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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Oct 27. 2020

아픔을 겪은 이를 위한 나의 사소한 위로

30대 남편의 뇌 MRI 검사와 아내의 위로

 레이먼드 카버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소설 속 주인공 앤은 중산층 가정에, 잘 나가는 남편을 두었으며 8살 난 아이가 하나 있다. 아이의 생일을 맞아 케이크를 주문했으나, 아이는 등굣길에 차 사고를 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의식을 잃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을 읽고 보니 나는 앤과 많은 부분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곧 여덟 살이 되는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매사 자기중심적이고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등 말이다.


 앤의 아들인 스코티가 병실에서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면서 일상의 시간을 견디는 행위 또한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바로 2년 전 나에게 펼쳐진 사건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회사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2년마다 대형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한다. 2008년 10월,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건강검진을 받았고. 검진 결과는 며칠 뒤 이메일로 통보받았다. 우리는 흡연도 하지 않고 술도 잘 마시지 않으니 으레 괜찮겠지 생각하며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뤘다. 일주일 뒤, 병원의 간호사실에서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검진 결과를 육성으로 들려주며 추가적인 진료를 제안했는데 그 이유는 놀라웠다. 뇌혈류 검사 상 양측 중대 뇌동맥에 협착이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게 뭘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뭐 별일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업무시간에 원인 모를 두통을 몇 차례 겪고는 자신의 현재 상태에 의문과 두려움을 가졌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자 고민하다 하다 결국 나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제정신이야? 그걸 왜 지금 이야기해?” 나는 화를 내며 되받아 쳤다. 그러나 나의 이런 태도는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닫고는 그 즉시 인터넷으로 ‘뇌동맥 협착’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뇌경색, 뇌졸중 등 살면서 한 번도 입에 올려 본 적 없는 무시무시하고 낯선 질병들이 연관 검색어처럼 튀어나왔다.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주관적 해석은 근심만 더할 뿐이라는 결론에 이른 나는 그때부터 뇌신경외과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차로 1시간 반경에 위치한 대학병원 5군데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잡았다. 마침내 진료를 보게 되었다. 병원 내부를 돌아다니는 의사와 간호사, 환자를 보며 낯섦과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진료 접수를 하니 대기만 1시간이란다. 예약실에 함께 자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50대, 60대쯤으로 보였다. ‘30대에  신경외과라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께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여줬다. 예상한 대로 정확한 것은 뇌 MRI 촬영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름난 대학 병원에서 2시간이나 기다려 얻은 게 고작 해야 촬영 예약이라니 맥이 빠졌다.


 MRI 촬영은 일주일 뒤로 잡혔다. 내 머릿속은 온통 남편의 뇌로 가득 찼다. 눈만 뜨면 휴대폰을 열어 관련 정보를 검색했다. 소설 속에서 앤이 커피를 마시려 아래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갔다 아이의 일이 떠올라 죄책감을 느껴 다시 병실로 돌아온 장면이 있는데 내가 그랬다. 끼니를 챙겨 먹는 것도 죄스러웠다. 약속한 날짜가 되어 다시 병원을 갔다. 그는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MRI 실 앞에서 대기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천방지축 뛰어다녔다. 소설 속에서 앤의 남편인 하워드는 앤 옆에 앉아 손을 잡고 자기 무릎 위로 끌어올리며 위로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 또한 별 다른 말 없이 남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부부 사이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는 이뿐이라 생각하면서. 남편이 MRI 촬영실로 들어갔다. 기계에서 새어 나오는 굉음이 대기실의 적막감을 깼다. 남편은 괜찮다. 검사를 받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결과를 정확히 알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 시간을 온전히 제정신으로 견뎌야만 했다. 그동안의 삶이 너무 평탄했기에 신이 나에게 이런 경험을 주나 했다. 이제부터라도 착한 일을 하면 그동안의 삶에 면죄부가 될까 싶어서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일들을 했다. 예를 들면 길가에 떨어진 휴지를 줍거나, 불우이웃 성금 함에 모금을 하는 일등 말이다. 축적된 선행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길 기대했다. 남편의 뇌 MRI 검사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정상이었다. 의사는 뇌혈류 검사 상 오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이야기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나는 남편의 MRI 검사만으로도 무섭고 두려웠는데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을 사고로 잃는다는 소설의 설정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아픔이며 고통이라 생각한다. 앤은 아이를 잃은 상실의 감정이 급기야는 분노로 바뀐다. 그러다 빵집 주인의 별것 아닌 빵에 위로를 받게 된다. 아이의 죽음으로 먹먹했던 가슴이 이 부분에서 다소 누그러졌다. 책에는 빵집 주인의 위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앤 또한 아들이 파티에서 칼에 찔려 수술대 위에 올라가 있는 –그녀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프랭클린 가족에게 자신의 이야기 덤덤히 건네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또한 그녀만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한다. 두려운 상황에 있는 이가 당신만이 아니라는 위로,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뿐이지만 희망을 갖자는 위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이를 위해 나는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그들의 차갑고 경직된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빵이나 커피는 없지만 슬픈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해줄 수 있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것이 비록 사소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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