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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스타 Apr 02. 2020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그게 다야.

나는 항상 늦다.

나는 살면서 부모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무엇인지,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외동딸로 자란 내게 사람들은 항상 이야기한다. "부모님의 사랑 많이 받으면서 자랐겠다." 굳이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글쎄... 내가 그렇게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나?" 싶었다.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깊은숨을 내쉬며 느낀 건데, 늘. 풍. 족. 한. 사. 랑. 을 받아서 그게 사랑인지 몰랐던 거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오고 나니 내 안에 하고 싶은 말들이 넘친다.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글을 쓰며 마음을 정리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 테면 이제야 실감 나는 여자라는 정체성, 여자의 삶, 아내의 삶, 며느리의 삶, 앞으로 펼쳐질(지도 모를) 엄마의 삶, 나의 엄마와 아빠의 삶, 부모님의 삶, 나의 일, 삶의 균형.


새로운 환경에 놓일 때면 나의 전체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초중고 새 학년 첫날 새로운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을 만날 때, 그들과 관계를 맺어갈 때 마음 안이 복잡하고 속으로 하는 하고 싶은 말이 넘쳤다. 그 이후 나는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덕에(?) 학창 시절 다음으로 겪을 직장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접하지 못하고 아주 오랜만에 나의 세계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결혼.


30년을 넘게 독립해본 적이 없어 부모님과 지지고 볶고 함께 살았다. 이른 아침 아빠 출근, 나 출근, 나 퇴근, 아빠 퇴근. 겹치는 시간이 없다. 토요일 저녁 한 끼 정도 함께 먹고 특별히 나누는 말 없던 우리 집. "네", "아니요", "늦게 가요" 별 말 없는 우리 집 단톡방.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별것도 아닌 일에 티격태격하게 되니 주변에선 "거봐 이제 너도 떨어져 살 때가 된 거야. 떨어져 살아봐야 애틋해져."라고 말했다. "내가 과연 애틋해지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신혼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갈 때에도 마음은 고요했고, 짐을 풀고 정리 다 하고 청소기 돌리고 장을 볼 때도 마음은 고요했다.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하고 예쁘게 상 차려서 자랑 겸 부모님께 사진을 전송한다. "아이고 잘하네 우리 딸. 그래 행복해라." 지금까지 부모님께 내 손으로 밥 한 번 지어드리지 못했는데. 우리 딸... 우리 가족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 딸 집에 없으니까 허전하네. 용용이가 누나 보고 싶데."

"엄마 아빠 잘 잤어? 엄마 아빠 밥 먹었어? 엄마 아빠 뭐해?"


가족 단톡방이 활성화되고 서로의 실시간 안부를 묻는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바로 그 주 주말에 생전 처음 요리해본 솜씨로 비빔밥을 해드렸다. 으리으리하게 못하지만 무려! 5종 나물 무침ㅋㅋㅋ과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하여 비빔밥으로 선정한 것이었다. 드시면서도 오빠에게, 시부모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걱정뿐이다. 응원도 잊지 않고. 아기자기 이쁘게 꾸민 집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시고 정말 행복해하셨다. "앞으로 엄마랑 아빠는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행복할 것만 생각해. 서로 아껴주고 잘 살아! 우리 집 주소 바꿀 거니까 이제 오지 마"라고 다신 안 볼 것처럼 말하고 "우리 딸 집에 없으니 허전하다. 이번 주에 놀러 갈까?"하고 다시 말하는 우리 집.


부모님을 위해 처음 지어본 밥상


어제는 오빠의 생일이었다. 나는 그저 전화 한 통 오빠한테 해달라고 아침에 얘기한 건데 엄마와 아빠는 왜 이제 얘기했냐며, 앞으로는 내가 적어놓고 필히 챙겨야겠다며 아침부터 야단이 났다. 점심 후딱 드시고 오빠 선물 고르고, 나갈 준비를 하고, 기차표를 끊고, 케이크를 사고 대전에 왔다. 정작 함께 있었던 시간은 1시간 반인데 우리 엄마 아빠 너무 행복해한다. 집에선 한 명이 떠나 아쉽다가도 새 식구가 늘어 이리도 행복한가 보다.


"우리 사위 넘 이쁘고 든든해 최고 사위다."

"마음 씀씀이가~~ 이쁘다."

"듬직한 아들 사위가 있어 좋다."

"평생 내 편이 더 생겨서 좋다."

"오늘 왔다 가길 정말 잘한 것 같아. 서로 살면서 잘하자."

"좋은 짝 만나 행복해요."

"오늘은 벚꽃이 더 이쁘다 어제 사위를 보고 와서 그런가 보다."

"사위 만나 오늘은 기분이 업~"


항상 늦다. 설거지를 하다 생각이 난다. 세수를 하다 생각이 나고 창밖을 보다 생각이 난다. 조건 없이 나의 행복만을 바래 주는 우리 엄마 아빠. 나는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못됐는데. 독립하러 오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후련해했는데 마음이 무너진다. 항상 늦다. 한 발도 아니고,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늘 늦다.


잊지 않고 자주 물어봐야지. 엄마 아빠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보고 싶고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지, 소중한 추억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악은, 행복했던 순간은, 기억을 함께 꺼내 보고 기록해줄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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