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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 Jan 28. 2019

온전한 믿음의 시선

나를 살게 하는 관계


누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대답할 만큼 행복한 날들을 보낸다. 여기에 왜?라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다 내게 이런 행복이 온 것인지 궁금하다. 의심의 여지없이 소중한 사람들을 아끼고, 소박하게나마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는 즐거운 과정 속에서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 새삼 특별하게 느껴진다. 친구들과 밥을 먹어도, 시시껄렁한 농담을 해도, 늘 진심으로 웃는다. 하지만 밝은 빛 속에서도 그림자를 찾아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까, 이 지극한 충만함이 어딘지 불안하다. 내게 주어지기엔 너무 큰 것 같아서, 때론 겁이 난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기쁨이 오는가. 틱틱거리는 농담 하나까지도 고맙고 또 눈물이 날 지경이라니. 행복과 동시에 찾아오는 불안함은 그림자처럼 자연스러워서 어색하다. 당연하다는듯한 그 불안의 뻔뻔함이 싫다.


커다랗고 무한한 이 세계 속에서 우리의 삶은 무엇일까. 실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잠들기 전엔 늘 한 번쯤 우주에서 나를 바라보는 생각을 한다. 아마, 바라볼 수도 없겠지. 점이 되어 보이지도 않을 테니까. 여기서 아옹다옹하며 살아가는 것, 일희일비하는 것, 뭔가에 고민하고, 울고, 혹은 너무나 행복해하는 것. 이것들이 다 하나의 점처럼, 순간처럼, 먼지처럼 둥둥 떠다닌다. 내 모습과 삶이 객관화된달까. 엄밀히 말하면 객관화도 아니지. 그저, 모래알처럼 보일 뿐이다. 그 속에 웃음도 있고, 기쁨도 있다. 네 박자 속에 모든 것이 있다고 한 촌스러운 옛 노래에, 왠지 가슴이 아파온다. 작은 틀과 리듬 속에 우리의 삶이 다 있다. 그렇게 산다.






며칠 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그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 눈 안에 형언할 수 없는 믿음이 있다. 아무말 하지 않아도 - 당연히 아는 것들. 나도 그저 이런저런 얘기만 나누었지만, 그녀도 알았을 것이다. 삶에 대한 포괄적인 지지-랄까, 그냥 서로의 옆에 서기로 결심한 것. 그 이유는 언제나 모호했다. "네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라는, 다소 투박한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내것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도 내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들었어, 내가 이렇게 못났어, 라는 순간에 떠오르고 그 품에 가 안겨도 - 그 존재가 나를 바보같이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 어떤 이해관계가 아니라 가족의 손길로 얽힌 친구들. 그의 아픔이 내 슬픔이 되고, 그녀의 행복이 내 기쁨이 되는 관계.

기쁨과 함께 고마움이 온 몸을 흔든다. 그 순간은 이렇게나 사소했다. 당신이 없는 자리에서도, 조용하고 묵직하게 당신의 감정을- 그 입장을- 가장 먼저 자연스럽게 살피게 되는 것. 거창하게 좋아한다고 호들갑 떠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없이 사랑하는 것. 그렇게 여느날의 햇살처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꼽아 본다. 언제 우리가 봤더라, 하고 헷갈리는 그런 드문드문한 템포도 끝없는 바다같은 이 관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에 반짝반짝 보이는 그 마음이, 내것 같음이, 가을 낙엽 위로 드문드문 내린 빛의 조각처럼 따스하다. 여러번 생각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만큼 네가 나를 아낀다는 것을. 친구보다는 우리는 가족, 같다는 것을. 아주 많지는 않지만, 나는 이 사람들만으로도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행복해서 눈물이 와락 오르는데, 겨우 참았다. 온 몸에 따스함이 가득한 하루.













* 2년 전의 글을 다시 꺼냈습니다. 여전히 나를 살게 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보는 그 시선은 여전합니다. 내 삶이, 나의 현재가 이 사람들을 사랑하기에 모자람이 없도록 꽉 채운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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