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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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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 팔지 마라”

자가용 면장을 취득해 들뜬 기분도 잠시 계기비행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임교관인 릭은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잭을 내 교관으로 배정했다. 키가 190cm가 넘는 데다 얼굴까지 잘생긴 잭은 학교 여학생들의 선호 교관 1순위였다. 그는 성격도 좋았다. 학생들이 배운 것을 이해하고 만족할 만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 많은 교관이었다. 자가용 과정을 배울 때 툰지가 휴가를 가면서 잭과 함께 비행한 적이 있었는데 내 비행에서 뭐가 부족하고 잘못된 건지 하나하나 꼼꼼하고 세세하게 알려줬다. 자가용 과정 당시 난 그의 학생이 아니었지만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지나가는 그를 붙잡고 언제든지 물었다. 잭은 자신이 모르면 직접 책을 뒤져서라도 학생들에게 끝까지 답을 알려줄 만큼 친절하고 책임감 있는 교관이었다.  


잭과 계기비행 훈련 중 Cessna 172


계기비행은 창밖을 보지 않고 오로지 여섯 개의 계기(식스팩)에만 의존해서 비행하는 방법이다. 구름이 많거나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좋지 않은 상황에 대비한 비행 훈련이다. 비교적 날씨와 시간 제약이 덜하기 때문에 자가용 과정과 달리 야간 비행이 언제든 가능했다. 아침잠이 많은 잭은 새벽 비행 대신 해가 진 뒤에 야간 비행을 자주 나갔다. 깜깜한 밤,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밝히는 오클라호마의 도심 야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흥분됐다.

 

일명 식스팩(Six Pack)으로 불리는 계기들


계기 과정은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스피드와 고도, 자세, 방향 등을 알려주는 계기에 의존한 채 교관이 지시하는 대로 정확한 수치를 유지해야 했다. 평가에서 정해진 오차범위에서 벗어나면 무조건 탈락이었다. 그래서 비행 내내 여섯 개의 계기를 눈으로 번갈아가며 훑어보는 것(scanning)이 핵심이었다. 나는 첫 계기 시뮬레이터 수업 당시 시작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어지러움을 느꼈다.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돌리자 잭이 내게 물었다.


“괜찮아? 어지럽지?”

“응. 이거 왜 이런 거야?”

“원래 처음에는 다 그래. 조금 쉬었다 하자.”


구름이 많은 날 잭과 비행훈련을 나갔다가 실컷 고생하기도 했다. 그날따라 구름의 두께가 꽤 두꺼웠는데 그 사이를 비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깨달았다. 구름 사이로 들어가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자세계와 방향계, 고도계를 번갈아 확인하며 잭이 지시한 수치를 최대한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손에선 땀이 흐를 정도로 압력이 강했다. 마치 누군가 주먹으로 옆구리를 때리는 것 마냥 비행기 동체에 엄청난 진동이 느껴졌다. 게다가 밖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구토하고 싶을 만큼 머리가 어지러웠다.


잭과 함께 했던 계기 크로스컨트리 비행 잭을 좋아했던 태국 학생 팻이 동승했다. Cessna 172


“잭. 나 힘든데 잠깐 쉬어도 될까?”

“그럼. I have control.”

“You have control.”


나는 시야를 가리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눈앞은 온통 하얀 구름 천지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터라 벌컥 두려움이 앞섰다. 구름 사이를 지나는 동안 동체는 더 요동쳤다. 첫 비행 이후 없었던 멀미가 오고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본 잭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안 되겠다. 오늘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아니야. 괜찮아. 참을 수 있어.”

“어차피 오늘 바람도 강해서 홀딩 연습하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야.”


그는 파워를 최대한 올리고 빠른 속도로 리버사이드 공항으로 복귀했다. 나는 한동안 끊었던 생강 뿌리 영양제를 먹으며 안정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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