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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스타 Sep 10. 2020

[신혼일기] 부지런히 사랑하는 방법

나에게 시간은.

H가 아팠던 이후로 감사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에 대한 초조함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초조함은 나를 부지런해지도록 만든다. 부지런히 질문하게 하고, 부지런히 기억하게 하고, 부지런히 사랑하게 한다.


H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난 그날 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건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많은데. 함께 하고 싶은 시간이 너무 많은데.'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속절없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면 지금 이 순간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어서 자주자주 되뇌었다. 이상해 보일 수 있겠지만 tv를 보다가 문득 내 옆에 있는 H를 쳐다보며, H의 퇴근 시간에 맞춰 프라이팬에 볶이고 있는 당근을 바라보며, 밥 먹고 같이 산책하는 내 옆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더 부지런히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잖아. 기억하자고!'


부지런히 기억하려는 이 마음은 내가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로 뻗어나간다. 이들과의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몰라.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용기를 내어본다. 꼭 놓치지 않고 시간을 쓰고 싶은 것은 부모님을 더욱 알아가는 것이다. 결혼 전 함께 살 때는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나 많았음에도 그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기억은 거의 없다. 나에게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수 없는 그들과의 시간을 부지런히 그들을 기억하는 일에 쓰고 싶어서 질문을 적어본다.


전화도 자주 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 밥은 먹었는지, 날씨는 어떤지 매일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반복한다. 하루에 하나라도 뜬금없고 실없는 사람처럼 "엄마 뭐 먹을 때 제일 행복해?"하고 질문해보기도 하고, "엄마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 "언제 가장 행복했어?" 물어보며 그들의 대답을 녹음해둔다. 얼마 전엔 영상으로 녹화도 해두었다. 뜬금없고 철없는 나의 캐릭터가 이럴 때 아주 유용하다! 끝까지 철없이 해맑게 질문하며 그들의 대답을 기록해둔다.


이제서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든 건, 그들이 내게 준 부지런한 사랑 때문임을 느낀다. 오늘 점심에는 부지런히 용기를 내어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봐야지, 오늘 저녁엔 H에게 건강한 저녁을 차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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