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은 언제나 결핍이었다
나의 20대는 공허를 사랑으로 메꾸기 위한 나날이었다. 자존감이 없었기에 더욱 과장하고 즐거워하기 위해 애썼다. 즐거움이 없다면 무엇이든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거침이 없었다. 두 눈을 가린 망아지처럼 이곳 저곳 부딪치며 날뛰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지만 소중한 줄을 몰랐다.
과잉은 언제나 결핍이었다. 화려하게 덧칠한 겉면을 한 겹 들추어 보면 차가운 구석에 웅크린 내 모습이 보였다. 사랑할 줄을 몰랐다.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기에, 나를 아끼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시험하려 들었다.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길 때 도망쳤고, 그의 상실감이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착각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처절할 만큼 어리석고 아픈 순환이었다. 갖기 위해 노력하고, 가지면 달아나 버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문득 마룻바닥 위로 무심히 부서지는 햇살을 보며 그 스물 몇 살의 시간이 떠오른다. 열 번의 겨울이 지나고 열 번의 봄이 오는 동안 같은 일을 반복했으니. 진통제로 버티듯 자의식의 상처를 무마시키기 위해 애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달아남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 상처에도 분명히 새살이 돋을 수 있다. 영원한 아픔은 없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동안 보이지 않아도 조금씩 걸음을 뗄 수 있게 된다. 나의 삶을 바꾸고 이끌어준, 다시는 없을 순간을 만들어 준, 사람의 진실성이 어떤 온도와 형태로 삶을 안아주는지 알게 해 준, 아주 구체적이며 손에 잡히던 기억. 어린 아이에게 단어를 가르치듯 수천번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 그 끝엔 허무에서 나가는 문이 보인다.사람을 믿는다는 것, 온전히 상대에게 나를 기대어 의지한다는 것을, 또 그만큼이나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젋은 날의 노력. 상대의 아픔에 기생하며 나를 확인하는 병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의 행복으로 나의 의미가 생겨나던, 서로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모든 피로가 녹던, 설명할 필요도 없이 명백한 내 것 같음에 웃음이 나고 작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렇게 따스하던, 옆에 걸터앉아 말없이 보다가 이 시간도 끝이 난다는 것에 눈물이 나던, 태평양의 끝처럼 영원히 해가 뜨고 달이 빛나던 날들.
모두 '이제서야' 어른이 되었다. 더 이상의 결핍은 없다. 그래서 치장하는 과잉도 없다. 애써 즐거움을 찾지 않아도 '충분하다'. 한없이 순수한 얼굴로 나를 보며 방긋거리는 아가와, 갈색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평화로운 시간을 산다. 사랑을 시험하지 않아도 따뜻한 온기로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문형이 아닌,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만큼 명백하게 모든 것이 괜찮다. 이제 부족하다고 울부짖지 않고, 채우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약간의 불완전함이 이 모든 순간의 축복이기에.
아름다운 기억들은 예기치 않은 곳들에 상처처럼 남았다. 모처럼 맑은 날 하늘을 붉게 채운 노을이었다. 아무 가진 것 없어도 그 하늘로 남부러울 게 없던 때가 있었다. 치유의 기억이다. 가득찬 충만의 기억이 불쑥 떠올라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나를 키우고, 사랑할 줄 모르던 존재를 보듬어주고, 아름다움을 보게 하고, 웃음을 준 것. 지금을 아끼는 - 자유로운 시간 여행자가 되게 해 준 것. 무엇 하나 당연하지 않았던 그것들은 사랑이구나. 어떻게 사라질 수 있을까, 나를 살게 했는데.
아름답다. 하지만 한 번 뿐이라, 삶은 아프고 또 특별하다.
지금 또한 나의 인생의 일부가 되겠지, 아낌없이 사랑해야지. 이제는 충만의 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