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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Nov 18. 2020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은 것

  얼마 전 시댁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아침부터 제사 음식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시어머니는 전날 말려 놓은 오징어부터 시작해서 고구마, 명태, 버섯, 부추 등등 갖가지 재료들을 쉴틈 없이 내 앞으로 날랐다.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전기 프라이팬 앞에 쭈그려 앉아 전을 부쳤다. 허리를 필 틈도 없이. 남편은 방에서 아이들을 보랴, 전부 치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랴 바빴다. 시댁 식구들은 남편을 제사음식 준비로부터 배제시키지는 않지만, 동등하게 분담시키지도 않는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하고, 남편은 도와주는 거라 생각하니. 나는 그들의 아들내미가 눈치껏 돕지 못하는 걸 보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아침, 점심, 저녁, 밥상을 들고 날라야 할 때면 '아이 아빠'를 찾았다. 눈치껏 제 몫을 해내지 못했을 때다. 밥상 가져갈 때, 밥상 치 울 때 '아이 아빠'를 찾았다.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밤 12시가 되어야만 제사를 올리는 시아버지는 결국 내게 한마디 하셨다. “애미야. XX 아빠 좀 그만 찾아라.”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를 읽으며, 시댁 식구들이 생각이 났다. 소설 속 화자의 시어머니는 나의 시어머니와 많은 부분 닮아 있었다. 나의 시아버지는 형제자매, 사돈의 팔촌까지 명절 때 왕래하며 인사시키면서, 시어머니는 자신의 형제에 대해서는 결혼한 이모들만 나에게 소개를 시켜줬다. 그녀에게는 3명의 남자 형제도 더 있었는데 나는 그중 한 분만 결혼 후에 얼굴을 뵈었고 나머지 한분은 귀로만 들었다. 마지막 한분은 몇 달 전 돌아가시고 나서야 처음으로 그분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미혼에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알코올 중독자였다는 것을 남편에게 건네 들었다. 


  소설 속에는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 가는 시 이모도 등장한다. 대학교 1학년 때 객사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장 노릇을 하였고, 도박에 빠진 남동생의 빚을 대신 갚아주다 돌연 잠적해 버렸던 인물. 시이모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니 어떻게 저렇게 희생적으로 살 수 있어? 너무 구시대적인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성을 향한 비슷한 프레임이 현시대에도 계속 남아 있으면서 나를 옥죄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나의 시아버지는 아직도 남자와 여자의 성 역할을 구분해 놓고 여자는 애들이나 잘 키우고 남편 내조만 잘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니 말이다. 


  시이모가 췌장암에 걸려 죽기 전까지 자신을 끊임없이 검열하고 수녀처럼 살면서 화자에게, 그리고 나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또한,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의 길들여짐에 대해서 곱씹어 본다. 그리고 다시 책을 편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온 것들에 대해서 비틀어 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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