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지키기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비슷한 나이대의 타인과 스스로의 처지, 상황을 엄청나게 비교한다. 이게 사회적 동물의 사람으로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데, 사실 별 의미는 없다. 개별 인간이 처한 구체적인 사회적, 재정적, 가족적 상황이 모두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근데 이걸 다 무시하고 어떤 한 시점에서의 다른 두 인간을 여러 면에서 비교하고 비슷해야 하길 강요한다면 이 또한 매우 심각한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필자는 타인과의 비교보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시공간의 축과 이 축을 둘러싼 환경으로 보았을 때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는지 절대적 진리의 관점에서 물어보라고 하고 싶다. 분명히 당신을 둘러싼 여러 환경과 시공간의 축을 보면 절대적 진리의 관점에서 정답은 있다. 이 상황에서 이걸 하고 저 상황에서 저걸 시험해 보고 여기서 성공이냐 실패냐에 따라서 다른 걸 선택하고, 지금 2020년대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의 상황에서 내 재정적, 가족들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무얼 선택해야 하는지는 사실 진리에 근접하는 정답이 있다. 물론 각 개인의 상황이 다르기에 정답은 개인별로 다르겠지만, 분명히 그 구체적 상황과 환경에서 그 개인에게 절대적 정답이란 존재한다. 필자는 바로 이걸 찾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 선택이 이 정답에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야지, 남들과 비교하여 따라가지 못한다고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처음 대학에 입학해서 2년은 대충 살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윗 문단의 관점에서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실패도 많지만 후회는 없다. 지금도 윗 문단의 관점에서 내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핀다. 그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비교적 건전한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이유이다.
1. 아프리카 팀북투 빈민가에서 태어난 콜롬보라는 흑인 아이와 대한민국 지방광역시 중산층에서 태어난 김모모라는 아이의 구체적 환경과 시공간의 축은 다르고, 그들이 각각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 (절대적 진리의 관점에서의 정답에 가까운 수)는 다르다.
2. 이 콜롬보와 김모모가 서로를 비교한다면 이는 틀렸다. 서로 비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수가 절대적 진리의 관점에서 정답에 가까운지를 비교해야 한다.
3. 이 2번은 대한민국의 강남 한복판에서 유복한 집 독자로 태어난 이모모와 김모모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성립한다. 둘은 환경이 다르다. 신체조건과 유전자도 다르다. (물론 정치가 이 환경의 차이를 깰 수 있지만 이 글은 정치적 이슈는 다루지 않는다.)
필자는 지금 개인의 정신건강을 지키고 현대인의 만성병인 불안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절대적 진리의 관점에서의 정답과 자신의 선택을 비교하라. 절대로 내 옆의 타인과 비교하지 마라. 타인과 나는 다르다. 같은 학교에, 같은 회사에 입학/입사했기에 비슷하다고? 아니다. 다르다.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지 말자. 집안 환경도 다르고 재정적 수준도 다르고, 형제 관계도 다르다. 나는 그가 아니다. 그도 내가 아니다. 서로 다른 시공간의 축과 환경에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