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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Dec 23. 2020

워킹맘과 전업주부의 경계에 대하여

얼마 전 아는 분께 카톡이 왔다. "XX님, 굿모닝입니다. 아침에 문득 생각나서 카톡 보내봅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세요?"


카톡 메시지가 온 걸 보고 읽을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마지막으로 이분께 연락이 온 게 언제일까 생각해 보니 무려 8년 전이다. 그분은 내가 대학생 때 참가했던 대외활동을 주관한 분이자 모 회사의 사장님이셨다. 대외 활동을 마무리한 후 1~2년간은 선후배와의 모임에 얼굴을 비추며 소식을 나누었으나, 입사와 결혼 그리고 출산과 육아로 인해 발길을 끊었고, 그 분과의 연락도 그렇게 끊어졌다.


올해 초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사장님이 온라인 동창회 같은걸 만들었는데 관심 있으면 들어오라면서. 호기심에 클릭했다. 단톡 방에는 나와 같은 대외활동을 수료한 선후배가 50명도 넘게 있었고, 그중에는 얼굴은 아나 연락이 끊어졌던 동기들도 몇 있었다. 어엿한 회사에 입사해서 한 자리씩 차지하는 이들 사이에 낀 게 영 부담스러웠지만 나갈 용기도 없었다. 사장님과의 인연은 수년 전 개인적 연락 한 번과 단톡 방 입장, 그게 다였다. '나와는 용무가 없는 분인데 왜 개인 톡을 보내셨을까'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여러 상상을 하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카톡을 읽었다.


"아이들이 많이 컸겠네요. 앞으로 계속 전업주부로 사실 건가요? 아니면 워킹맘 계획도 있으신가요?"


'전업주부'라는 말을 들으니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사전을 찾아 검색해보니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는 주부'라고 나와 있다. 나는 퇴사 후 엄마가 된 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고군분투했다. 임신과 출산 후에도 지속했던 '과외',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온라인 영어 스터디', '마을공동체 주민공모 사업, ' '평생학습마을의 영어 그림책 강의'가 그랬다.


그가 그간의 나의 노력을 속속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나는 단톡 방에서 이미 자기소개와 현재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한 이후였다. 내가 전업주부와 워킹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주변인'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가 나의 자기소개 카톡은 바빠서 못 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에게 적합한 일을 추천해주실 수도 있다는 희망 회로에 갇혀 대화를 이어 나갔다.


두 아이가 아직 미취학이라는 점, 그리고 아이 봐주실 분이 없어 출퇴근하는 형태는 힘들다고 말씀드리니, 내가 주로 어떤 일을 하였고, 다루던 아이템은 무엇 인지 물었다. 나는 퇴사 전에 했던 업무와 아이템에 대해서 설명을 하다 문득 내가 대화에 끌려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단도직입 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경력단절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는 일, 온라인으로 가능한 일)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그가 나에게 적합한 일을 찾아줄 수 있다면 돌려 말하지 않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고 하고 더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다음 날, 그는 내게 또 카톡을 해왔다. 자신이 어떤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데 혹시 관심 있는 분이 있을까 궁금하다면서, 관련 업무를 해본 경력단절 여성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가 어제 연락했던 게 결국은 그의 자료 조사와 제안서 작성을 위한 서포터를 찾기 위함이었을까 생각하니 어쩐지 씁쓸해졌다. 경력단절 여성인 나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힘들게 말을 꺼냈을 그를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전 직장 그만둔 지 3년째 되었을 때다. 자발적 퇴사는 아니었다. 회사 관련 사람들은 모두 카톡 차단을 해놓은 줄 알았는데 빼먹은 이가 있었다. 바로 '한 과장'이었다. 그녀는 사장의 오른팔이었는데 나랑은 관련 업무가 많지 않아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XX 씨 잘 지내?"라는 카톡을 보고 학창 시절 잊힌 친구인가 싶어 이름을 물었더니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전무님이 XX 씨 이제 애들 다 크지 않았냐고, 일 다시 시작해도 되지 않겠냐고 해서." 라며 속내를 밝혔다. 내쫓을 때는 언제고 다시 연락을 해서 입사 제안이라니 황당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직원의 감정은 아랑곳 하지 않는 회사라니...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을까 하다 회사에 여전히 종속되어 있는 그녀의 삶도 어쩐지 불쌍해 보여 "지금은 하는 일이 있어서요. 좋은 직원 구하셨으면 좋겠네요."라고 나름 예의 있게 거절했다.


돌이켜 보면 회사의 테두리가 아예 생각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둘째의 유치원 입학원서를 쓸 때였다. 방과 후 과정을 신청하려면 맞벌이 서류가 필요했는데 지원 자격이 되지 않아 쓸 수 없었다. 시부모님께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여전히 내가 온라인에서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육아를 하면서도, 관심이 가는 일을 지속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게 돈을 벌어다 주면 더 좋고.


신영복의 <담론>에 "우리 사회의 열악한 노동 현실 때문에 노동에 대한 관념이 부정적입니다만 사실은 노동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 정의한다면 노동은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147쪽)라는 문장이 있다. 노동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회사 안과 회사 밖의 형태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형태로도 존재할 수 있을 수 있고, 노동을 누군가의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길 세상이 오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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