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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쯔잉 Sep 30. 2021

추석이라니 촌스럽게.

언제부턴가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을 무덤덤히 보내게 되었다. 교문을 나선 후로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으려고 열심히 그 의미를 적어내던 식목일과 현충일, 한글날이 달력에서 지워졌고 결혼과 육아에서 벗어나고 보니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뭔가 밍숭맹숭한 기분마저 들었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신경써서 챙겨야 하는 기념일들이 사라진 자리는 병원의 정기검진 예약날짜나 번역 원고의 마감일 혹은 다음달 반드시 해지하지 않으면 통장에서 자동이체되는 인터넷 서비스 요금 결제일 따위가 재빨리 채워주었다. 


어른이 된 후로 솔직히 그 어떤 명절이나 기념일도 반갑지 않았다. 내 생일조차도. 달력에 붉게 표시된 날들은 평일보다 더 바쁘고 더 신경을 써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선물이나 음식을 준비하고 비위를 맞춰야 하는 날이다. 일상이라는 세탁조 안에서 탈탈 떨리는 과정을 지나고 보니 후줄근하게 늘어진 티셔츠처럼 바닥에 널부러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짜릿한 해방감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이틀 전, 백신접종을 마친 딸과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병원 근처 대형 마트에서 기다리다가 카트의 행렬에 잠시 합류할 기회가 있었다.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일까. 거대한 카트 안에 고기와 술, 과일과 채소, 안주 거리와 간식을 가득 채운 가족 단위의 쇼핑객들로 매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계산대 앞에 늘어선 그들의 긴 카트 행렬을 뒤로 하고 치즈와 도넛 한 상자를 들고 상대적으로 한산한 셀프 계산대로 향했다. 

사실 진열대와 진열대 사이를 점령한 둔중한 카트와 마트 안의 모든 식재료를 싹쓸이하듯 쓸어담던 사람들의 기세에 눌려있던 나는 빠른 계산을 마치고 마트 안을 빠져나온 후에야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결국 다 먹지도 못하고 냉동실로 직행할 기름진 음식을 만들고, 갑갑한 집안에 한데 모여 복닥거리고, 생전 몇 번 본 적도 없는 친척들의 오지랖을 감당하기에는 추석 연휴가 너무 길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명절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엄마는 평소에 먹던 것과는 다른 특별한 음식을 준비했고 내게는 엄마의 일손을 돕는 기쁨이 있었다. 고소한 참기름을 묻혀 마른 김 위에 쓱쓱 바르고 소금을 착착 뿌리는 일이 얼마나 재미가 있던지, 떡 반죽을 동글게 뭉쳐서 안에 깨와 밤을 으깬 소를 넣어 빚을 때면 나중에 깨를 넣은 송편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나만 아는 표시를 해둘 때의 짜릿함이 있었다. 전을 부치는 일도 내가 즐겨 도맡아하던 명절의 유희였다. 말하자면 명절의 특별한 음식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어린 내게는 일종의 놀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명절 음식이 시들해졌을 뿐 아니라 재료를 구입하고 준비하고 만드는 과정에서도 어린 날의 기쁨이나 설렘을 느낄 수 없었다.  같은 명절인데 왜 즐거움은 사라지고 의무만 남게 된 걸까.


이제는 의무로 채워지던 명절마저 해방되었으니 만세라도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허전할까. 

결국 나는 올해 추석에도 송편을 먹지 못했다. 내년에는 추석 말고 촌스럽지만 송편의 날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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