선 안 된다. 상황을 인지했을 땐 활주로 코앞이었고 내 앞에 비행기 한 대만 대기하고 있었다.


큰일이다. 어떡하지?


짧은 시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타워에 연락해 현재 상황을 전달하고 런업구간으로 돌아가서 덮개를 제거해야 했다.


런업구간
: 이륙 전 엔진 등 비행기의 이상 여부를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곳



그럴 경우 랜든에게 보고해야 하고 적어도 한 달은 솔로 크로스컨트리는 물론 훈련 비행까지 금지당할 게 뻔했다. 부리부리한 두 눈으로 날 꾸짖을 랜든의 얼굴이 떠오르자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덮개를 낀 채 그냥 이륙할까? 샤누트 공항에 착륙한 뒤에 덮개를 벗기면 된다.
그러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피토관 덮개

정말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 사이 헤드셋으로 들려오는 관제사와 조종사의 오가는 대화는 나를 점점 더 옥죄어왔다. 이제 막 착륙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빠져나가면 내 앞에 대기 중인 비행기는 활주로에 진입하고 나 역시 비행기를 전진시켜 이륙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 왼 팔을 최대한 뻗었다. 하지만 내 손이 덮개까지 닿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급기야 아예 조종석 문을 열어젖힌 뒤 오른발로 두 러더를 밀어 브레이크를 밟아 고정했다. 천만다행으로 비행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왼 팔을 쭉 뻗었다. 겨드랑이와 옆구리가 당길 때까지 최대한 몸을 늘렸다. 손끝에 덮개 고리가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내 앞의 비행기가 hold short line을 넘어 활주로로 진입했다. 바로 뒤에 비행기가 두 대나 밀려 있는 상황에서 얼른 내 비행기를 전진시켜 줘야 했다. 다리와 팔을 요가 동작하듯 다시 한번 힘껏 쭉 뻗자 덮개 끝에 달린 고리 끈이 손가락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고리 끈을 서너 번 잡아당기기를 반복한 끝에 덮개가 빠져나왔다. 천만다행이었다.


“살았다. 살았어. 이제 됐어.”


안도할 여유도 없이 문을 닫고 얼른 러더에서 발을 떼 비행기를 hold short line 앞까지 이동시켰다.      


“Riverside Tower, Cessna 94658, number 1 at runway 19R for flight following to Chanute.”

-리버사이드 타워, 세스나 94658, 활주로 19R에 1번으로 대기 중, 목적지 샤누트 공항.


“Cessna 94658, fly runway heading, runway 19R clear for takeoff.”

-세스나 94658, 활주로 방향으로 이륙 허가함.


“Runway 19R, clear for takeoff, Cessna 658.”

-활주로 19R, 이륙 허가 확인, 세스나 94658.


타워에 보고를 마치고 활주로에 들어섰다. 서서히 스로틀을 밀어 넣자 점점 가속도를 붙은 비행기가 빠르게 움직였다. 속도계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T’s and P’s green. Airspeed alive, RPM green.”


속도계가 55노트를 가리킬 때쯤 요크를 잡아당겼다. 비행기는 바퀴가 닿은 지면에서 천천히 떠서 청명한 하늘로 향했다. 속도계의 눈금이 67노트임을 확인하고 트림을 사용해 일정한 상승각을 만들었다. 그제야 여유를 찾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3분 전의 상황을 복기하며 나 자신을 반성했다. 무리하게 빨리 하려고 급하게 바삐 움직이다 벌어진 결과였다. 동체 점검부터, 열쇠, 피토관 덮개까지 사소한 것도 무심코 지나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서둘러 비행 한번 더하려다, 랜든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서 피해 가려다가 영영 비행을 접어야 할 뻔했다.

 


익숙함에 속지 마라.


수업시간에 밥이 늘 강조했던 말이었다. 사실 100여 시간 정도 비행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체크리스트 내용 대부분을 암기하게 된다. 매일 반복해서 보고 읽고 점검하기 때문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혼자 솔로 비행을 나갈 땐 체크리스트 내용 일부를 생략할 때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사고가 날 위험이 크다. 파일럿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확인해야 할 부분을 안 하고 넘어가다 자칫 중요한 부분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할수록 천천히. 서두르다 더 큰 화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배웠다.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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